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섬 숨, 쉼] 가끔은 뒤돌아보고 멈춰 서서 세상을 보았으면

한 해가 간다. 해마다 허겁지겁 연말을 보내고 봄이 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 해가 갈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눈 한 번 깜박거린 것 같은데 또 한 해가 가고 있다. 턱 괴고 앉아 생각해본다. 나는 지난 일 년 무엇을 하며 지냈나? 좋았거나 우울했던 몇 가지 일들이 떠오른다. 그 순간에는 발등 불 떨어진 것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이제 보니 다 지나가는 일이다. 길을 걷다보면 길모퉁이를 몇 번 만나지만 도착하면 다 지나가는 길인 것처럼.

우리 집은 직선거리로는 큰 길에서 멀지 않지만 여차여차해서 굽이굽이 몇 번 작은 길모퉁이를 돌아야 한다. 대부분은 차를 타고 들어가지만 가끔은 걷기도 한다. 그 길모퉁이를 돌때마다 나는 거의 자동적으로 빨강머리 앤의 ‘길모퉁이’를 떠올린다. 
 
“제 미래가 곧게 뻗어 있는 길로만 나아갈 줄 알았어요. … 이제 그 길에 굽은 길이 생겼어요. 그 모퉁이를 돌아가면 무엇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저도 몰라요. 하지만 좋은 게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 모퉁이 너머에 어떤 길이 있을지 궁금해요.”
- 《빨강머리 앤》 중에서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강주헌 옮김, 세종서적)
젊은 시절의 길모퉁이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섞여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 열정과 절망이 함께 그 뒤를 따라온다. 그런데 젊은 시절을 지나 나이가 들어 도는 길모퉁이는 조금 다르다. 한 발 한 발 그 길을 걸어가는데 집중한다. 지금 이 길을 잘 걸어야 걷다 보면 만나게 될 갈래 길에서 현명한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이 길을 갈 때는 지혜와 세상을 멀리 보는 눈이 그냥 따라오지는 않을 것이고, 잘 따라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잠시만 한 눈 팔아도 뒤처지기에 명심하고 또 명심하여 꼭 함께 길을 가야한다. 

며칠 전 아는 분이 하늘래기를 몇 개 갖다 주셨다. 

 “이거 집에 걸어두면 좋댄. 나쁜 건 나가게 하고 좋은 기운 들어오게 헌댄 해라.” 

어디서 구했냐 했더니 우리 집으로 오는 작은 길 과수원 돌담에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날  산책 삼아 걸어가며 봤더니 정말 많이 열려있었다. 하늘래기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작은 길들의 풍경은 담담했다. 사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품어내며 그대로 서있다. 다만 그 길을 걸어가는 내 마음만 참으로 번다하게 시끄러워 있는 것도 보지 못했구나. 앞만 보고 걸어가느라 놓쳤던 작은 풍경들이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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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째 같은 길을 지나갔지만 있는 줄도 몰랐다. 이제야 알게 된 돌담을 타고 올라간 하늘래기. 제공=홍경희.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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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한 해가 가고 있다. 모두 각자 자기의 길모퉁이를 돌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 길을 돌았을 때 펼쳐질 세상이 지금과 전혀 다른 곳일 수도 있고 별로 변함이 없는 곳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마음은 한결같이 편안했으면 좋겠다. 이런 일이 있거나 저런 일이 생겼을 때 너무 그 일에 끌려 다니지 말고 얼른 편안한 제 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또 가끔은 뒤돌아보기도 하고 옆에 있는 풍경도 구경하며 갔으면 좋겠다. 그러다보면 종종 하늘래기 같은 예쁜 선물들을 마음속에 넣어 둘 수 있을 것이다. 내년에는 그렇게 살고 싶다.

올해 마지막 글이 되겠습니다. 조금 이르지만 미리 인사드립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 https://blog.naver.com/jejubarams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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