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선 시인은 최근 새 시집 《백비가 일어서는 날》(도서출판 들꽃)을 발간했다.
‘시집 제목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는 고명철 문학평론가(광운대 교수)의 작품 해설처럼 4.3평화공원에 누워져 전시된 ‘백비’는 아직 온전한 진상규명, 배·보상까지 나아가지 못한 제주4.3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는 존재다.
신간은 총 4부로 나눠져 있는데, 책머리인 1부에 4.3 관련 작품 17편을 실었다. 백비, 행불자, 큰넓궤, 소개령, 지미둥이 순경 등 4.3의 주요 순간을 친숙한 단어, 표현으로 그려냈다. 나머지 2~4부에서는 제주 자연, 주변 일상 등을 소개했다.
돌아갈 수 없는김순선산으로 피난 길 떠난 사람들부당한 착취와 폭력이 싫어굶주림에 지치면서도평화를 갈망하던 사람들살기위해, 산으로 길 떠났는데산에도 길은 없어길 없는 길 위에서손가락이 기관총 되어버린지옥놀음너도 죽이고나도 죽이는서로 죽이는 틈바구니에서진달래보다 더 붉게피로 물든 화산섬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지울 수 없는 어두운 상처노을 지는 슬픔 위로까마귀들만까악까악
백비가 일어서는 날김순선꽃잎 같은 함박눈배추흰나비 되어장문의 비문을 쓰듯백비 위에 내려앉는다오랜 기다림 끝에잃어버린 기억상실의 시간을찬란한 햇발 같은 비문 새겨지는 순간역사는 말 하리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심연에 얼어붙은 기억들이 깨어나고관덕정 광장에 울려 펴지던그날의 함성으로누워 있던 백비들이일어서리한라에서 백두까지4.3 씨앗 태동하여평화의 바람 불어오리라
고명철 평론가는 “4.3을 노래한 김순선 시인의 시편들을 곰곰 음미하고 있노라면, 새삼 ‘삶의 진실’처럼 소중하고 긴요한 시적 주제가 달리 있을까”라며 “시집 곳곳에서 삶의 생동감이 번뜩인다. 이 역시 ‘삶의 진실’을 탐구하는 도정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시인의 시적 정동”이라고 평가했다.
시인은 제주 출생으로 2006년 <제주시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펴낸 책으로 시집 《위태로운 잠》, 《저, 빗소리에》, 《바람의 변명》 등이 있다.
한국작가회의,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141쪽, 도서출판 들꽃, 8000원.
한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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