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⑮ PMC: 더 벙커(Take Point), 김병우,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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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PMC: 더 벙커(Take Point)’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조카가 좋아하는 모바일 게임이 있다. 배틀 그라운드. 낙하산을 타고 전장에 떨어진 플레이어들이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게임이다. 혈혈단신으로 떨어진 플레이어는 사방에 있는 적을 피해 무기를 찾고 전략을 세워 전투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전장은 광활하다. 끝에는 낭떠러지와 바다도 있지만 적은 그곳까지도 찾아온다. 풀숲에 숨어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어느새 등에 대고 조준사격을 가한다. 다리라도 빠르면 도망 다니며 살겠지만 체력이 떨어지면 헉헉대다 총알이 스치기만 해도 아웃이다.

그래서 팀이 필요하다. 내가 만약에 다리가 의족이라면 나와 손잡을 친구가 필요하다. 그가 예전엔 적이라도 해도 더 옛날에는 형제였으니 팀이 될 만하다. 그가 헤드 닥터라면 더 좋다. 그런데 같은 팀이라고 해도 팀킬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각자도생. 강인하다 해도, 나약하다 해도 각자 살 방법을 궁리해야 하는 곳이 배틀 그라운드이다.

조카는 이제 중학생이 된다. 이제 진정한 배틀 그라운드가 시작되었다. 낙하산을 타고 가다 친구가 위험에 빠져있다고 해서 그를 도와주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러나 두 다리가 다 부서질 수 있다. 전투복과 다름없는 교복을 입고 전장을 향해 날아가는 수송기 안에 앉아있는 조카의 눈이 말똥말똥하다.

“태양아, 이모부는 이미 틀렸어. 너는 꼭 살아남으렴.”

나는 어두운 복도 구석에 주저앉아 피를 철철 흘리며 조카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조카는 게임으로 많이 단련되어 있으니 이 벙커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지. 문제를 풀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식으로 시험을 게임처럼 치른다면 태양이에게 좀 유리할까.

하지만 온갖 무기로 무장한 그들이 온다. 이제는 글로벌 전쟁이다. 모든 기업은 사실 군사기업(PMC)이다. 지구가 벙커 속으로 들어간다. 에이헵처럼 이름부터 바꿀까. 이름이 태양이니까 썬으로. 

‘영화적 인간’은 보통의 영화 리뷰와는 다르게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바탕으로 영화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코너입니다. 
이 코너를 맡은 현택훈 시인은 지금까지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등의 시집을 냈습니다. 심야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며, 복권에 당첨되면 극장을 지을 계획입니다. 아직 복권에 당첨되지 않았기에 영화를 보기 위해 번호표를 뽑아 줄을 서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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