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77) 서김녕리 부제동산의 산물

김녕리는 짐녕마을이라 했던 마을로 설문대할망이 두럭산을 빨래판 삼아 빨래를 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김녕리에는 영등물, 모살발물, 만물, 수감물, 고냥물, 흐른물, 안젯물, 원빌레물, 망태물, 장올래물, 장택물, 청굴물, 성세기물, 개웃세물 등 수많은 산물들이 용출된다. 마을사람들은 김녕리도 물을 찾아 해안 쪽으로 이주한 마을이라고 하면서 설문대할망이 두럭산에서 빨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많은 산물들이 해안가에 용출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살밭물은 당 신앙과 밀접한 산물이다. 모살밭물은 김녕입구 교차로에 있는 영등물당에서 백련사가 있는 김녕로를 따라 250m 쯤 가다가 바닷가로 내려는 소롯길을 따라 가면 두 칸으로 정비되어 있는 모살밭물을 만날 수 있다. 소롯길은 농로 정도의 작은 길을 의미하는 제주어, 모살은 모래의 제주어다. 이 물은 득남을 기원하면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미륵 돌을 가운데 모신 영등물당(서문하르방당, 남당하르방당)에서 음식을 장만 할 때 당에서 사용하거나 바다 밭에 물질을 나가는 해녀들이 이용했던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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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밭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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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밭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모래밭물에서 바다 쪽 영등물케에 영등물도 있다. 이 산물은 영등하르방물로 영등물당에서 제를 지낼 때 제수로 사용했다는 물이다. 이 산물은 용암이 흘러내려 바닷물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굳어진 현무암 사이에서 용출된다. 영등물당에 왔다가 바닷가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산물이다. 이 산물은 당 신앙을 만든 성스러운 물로 음력 2월 영등달에 영등굿이라는 큰 굿판을 벌리고 보름동안 섬 전체를 신명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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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등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물이 좋아 한수동과 용천수를 따라 이동하여 마을을 형성했다는 남흘동이 자리한  서김녕리에는 설촌의 중심이 되었던 산물들이 있다. 지세가 높고 험헌 땅인 부제동산이 있는 곳에는 마을의 귀한 식수로 사용했던 산물로 흐른물(흐르물), 고냥물, 수감물이 남아있다. 이들 산물 터에는 마을발전을 위해 물을 정비한 치수기념비가 각각 세워져 있다.

백년사 동쪽 흘림물고개 밑 동네에 막 들어서면 흐른물(흐르물)이 있다. 이 산물은 팽나무 밑 궤(동굴)아래서 산물이 흐르는 듯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식수로 사용했으나 따로 식수통은 두지는 않았다. 지금은 물통 안에는 수초만 무성히 자라고 있으며 물통이나 화분 등이 있는 것으로 봐서 허드레 물품을 보관하는 개인적 장소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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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른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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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른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흐른물 곁에 50m 거리에 고냥물이 있다. 이 산물은 치수기념비 밑 암반경계부 돌구멍에서 용출되는 물이라서 고냥물(고냥은 구멍의 제주어)이라 하는데, 바다의 영향으로 물맛이 짠듯하여 식수로는 사용하지 않고 주로 남자들이 목욕하는 물로 사용했다. 물 건너편에 수감물이 보인다. 치수비 밑에 고냥물이 용출되는 구멍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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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냥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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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냥물 용출 구멍.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수감물은 백련사 동측 소롯길을 따라 가면 고목인 팽나무가 수문장처럼 지키는 동굴 같은 바위틈에서 솟아나오는 산물로 여자전용 산물이다. 이 산물은 조석간만의 차에 의해 바다의 영향을 다소 받는 산물로 만조 시에는 물이 짜서 마시기 어려우나 간조 때는 마실 수 있는 물이다. 그나마 해수의 영향을 덜 받는 물로 물맛이 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물은 바위동굴이란 궤에서 솟아나오는 물로써 식수통과 일자형 빨래터를 만들고 보호시설인 돌담 뒤에 목욕하거나 허드레 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다시 담을 싼 이중 담 형태로 만들어 졌다. 

이 산물은 1960년에 돌담을 높이 올려 정비하였다는 기록이 치수비에 있으며 산물은 바다 쪽 물팡이 있는 데서 길었다. 지금은 사용을 안해서인지 관리를 안 하고 있어서 수풀로 뒤덮어 있고 안내시설도 없어 산물이 있는지 조차 알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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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감물 입구(소롯길).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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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감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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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감물 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우연일까, 서귀포시 위미리 공천포 검은 모래사장에서 용출하는 영등할망물이 있다면, 짝을 맞추듯 서김녕리에는 영등물당여에 강한 기운의 영등물인 영등하루방물이 있어서 영등신이 지키는 큰 마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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