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96) 흉내 내다 흉내대로 된다

* 숭 털당 : 흉내 내다

“야, 느 경 허지 말라이. 느 경 허당 그츠룩 된다아.”
(야, 너 그렇게 하지 마라. 너 그렇게 하다가 그 모양이 된다.)
어렸을 때, 또 크면서 어른으로부터 자주 듣던 말이다. 그냥 해 보는 말이 아닌, 꾸중이고 욕설이고 때로는 달램이었다. 그때 하던 말로 ‘병신’ 흉내를 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몸이 성하지 못하거나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 흉내를 내다가는 천벌을 받는다는 강한 질책이었다.

옛날 어른들은 남의 나쁜 흉내 내는 것을 좋지 않게 보았다. 다리를 몹시 전다든지, 얼굴이 일그러졌다든지, 등 굽은 곱추, 목에 큼지막한 혹을 달고 다니는 혹부리를 병신이라 해서 손가락질하거나 심지어는 그 흉내를 내면 큰 소리로 꾸짖었다. 당사자로선 신체적 결함에 대해 가뜩이나 열등감을 가져 사람의 눈을 피해 다니는데, 웃음거리가 되면 더욱 가슴 아프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지사지로 이해하고 격려는 못해 줄망정 놀리는 것은 사람으로서 못할 짓이라 했다. 그런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죄의 대가를 받는다고 믿었다. 

그 죄 값으로 바로 흉내 냈던 모습대로 되고 만다는 얘기다. 금기시한 것이다.
  
우리 제주인들, 몸이 성치 못한 사람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낄 만큼 선량했고 의로웠다. 그러니 옳지 않은 것에 대해 욕하고 힐책했다.

‘숭털당’이란 말에 언뜻 떠오르는 게 장애인이다. 예전에 장애인이란 말은 쓰지 않고 입에 올리지 못할 ‘병신’이란 말을 썼던 시절이 있었다.

신체의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능력이 원활치 못해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장애인’이라 한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갖고 있는 선천적 장애인과 사고를 당해 장애를 갖게 된 후천적 장애인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9년 장애인복지법을 만들어 장애인들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불행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갖가지 지원을 하고 있다.

총인구의 5%, 그러니까 무려 20명 중 1명인, 약 240만 명이 장애인이란 통계가 있다(2010년 기준).

이렇게 많은 장애인. 장애를 갖고 있는 것도 힘들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데, 하물며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아서야 될 일인가. 그나마 요즘은 옛날하고 달라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상당 수준 개선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장애인을 향해 입에 담지 못할 그 ‘병신’이란 말을 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만일 그런 말을 입 밖에 내놓는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정신이나 마음가짐이 잘못된 장애인일 테다.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장애인 ‘숭터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장애인을 대하기에 앞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장애인은 괴물도 천사도 아니라는 것. 무조건적인 혐오는 말할 것도 없고, 무조건적인 동정도 없어야 한다. 
  
이를테면 장애인이라고 기본적으로 허락 없이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것은 예의롭지 못하다. 비장애인이라도 무거운 물건을 들고 가고 있는데, 대뜸 누군가가 다가와서 아무 말 없이 그 물건을 뺏어 든다면, 당연히 놀랄 게 아닌가. 그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거워 보이는데 도와드릴까요?”라 말을 건네고 도와주는 것처럼, 장애인의 경우도 매한가지다.

비록, 휠체어 장애인이 곤경에 빠져 있어 보이더라도, 먼저 요청을 하지 않는다면 괜히 신경 쓰지 않는 게 예의라는 얘기다. 

하물며 장애인을 흉내 내는 일은 가장 비인간적인 짓이다. 행여 인터넷상에서 장애인에 대한 욕설이나 비하하는 ‘병신, 저능아, 정박아’ 같은 말을 곱씹어 보라, 얼마나 무자비한 언사인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 사람을 평생 불행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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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털당 숭대로 뒌다.
신체적 결함을 가진 사람의 흉내를 내서야 될 일인가. 흉내 내다 그렇게 된다고 경계한 옛 어른들의 목소리가 귓전에 천둥소리로 온다. 출처=오마이뉴스.

흉내 내기의 다른 얼굴이 있다.

단순히 흉내를 내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진심으로 경의를 갖고 상대를 따라 보아야 한다. 겉모습만 따라 하지 말고 마음가짐을 흉내 내 보아야 한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이 누군가의 거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온 마음과 존경을 담아 흉내를 내다가 보면 어느새 자신이, 누군가의 거울이 돼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함이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10대의 고운 시선을 아름답게 담은 시가 있다.

똑같다
석진(서귀포고 1)

한 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보려고 했던 적이 있는가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의 눈으로?

한 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들으려 했던 적이 있는가
들은 적이 있는가
그들의 귀로

우리가 좋아하는 것
그들도 좋아하고
우리가 싫어하는 것
그들도 싫어한다
몇 년 전, 사회복지법인 춘강이 개최한 ‘장애인식 개선을 위한 전도 학생 글짓기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큰 울림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장애인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숭털당 숭대로 된다.’ 

가슴으로 새겨들을 말이다. 신체적 결함을 가진 사람의 흉내를 내서야 될 일인가. 흉내 내다 그렇게 된다고 경계한 옛 어른들의 목소리가 귓전에 천둥소리로 온다. 어느 스님 죽비를 높이 들었다. ‘승대로 된다’는 저주의 말로 들으라.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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