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다. 거침없이 상승 곡선만 그리던 제주 관광산업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다. 2017년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금한령(禁韓令)과 유커(游客)의 급감은 신호탄이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로 많은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강원도로 몰렸다. 제주관광이 국내·외 변수에 흔들리는 모양새다. 다시금 제주관광의 질적 성장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2019년 기해년(己亥年)을 맞아 제주관광의 허와 실, 그리고 나아가야할 방향 등을 세차례에 걸쳐 조명해본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 관광1번지 제주 허와 실] ②제주 고유의 프리미엄 가치 극대화 ‘결실’에 집중

관광시장 규모가 확대되면서 세계경제에서 관광산업의 위상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UNWTO(세계관광기구)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말 국제관광객은 13억 2200만 명에 이르며 관광산업이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4%로 한층 높아졌다.  

지난 2016년 연간관광객 1500만명 시대를 여는 등 제주는 ‘대한민국 관광산업의 메카’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그러나 단기간에 이뤄진 폭발적인 양적 성장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수술해야 할 부위들이 적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그런 배경이다. 제주관광이 지금보다 얼마나 내실을 기하느냐에 따라 더 건강해질수도,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 지적에 다름 아니다. 

제주의 이 같은 양적 성장에 비해 관광객 1인당 지출규모, 여행상품의 내용과 형태, 소비성향, 재방문율 등 질적인 평가지수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지속가능한 질적 성장의 중요성으로 바로 이어진다. 

반(反)관광 정서가 무섭게 확산되고 있는 세계적인 관광도시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탈리아 베니스 등에서는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제주 또한 메가투어리즘 시대를 연 이후 과잉관광에 따른 교통체증, 쓰레기 무단투기, 소음 등으로 인한 주민불편 가중, 임대료 상승, 지역주민 이주 등의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언제까지 ‘세계 최대’ ‘국내 최대’ 등의 양적 구호에만 매달려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양적 성장만을 거듭하면서 ‘좋은 시절’을 보내다 최근 대부분 관광지표가 하양곡선을 그리면서 제주 관광산업의 부실한 구조가 드러나고 있다. 

지역경제에 충분히 도움이 되고 지역주민 삶의 질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제주관광이 가야 한다는 것이 명제인 셈이다. 

부실한 구조 속에도 제주관광산업은 여전히 긍정적 요소가 많고 발전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평가 받는다. 바로 제주만의 고유한 ‘자원과 매력’이 아직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 제주에 있는 수백개의 오름. 오름은 저마다의 매력을 갖고 있는 제주의 주요 관광 콘텐츠다.

◇ 중국인관광객 사라지자 제주 곳곳 내국인관광객이 채워

2017년 2월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부지로 경북 성주군 롯데스카이힐 성주골프장이 결정됐다. 이에 중국은 즉각 반발했고, 금한령(禁韓令) 조치가 내려졌다. 매년 수백만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찾는 관광지 제주로서는 큰 타격을 입었다. 

제주를 찾은 외국인관광객 중 중국인은 2012년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선 뒤 ▲2013년 181만2172명 ▲2014년 285만9092명 ▲2015년 223만7363명 ▲2016년 306만1522명 등 그동안 상승 곡선을 그려왔다. 

그러나 소위 ‘사드 보복’이 일어난 2017년에 중국인관광객은 74만7315명으로 급감했다. 같은 해 제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총 123만604명. 제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80%를 차지하던 중국인 관광객 발길이 끊기자 제주 곳곳에서 관광산업의 위기가 고조됐다. 

하지만 기우였다. 위기인가 싶더니 독특한 상황이 연출됐다. 제주관광공사가 2018년 발표한 ‘제주관광산업 신용카드 매출액 빅데이터 분석’ 자료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이 빠진 자리를 내국인 관광객이 채웠다. 특히 제주 읍면지역 매출이 증가한 한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자료는 제주에서 신한카드를 사용한 관광객을 대상으로 조사됐으며, 1000만개가 넘는 거래 내력을 통계자료로 분석했다. 그 결과 관광지표 일부가 개선되는 상황이 연출됐다. 

관광객들이 신용카드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지역은 제주시 연동과 서귀포시 색달동, 제주시 노형동, 용담2동, 서귀포시 서귀동 등 5개 지역이 꼽힌다. 

색달동(중문관광단지)과 용담2동(제주국제공항)은 모두 면세점이 위치한 곳이다. 연동·노형동과 서귀동은 호텔·쇼핑가·식당가 등이 밀집한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중심지로 꼽힌다. 

우선 2017년 카드매출액은 제주시 연동과 노형동, 서귀포시 서귀동, 중문동 모두 2016년보다 줄었다. 외국인 면세점(신라, 롯데)이 2곳이나 있는 연동의 2017년 카드 매출액은 전년보다 2000억원 넘게 줄었다.   

반면에 성산읍, 애월읍, 조천읍, 안덕면, 표선면, 한림읍, 구좌읍, 대정읍, 남원읍 등 대부분의 읍면지역 매출은 상승했다. 업종도 음식점, 숙박업, 소매업, 예술·스포츠·여가업 등 대부분 업종에서 매출이 골고루 올랐다.

외국인 관광객의 빈자리를 내국인 관광객들이 채운 것으로, 도심뿐만 아니라 제주의 구석구석에서 내국인관광객들의 소비가 일어난 결과로 분석됐다. 

