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jpg
▲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정민구, 현길호, 홍명환, 강철남, 김황국 의원(왼쪽부터). ⓒ제주의소리
[예산심사] 제주도, ‘채무 제로’ 선언 1년만에 지방채 발행…“한치 앞도 못보는 행정”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지난해 ‘채무 제로’ 선언을 했지만 1년만에 지방채를 발행하는 상황에 직면, “한치 앞도 못 보는 행정”이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채무 제로’ 선언을 하면서 민간투자사업(BTL, BTO)에 따른 채무는 일부러 숨겼다는 지적까지 제기돼 거짓말 논란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위원장 강성균)는 23일 제366회 제2차 정례회를 속개해 제주도지사가 제출한 2019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심사에 돌입했다.

제주도의 새해예산안은 올해보다 3227억원(6.4%) 늘어난 5조3524억원 규모로 편성됐다.

예산심사에서는 지방채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제주도는 일몰되는 장기미집행시설 문제 해결을 위해 향후 5년간 9500억원 정도의 재정수요가 있다고 보고, 매해 1500억원 가량의 지방채 발생을 통해 재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제주도의 지방채 발행계획이 지방재정법이 정하고 있는 ‘지방의회의 의결을 얻어야 한다’는 규정을 어겼다는 지적부터 제기됐다.

정민구 의원(삼도1․2동, 더불어민주당)은 “지방채 발행은 사전에 의회 의결을 거쳐서 본예산에 녹아나는 줄 알았다. 지방재정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한도액 범위 내에서 지방의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있는데, 왜 사전 의결을 받지 않았나”면서 “행안부 지침으로 법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중환 제주도 기획조정실장은 “의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조정할 수 있다고 행안부가 해석해준 것이다.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공통사항”이라고 말했다.

현길호 의원(조천읍, 더불어민주당)은 “해석의 차이는 인정한다”면서도 “그렇다 하더라도 의회를 상대로 인정하면 사전 의견 나누는 과정은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었다”고 질타했다.

현 의원은 “2014년부터 세수가 늘기 시작해 이듬해부터는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 4년 행복한 도정이었다”면서 “그런데 지금 재정절벽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지방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예측을 전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현 의원은 “장기미집행시설과 관련해서 의회가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순세계잉여금의 1%를 적립하도록 조례까지 개정했다”면서 “도지사가 법을 어겼다. 재정전략 운용은 ‘빵점’ 수준”이라고 원희룡 지사를 직접 겨냥했다.

2017년 ‘채무 제로’ 선언에 대해서도 “선거용”이라고 단언한 뒤 “지사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할 지 모르겠는데, 좋은 시절 다 누리고 갈 길 가버리면 설거지할 사람은 따로 있다. 문제가 닥치고 나서 가버리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명환 의원(이도2동갑, 더불어민주당)은 “‘채무제로’ 선언한 지 1년 만에 지방채를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 원희룡 지사는 도민들에게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2.jpg
▲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이중환 제주도 기획조정실장. ⓒ제주의소리
이중환 실장은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지만, 당시 채무를 갚지 않고 장기계획시설이 아닌 다른 곳에 투자했다면 훨씬 더 큰 재정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며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외부채무를 다 갚은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채무 제로’ 선언이 사실상 도민들을 거짓으로 호도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강철남 의원(연동을,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채무 제로’를 선언했는데, 그렇다면 지금 제주도는 정말 부채가 하나도 없는 것이냐”고 말문을 열었다.

이중환 실장이 “BTL사업에 따른 연차적으로 갚아가는 것(빚)도 있다”고 말하자, 강 의원은 “그런데 왜 ‘채무 제로’라는 표현을 쓰냐”며 “BTL사업에 따른 빚만 4300억원이 넘는다. 이런 엄청나게 큰 빚이 있으면서도 지사께서는 ‘빚이 없다. 다 갚았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도민을 속이고, 의회도 속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채무 제로’ 선언 시점도 문제 삼았다.

강 의원은 “선거를 앞둔 시점에 발표한 것도 문제”라며 “2017년도 ‘채무 제로’ 선언이 잘못됐다면 다시 보도자료를 낼 수 있느냐”고 추궁했고, 이에 이 실장은 “언론에서 제목을 그렇게 뽑았지만, 저희는 ‘외부차입금을 다 갚았다’는 내용으로 자료를 냈다”고 해명했다.

한때 원희룡 지사와 한솥밥을 먹었던 김황국 의원(용담1․2동, 자유한국당)도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행위를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2017년에 ‘부채 제로’ 선언을 했다. 1년만에 다시 지방채 발행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장래예측을 했다고 볼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이 실장이 “그렇게 지적할 수 있다고 본다”고 한발 물러서자, 김 의원은 “장기미집행시설 일몰을 앞두고 있고, 하수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 외부차입금 상환은 부적절했다. 인정하느냐”고 몰아붙였다.

이 실장이 입을 열지 않자, 김 의원은 “왜 답변하지 않나. 잘못된 것은 인정하고 시정해야 할 것 아니냐”고 신경전을 펼쳤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