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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협동조합 모델을 통해 자전거 모터사이클 정비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서울성수공업고등학교. <사진제공=서울시학교협동조합>
[특성화고, 협동조합에서 길을 찾다]
 성공모델 제시한 전국 곳곳의 학교협동조합 

제주지역 특성화고가 위기를 맞고 있다. 졸업과 함께 구직을 꿈꾸며 진학하는 특성화고의 성격상 낮은 취업률은 그 존재 가치를 위협한다. 산업 기반이 편중된 지역적인 특성을 감안해야하지만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와중에 '학교협동조합'은 새로운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단순 직업 체험의 개념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주체가 돼 경제적인 이윤을 창출하고 전문기술을 습득하는 등 순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는 목소리다. <제주의소리>는 학교협동조합의 개념부터 선진사례를 소개하고, 실제 학교에 도입되기까지의 해결과제 등을 세 차례에 걸쳐 다룬다. <편집자주>

제주지역 특성화고가 학교협동조합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앞선 성공 사례들이 큰 영향을 미쳤다. 

전국은 물론 전세계 곳곳에도 학교협동조합을 안착시킨 모델이 점차 늘고 있다. 사회적경제 활동 참여를 통해 민주적 의사결정을 자연스레 체득하는, 경영·회계 등 교과서로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경제교육의 장이 열리는 셈이다.

세계적으로 학교협동조합은 생소한 개념은 아니다. 영국, 프랑스, 말레이시아 등 다수의 나라에 학교협동조합이 활성화 돼 있다. 

'학교협동조합의 천국'으로까지 불리는 말레이시아는 2015년 12월 기준 2333개의 학교협동조합이 설립돼 운영중인 나라로 조합원 수만 208만명에 이른다. 프랑스 역시 전국 102개 지역에서 5만여개의 소규모 조합으로 나뉘어져 400만명의 조합원이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해를 거듭할수록 학교협동조합 설립을 위한 적극적인 시도가 늘고 있다. 

2018년 7월 기준 학교협동조합을 설립·운영하는 학교는 전국 76개교다. 경기도가 29개교로 가장 많고 서울 23개교, 강원 4개교, 부산·인천·전남·전북 2개교, 경북·광주·대구·충북 등이 각각 1개교다. 제주는 아직까지 불모지다.

이중 서울, 경기, 인천, 광주, 전북, 세종 등은 각 교육청에 따라 학교협동조합을 조례로 정의해 지원근거를 마련해놓았다. 선구자격인 서울시교육청은 별도의 '학교협동조합지원센터'를 열고 학교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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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최초의 학교협동조합 모델을 구축한 서울 영림중학교 내 매점.<사진제공=서울시학교협동조합>
최초의 학교협동조합 모델은 작은 문제의식에서 태동했다.

2012년 당시 영림중학교 학부모들은 회의를 하던 도중 방문한 교내 매점에서 시중에 보기 어려운 생소한 브랜드의 제품이 판매되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집에서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유기농산물 등 친환경 음식을 열심히 먹였는데, 정작 학교에서는 품질을 확신할 수 없는 간식에 입맛이 길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줄어든 수입으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고 토로한 매점 주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간판을 내렸다. 결국, 학부모들은 십시일반 모여 아이들을 위한 먹거리를 직접 판매해보는 것이 어떻겠나 하는 의견을 냈고, 최초의 학교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됐다.

"초기에는 너무나 힘들었어요. 2012년 당시에는 협동조합기본법도 제정돼있지 않아 이듬해에 협동조합을 출범하게 됐는데, 또 '학교협동조합'이라는 개념이 워낙 생소해 교육부로 가면 기획재정부로, 기재부로 가면 교육부로 돌리는 바람에 인가 받는데만해도 애를 먹었죠."

<제주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영림중사회적협동조합 이미애 이사장은 누구도 가르쳐 줄 이도 없고, 어디에도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이 새 길을 개척해나가야 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5평 남짓의 매점에서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면서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수익을 내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다. '이익이 나면 고스란히 아이들을 위해 쓰자'고 시작했지만, 오히려 마이너스를 메우느라 바빴다는 것이다.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게됐어요.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아이들이 경제에 대해 몸소 체험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봤을 때 의미가 있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죠. 도입 초기에는 수익도 없이 고생만 했지만 학부모와 학생 등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결집력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현재 영림중사회적협동조합은 단순 매점 운영만이 아닌 지역사회와 연계한 사회적경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조합원 170여명 중 절반 이상이 영림중 학생들로 구성됐고, 실질적인 결정 권한을 지닌 이사회에도 학생 이사 6명이 참여하는 등 학교협동조합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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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재배한 농작물을 지역사회에 판매하고 있는 강원도 소양고등학교협동조합. <사진제공=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최근 들어서 학교협동조합은 매점 운영 등의 모델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눈여겨 볼 점은 특성화고에서 전공 학과의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모델을 구축하는 시도다.

강원도 소양고등학교 협동조합은 교내에서 직접 재배한 품질 좋은 농산물을 지역사회에 판매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자연생명산업과학과 학생들이 직접 배추·토마토 등의 작물을 재배하고, 잼·기름 등의 가공식품을 만들고, 지역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원예교실을 운영하는 등 6차산업으로 발전시켰다.

작물을 심고 텃밭을 가꾸는 등의 비용은 학교 실습비와 협동조합에서 지불하는 예산으로 충당된다. 소양고협동조합에서 재배한 농작물은 지역사회에서 정평이 났다. 지난 6월 강원도교육청에서 판매한 행사에서는 30분만에 50상자의 농작물이 완판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조합원으로서 참여한 학생들이 기존의 노동으로만 인식하던 실습활동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무기력하고 수동적이었던 학생들이 먼저 나서서 농작물 수확 시기를 점검하고 판매 시점까지 적극 제안했다는 것이 담당 교사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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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성화고 학과 특색을 살린 학교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는 한샘고등학교. <사진제공=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경기도 이천도예고등학교 협동조합도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천도예고는 학생들이 제작한 도자기를 협동조합을 기반삼아 도자기축제, 도자기페어 등을 통해 판매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2016년 협동조합의 전체 매출 6000만원 중 도자기 판매와 관련된 매출만 1000만원이 넘어선 것으로 추산됐다.

도예고협동조합은 수입창출보다는 창업교육을 중요한 목적으로 삼고 있다. 도자기 분야는 취업보다는 창업이 중요한 산업이다. 학생들이 도자기를 잘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창작과 생산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훈련의 장이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서울 성수공업고등학교는 현장실습터를 제공하는 목적의 학교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학교 안의 협동조합 법인체가 학생들에 대한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구조다. 

전국 최초로 신설된 에코바이크과는 성수공고의 자랑이다. 자전거와 모터사이클 정비에 대한 전문적인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는데 있어 학교협동조합은 학생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학생들이 노동에 대한 금전적 보상도 받으면서 외부 현장실습 현장을 굳이 찾아가도 되지 않아도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린 셈이다.

춘천 한샘고등학교 협동조합 역시 특성화고의 특색을 살린 모범 사례다. 

2015년 학교협동조합을 창립할 당시에는 매점 운영을 목적으로 조합이 꾸려졌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기술을 지닌 학생들의 전공을 살리는 것이었다. 

현재 한샘고협동조합은 조리과, 미용과, 패션디자인과, 디자인콘텐츠과, 화장품응용과학과, 인터넷비지니스과 등의 학과의 특성에 맞게 '군것질 이야기', '패션이야기', '뷰티이야기', '베이커리이야기' 등 다양한 동아리를 만들고, 전공 관련 제품을 생산해 플리마켓 등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③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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