통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제주를 찾은 내국인 관광객 매출 상위 20개 지역 모두 액수가 1000억원을 넘는다. 반면, 외국인 관광객 매출은 상위 3개 지역만 1000억원을 넘고 있다.  

또 2017년 내국인 관광객이 제주에서 신용카드로 결재한 돈 9729억원 중 4326억원(44.5%)은 면세점에서 사용했다. 외국인 관광객은 제주에서 5277억원을 썼으며, 면세점에서만 무려 4974억원(94.3%)을 지출했다.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끊기면서 중국인 매출로 호황을 누리던 제주시 연동 누웨모루 거리 일대 상가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 한라산에 비가 내려야만 볼 수 있는 서귀포시 '엉또폭포'.
◇ "제주관광 잠재력 무궁무진" vs "트렌드 반영 못하면 실패" 

위기는 곧 기회다. 최근 제주관광 전반적 지표들이 주춤거리고 있지만 제주의 독특하고 고유한 관광자원 매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관련 업계나 학계 등도 아직 제주 관광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평가한다. 

정치적 요인에 따른 중국인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관광객 방문이 급격히 줄었지만 내국인 관광객들이 제주의 구석구석을 누빈 점은 중요한 근거가 된다. 제주관광의 긍정적 요소를 극대화시키고, 부정적 요소를 최소화하는 등 제주관광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을 추구해야 할 때다. 

융합, 모바일, 안전, 지속가능 등 관광분야에도 새로운 키워드와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대량관광에 대한 대안관광으로서 ‘슬로우트래블’ ‘지역 테마여행’ 등이 제주에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특히 관광의 새로운 소비형태나 계층으로서 휴대폰을 손에 쥐고 태어났다는 ‘픽미세대('Pick-me Generation, 나를 뽑아달라)’, 시니어관광, 여성 소비지향 등에 대한 특성화된 관광 콘텐츠가 요구된다. 가면 갈수록 소비자가 주도하는 관광트렌드가 부각될 것이란 전망이 이어진다. 

이와 관련 강숙영 경기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제주관광이 일상 속 여행, 혼행(1인여행), 체험중시 등 관광소비트렌드 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 관광정책으로의 변화가 시급히 요구된다”며 “제주관광이 문화관광과 소비트렌드 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 관광정책으로의 변화가 시급히 요구된다”고 조언한다.

관광 수요자가 선택한 최적의 시간에 최고의 장소에 최고의 감동을 경험하는 여행으로 양보다 질적 관광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조언인 셈이다. 결국은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제주도의 농촌관광 이미지 유형별 선호 체험활동에 관한 연구’, ‘제주도 관광지의 관광동기유형에 따른 관광만족에 관한 연구’ 등 논문을 쓴 이진희 제주대학교 관광개발학과 교수도 제주의 다양한 매력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패키지 등 제주 단체여행 코스가 다양화 돼야 한다. 연구 과정에서 한 관광객은 1990년대 제주에 패키지여행 왔을 때와 20여년이 지난 2010년대 패키지 관광 코스와 차이가 없었다고 답했다”고 지적한다. 

제주 관광의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다. 제주에 오면 한라산에 오르고, 성산일출봉을 찾는데, 제주에 한라산과 성산일출봉만 있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한경면 수월봉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지질공원이다. 

또 수백 개의 오름은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총량제나 사전예약제 등 환경을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제주를 둘러싼 산과 바다, 중산간, 마을 곳곳에서 전혀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제주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한데, 특정 부분에만 쏠려 있는 모양새다. 관광객들이 제주 곳곳을 관광하면서 여유를 찾고, 자연스레 지갑을 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특정 관광지 몇 개에만 집중되면 안된다”고 꼬집었다. 

아직까지는 제주 관광 산업이 업종뿐만 아니라 관광지나 코스 등이 다양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보니 관광지로서 가치가 떨어진다는 지적과 궤를 같이 한다. 

이 교수는 “한라산은 물론 성산일출봉도 수많은 관광객이 몰리면서 예약탐방제가 거론된다. 제주 섬이 힘들어 한다. 양적 성장을 멈추고, 관광객들이 여러 제주 구석구석으로 분산될 수 있도록 정책을 가다듬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세계 관광도시들이 겪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원주민을 몰아내는 역작용이 있다. 관광객이 많아지면 그들을 겨냥한 상가가 많이 들어서 땅값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또 소음이 많아지고 사생활을 지키기 어려워지는 등 생활환경이 나빠지는 것도 원주민들이 누대로 살아온 터전을 떠나는 이유다. 이런 현상을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이라고도 부른다. 

이처럼 수용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오버 투어리즘(Over Tourism)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제주도가 거주민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처한 현실이다. 투어리즘 포비아(Tourism Phobia)라는 용어까지 생겨날 정도다. 이른바 관광객으로 인한 공포증이다. 

제주도민들 삶의 공간을 관광객들에게 내어주면서 되레 도민들이 관광객들에 의해 외곽으로 밀려나는 투어리즘 포비아 같은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 지역발전과 도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전제로 한 여행트랜드가 반영돼야 한다. 

제주만의 고유한 프리미엄 가치가 담긴 관광산업으로 가야 한다. 결국 적정한 관광진흥책은 필요하지만 과도한 규제완화 등으로 화려한 관광산업 이면에 드리워질 어두운 그림자를 간과 말아야 한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