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100) 억새밭에 새 소리한다

* 어욱 밧듸 : 억새 밭에
* 생이 : 새, 참새

억새밭에는 새들이 좀처럼 둥지를 틀지 않는다. 나무가 우거진 숲에 깃들여 산다. 그러니 숲 속 나뭇가지에서 새들이 지저귀며 소리를 내며 우짖게 마련이다. 한데 새들이 나무숲이 아닌 억새밭에서 운다 함은 그리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다. 그러니 생각 밖에 뜻하지도 않은 곳에서 엉뚱한 이야기를 퍼뜨리는 현상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사실, 얼토당토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엔 이렇듯 당치도 않은 일이 벌어지곤 한다.

“야, 어욱밧듸 새소리 허지 말라야.” 

흔히 쓴다. 헛된말을 꼬집는 것이다.

아무 근거 없이 널리 떠돌아다니는 헛소문, 뜬소문을 이르는 말이 있다. ‘유언비어(流言蜚語)’다. ‘蜚’ 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날개를 펴고 난다는 ‘非’에 벌레 ‘虫’가 결합됐다. 날개를 펴서 나는 벌레, 그러니까 ‘바퀴벌레, 날다’는 뜻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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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문재인 정부에게 200조원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가짜뉴스가 카카오톡 메시지로 전달되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유언비어에는 유래가 있다.

중국 한나라 두영 장수 이야기. 그는 이웃나라를 침략해 나라에 무공을 세운 명장이었다. 그래서 황제였던 경제의 총애를 한 몸에 누려 벼슬이 높고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 한데 경제 뒤로 무제가 등극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전분’이란 왕족이 세력을 키워 두영과 힘겨루기에 나서면서 세력이 점차 기울기 시작했다. 유언비어가 퍼졌다.

“황제 경제가 없으니 이제 두영은 끈 떨어진 두레박 신세야. 전분이 궁(宮)을 휘어잡고 있다며? 앞으론 그분한테 잘 보여야 출셋길에 지장이 없을 걸.”

모두들 쑤군대며 전분에게 환심을 사려 애를 썼다. 하지만 관부란 장수만은 두영과의 의리를 지켰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더니 세상 인심 참 고약하구나. 하지만 나는 두영 장군과 쌓은 의리를 배반하지 않겠다.”

그 후, 관부가 연나라 공주와 결혼할 때 전분과 두영이 공교롭게도 자리를 함께했다. 그 자리에서 술이 거나한 전분이 거만하게 말했다.

“요즘 어떤 사람을 일컬어 끈 떨어진 두레박이요, 이빨 빠진 호랑이라 놀려대는데, 누굴 보고 그러는 줄 아시오?”

갑자기 분위기가 썰렁해지면서 좌중이 다들 숨을 죽였다. 전분이 방자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게 누군가 하니…바로 저기 앉아 있는 두영이라는 늙은이를 두고 하는 말이라오.”

두영은 속에서 불덩이가 일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던 관부가 전분을 꾸짖었다.

“아니, 그 무슨 무례하기 짝이 없는 소리요? 예로부터 아무리 권세가 높아도 10년을 가지 못한다 했소. 그렇게 자기 권세만 믿고 오만을 떨다간 언젠가 큰 화를 당할 것이오.”

결국, 이 일을 빌미로 관부와 두영은 옥에 갇히고 말았다. 다만, 두영은 지난 날 반란군을 무찌른 공으로 특별사면으로 풀려 나오리라는 여론이 돌기 시작했는데, 때를 맞추어 또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두영은 옥중에서도 반성은커녕 천자를 헐뜯는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전분 일당이 꾸며 낸 유언비어였지만, 진노한 무제는 두영과 관부 두 사람을 사형에 처했다 한다. 중국 역사책 《사기》에는 이 같은 유언비어로 '한 무제가 공이 많은 훌륭한 장수를 죽였다'고 기록해 놓았다.

유언비어는 루머나 떡밥하고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카더라’와도 상관이 있고, 일부 언론사 기자들의 질 떨어지는 기사의 원천이 되기도 하는 바로 그것이다.

나관중의 《삼국지》를 평역(評譯)한 이문열 작가는 유언비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유언비어가 떠돌게 되는 원인은 두 가지로, 하나는 정치적 폭력에 의해 언로(言路)가 막혀 있을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정당성을 공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집단 또는 개인이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공격하는 비열한 수단인 경우다. 하지만 그 어느 편도 내용이 진실보다는 퍼뜨린 자 또는 조작한 자의 주관과 목적에 더 충실하게 돼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 쉽게 말하자면, 듣는 사람이 좀 이상하게 느껴져도 전하는 사람 또한 들었을 뿐이기 때문에 따져 물을 수가 없게 된다.”
유언비어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다. 당사자는 아무리 누명을 벗으려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 듣는 이들은 귀가 솔깃할 수밖에. 유언비어의 공격 대상은 종국에 무너지고 말기도 한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최초 유언비어를 퍼뜨린 사람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들은 말을 전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듣고 그 자리에서 삼켜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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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채널 '신의한수'가 사열 방향을 착각한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건강이상설을 제기하며 '고사총에 죽을 뻔 하다 살아난 문재인'이라고 가짜뉴스를 알리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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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채널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이 문재인, 노무현 정부에 대한 가짜뉴스에 대응하겠다며 새 프로그램 '유시민의 알릴레오'를 선보였다. 출처=유튜브.

요즈음에는 선거 때만 되면 유언비어들이 수없이 떠돌아다녀 후보자들을 괴롭히곤 한다. 가짜뉴스라는 것도 한 꿰미에 뀔 것들이다. 또 친구를 따돌리거나 골탕 먹이려고 없는 말을 지어내는 것도 유언비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욱밧듸 생이 소리헌다.’

터무니없는 엉뚱한 말은 사회를 혼탁하게 한다. 엉뚱한 허언이나 험담으로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가는 언젠가 자신도 그 덫에 걸려들지 발란 법이 없다. 마음에 새겨야 한다. 인과응보란 말!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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