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⑪ 여교사(Misbehavior), 김태용,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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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여교사’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국어교육학과에 편입한 나는 다른 학생들이 하니까 졸업하는 해에 덩달아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합격선에는 턱 없이 부족한 성적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험을 몇 번 봤다. 아버지가 경마장에 배당 높은 말(누가 봐도 허약해 보이는 말)에 돈을 걸면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재수 보기로 하는 거지.” 

내가 처음 임용고시를 봤을 때는 교육학은 객관식이었지만 전공 과목은 문제가 모두 서술형이었다. 객관식이면 몰라도 서술형이라면 글로 가득 채울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결과는 불합격. 점수를 확인한 나는 무척 부끄러웠다. 과락이었다. 바로 포기했다.

몇 년이 지나자 임용고시 문제 유형이 전공 과목도 객관식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때 다시 시험을 준비했다. 일명 ‘마구리’를 기대한 것이다. 또 아버지가 한 말이 생각났다. 

“재수 보기로 하는 거지.” 

역시나 결과는 불합격. 마구리를 기대했건만 어쩜 그렇게 정답을 피해 가는지.

임용고시 공부를 할 때 대전의 한 고시원에서 산 적이 있다. 고시원에는 고시 공부하는 사람만 사는 건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회사원, 소설가 지망생, 스님, 종교인, 정체불명의 사람 등. 공동 냉장고에는 자신의 반찬통에 이름을 써놓는다. 밤에 라면을 먹던 나는 김치 생각이 나서 냉장고 속에 있는 김치를 몰래 먹으려다 김치통에 적힌 법명을 보고 그만 두었다.

합격수기를 읽으면 적당히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식사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김밥을 먹으며 공부했다는 사람, 암기할 때 목차별로 암기를 했다는 사람, 매일 공부할 양을서로 체크하는 스터디도 했다는 사람, 자는 시간과 법 먹는 시간 빼고는 독서실에 매일 앉아 있어서 의자가 된 기분이었다는 사람 등.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 방에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아빠가 사립학교 이사장이라면 다 필요 없다. 사람 사이에는 권력 관계가 존재한다. 학교, 직장, 사회. 심지어 연인 관계에도. 그리고 가끔 그 권력에 진절머리가 날 때 판을 엎으려고 한다. 꽃길만 걷는 권력자들은 상대방의 손에 무엇이 들려있는지 잘 살펴야 한다. 그의 손에 염산이 있을 수도 있다.

현택훈
고등학생 때 비디오를 빌려보며 결석을 자주 했다.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해 처음 쓴 소설 제목이 ‘중경삼림의 밤’이었다. 조조나 심야로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영화를 소재로 한 시를 몇 편 썼으나 영화 보는 것보다 흥미롭지 않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한때 좀비 영화에 빠져 지내다 지금은 새 삶을 살고 있다. 지금까지 낸 시집으로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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