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80) 행원리 어등개 산물

행원리는 굴곡 있는 해안선과 현무암으로 뒤덮인 빌레(너럭바위의 제주어)가 발달된 바닷가를 중심으로 자리 잡은 제주섬 북쪽 다섯 곳의 연륙(連陸) 포구 중 하나인 마을로 옛 이름은 어등개(어등포)이다. 조선시대 제주목사 이형상이 남긴 <탐라록>에는 ‘어등포(於登浦)’의 저녁 모습은 제주 8경 가운데 하나라고 기록되고 있다. <남사일록(南槎日錄)>에는 어등포는 상선도 드나들 수 있었을 정도의 큰 포구로, 병선이 정박할 수 있는 곳 중의 하나라고 기술하고 있다. 어등포라 하던 마을이 유림이 고장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조선말 고종 때 행원리로 개칭했다고 전해진다. 행원의 의미는 마을주민의 어질기를 바라서 ‘인(仁)’자의 뜻을 내포한 ‘행(杏)’자와 그 근원을 말하는 ‘원(源)’이라고 한다.

예부터 행원리는 해산물 채취와 식수 관계로 해변 지대로 이주한 마을이다. 제주에서도 청정하기로 소문난 행원리 바닷가 밧소의 말렝이혹에 말렝이물(말랭이물, 몰렝이물)과 지서물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해안에서 떨어진 윗동네에서는 우물을 파 물통을 만들고 식수를 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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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서물(앞)과 말렝이물(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말렝이’는 ‘마루’의 제주어로 산 따위의 길게 등성이가 진 곳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지서물은 말렝이물을 지키는 서쪽에 있는 산물이란 뜻을 내포한다. 이 산물들은 해안도로에서 마을 쪽으로 막 들어오면 길모퉁이에 있다. 이 산물들의 개수되었으며, 특징은 식수통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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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렝이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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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서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말렝이물은 남자용으로 주변이 매립되면서 주변 지면이 산물보다 높게 되어 원형으로 쌓은 옛 돌담 위에 콘크리트 옹벽을 덧씌운 형태이다. 석축을 높여서 산물을 보전하고 목욕을 할 수 있도록 재정비 되었다. 남자물인 말렝이물은 출입구가 길에서 정면으로 보이기 때문에 차단벽인 병풍(막)을 설치하여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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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렝이물 병풍(막).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여자용인 지서물은 말렝이물 서측 곁에 타원형의 통을 갖고 있는 산물로 여자용이다. 이 산물은 식수로 여자들이 목욕하고 생활용수로 썼던 물이지만, 제사 때는 이른 새벽에 이 물을 길어 사용하기도 한 귀한 제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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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서물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역사적으로 행원리는 조선 제15대 임금인 광해군의 제주 귀양의 첫 기착지이며, 눈물 어린 유배지의 시작이었다.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인해 개혁 군주에서 유배인으로 한 많은 삶을 제주에서 마감했다. 광해가 제주서 쓸쓸하게 한을 품은 채 죽던 음력 칠월 초하루 무렵 세찬 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후 임종한 날 즈음 제주에서는 ‘칠월 초하룻날이여, 대왕 관(어붕)하신 날이여, 가물다가도 비오람서라(비가 온다)’라며 삼복더위를 잠시 식혀주는 가뭄 속 단비인 광해우(光海雨)를 기다리고 광해군의 넋을 달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도착한 곳이 제주라는 사실을 안 광해는 어등포인 행원에서 마중 나온 목사의 비난 섞인 말에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마을에서는 광해군이 돌아가신 음력 7월1일에는 어김없이 ‘임금의 눈물이 비가 되어, 비가 온다’는 말을 한다.

임금 광해군은 눈물의 유배지인 제주에 기착하자마자 긴 항해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행원리의 산물로 목을 축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실패한 통치자로써 통한의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귀향 살면서 지운 광해군이 <제주적중>이란 한시에서도 ‘북풍의 비와 넓은 바다 노한 파도소리가 나그네 꿈이 되었다’고 했듯이 말렝이물과 지서물은 임금 광해의 비애를 고증이라도 하려는 듯이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임금의 눈이 되어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것 같다. 이 산물들은 바닷물이 영향을 받는지 해조류가 가득하고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때를 지어 노는 것이 꼭 광해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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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렝이물 물고기 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현재 이 산물은 설촌의 역사와 함께 예전 어등개 어촌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산물이다. 우연일까 말랭이물과 지서물은 평민으로 천수를 누린 광해를 닮았는지 해안도로 개설 시에도 매립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 행원리는 각광받는 관광지가 되었다. 이참에 광해군과 관련하여 광해의 눈물로 만든 산물을 스토리텔링화하여 마을의 설촌 역사와 산물 유적으로 관광상품화 했으면 한다.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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