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관광1번지 제주 허와 실] ③ 자연·시설관광서 생태·문화관광 ‘드라이브’ 걸어야  

서울에서 중고자동차 매매업을 하는 김모(56)씨는 지난 연말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계획했다가 목적지를 베트남 다낭으로 바꿨다. 자유여행으로 4인 가족이 3박4일간 제주를 찾는 일체의 경비를 따져보니 약 250여만원. 그러나 베트남 패키지 여행상품은 이보다 더 저렴하거나 비슷한 경비의 상품이 허다했다. 이미 가족여행으로 제주를 찾은 적이 두 차례 있는 김씨 가족은 제주에 더 이상 가볼 데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천혜의 자연환경 외에는 내·외국인들에게 제주 관광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말은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휴양·힐링을 즐기려는 개별관광객들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제주도 가느니 차라리 동남아 여행을 가겠다”는 말이 심심치 않은 것이 제주관광의 서글픈 현실이다.

한해 1000만명을 훌쩍 넘는 내외국인 관광객. 그러나 관광객의 양적 증가에도 좀처럼 도민 피부로 체감할 수 없는 지역경제. 반면, 오버투어리즘 현상으로 인한 난개발·쓰레기·물 부족 같은 부작용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면세점 등 대기업들만 배불린다는 불만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거기에 양적성장에만 매몰된 나머지 질적성장을 위한 이렇다 할 변화 노력 없이, 저가 단체관광만 양산해온 현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질적성장이란 화두가 등장한 것이 채 10년에 지나지 않는 등 제주관광은 획기적인 체질 개선에 더욱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다시 찾는 제주 위해, 더 좋은 관광 필요해

제주관광이 이미 다녀간 관광객들에게 다시 찾고 싶은 매력적인 관광지로 인식시키는 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단순한 자연 관광과 시설 중심의 관람 위주 관광 문화에서 생태·힐링·문화관광으로 제주관광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재방문율을 높이는 비결이라고 입을 모은다. 

내·외국인 관광객들의 재방문율을 늘리고 체류일수도 증가하면 그만큼 지역에서 관광객들이 지갑을 여는 횟수가 늘 테고, 단순 관광시설에만 집중되던 관광객 발길은 지역 내 곳곳으로 분산되는 효과도 크다. 무엇보다 관광지 중심이 아니라 휴양이나 힐링을 즐기려는 체류형 관광지로 바뀐다는 것이다.    

제주관광공사가 지난해 3월 발표한 ‘2017 제주특별자치도 방문 관광객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주를 찾은 내·외국인 관광객들의 재방문율이 늘고, 체류일수도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점은 매우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일이다. 

국가승인통계로 매년 실시된 해당 조사는 2017년 제주를 방문한 만 15세 이상 내·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매달 1000명씩 약 1만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제주방문 횟수 조사 결과 재방문율은 내국인 관광객의 경우 2회 이상 재방문이 2016년 67.4%에서 2017년 69.8%로 2.4%포인트 증가했다. 3회 방문은 15.9%에서 15.6%로 줄었지만 4회 이상 방문은 25.4%에서 27.5%로 늘었다. 외국인 관광객인 경우 2회 이상 재방문 비율이 2016년 12.3%에서 19.8%로 크게 늘었다. 4회 이상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비율도 같은 기간 1.8%에서 5.3%로 증가했다.

내국인 관광객의 평균 체류일은 2016년 평균 4.12일에서 2017년 4.49일로, 외국인 관광객도 4.13일에서 4.39일로 각각 늘었다. 실제 제주 여행목적을 묻는 질문에 75%의 내국인 관광객들은 ‘휴가·휴양’ 차 제주를 찾았다고 답했고, 개별여행객 비중도 92.5%에 달했다. 또 내국인 관광객 76.1%는 해외여행 대신 ‘처음부터 제주’를 여행목적지로 선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제주가 예전처럼 신혼여행이나 수학여행, 단체관광으로 한번 오는 관광지가 아닌 개별여행을 통해 휴양과 힐링·체험을 즐기려는 체류형 관광지로 바뀌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한민국 걷기 열풍을 이끈 (사)제주올레의 등장이다. 제주올레길의 등장으로 관광의 패러다임도 개발보다는 보존, 자동차보다는 걷는 여행이라는 인식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제주올레가 ‘본래 그대로의 자연’과 만나는 관광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렸다면, 이제는 자연도 지키면서 더 많은 도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더 좋은 관광’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여기서의 ‘이익’은 단순 금전적인 수익만 해당하지 않는다. 높은 자리에 있는 소수에게만 이롭지도 않다. 관광객, 여행 상품 제공자, 자연 환경 등 제주 관광의 삼박자 모두를 위한 이익이다. 

# 제주 관광의 변화 키워드...공정, 생태, 마을

(주)제주착한여행을 운영하는 허순영 대표는 “관광 상품을 개발할 때 처음부터 유명 관광지가 아닌, 알려지지 않는 제주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는 게 우리 회사 콘텐츠의 핵심이다. 매주 탐방을 가면서 마을 구석구석을 찾아가고 상품으로 만든다”고 밝힌다.

(주)제주착한여행은 공정여행 기획가 양성과정을 2016년부터 1년에 두 차례 씩 진행해오고 있다. 허 대표는 “여행업이 아닌 교사, 요리사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참여해 각자의 위치에서 관광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며 ”교육 참가자들은 오버투어리즘, 관광 수용력, 교통과 쓰레기 문제 등으로 인해 제주 관광이 도민 대다수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고 공감한다. 그래서 인지 교육 횟수가 쌓일수록 적극성도 높아지는 추세“라고 강조했다.

2003년부터 (주)제주생태관광을 운영하는 윤순희 대표(제주사회적기업협의회장)는 “우리 회사의 목표는 ‘관광으로 세상을 행복하게’다. 고객이 여행 일정을 마칠 때 ‘우리나라에 제주도가 있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목표를 매번 품는다”면서 “관광객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제주도를 만났으니 이런 보물섬을 오래 유지될 수 있게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관광 만족도도 높이고 제주의 가치도 지키는 일석이조가 되지 않겠냐”고 말한다.

▲ 제주착한여행의 프로그램 모습. 제공=제주착한여행. ⓒ제주의소리
▲ 제주생태관광의 프로그램 모습. 제공=제주생태관광. ⓒ제주의소리

생태·공정여행 등을 내세우는 제주 여행업계의 공통점은 ‘마을’이다.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헷갈리는 복잡한 장소 대신 ‘토박이’ 도민들이 사는 장소로 향한다. 그곳에서 도민들이 운영하는 음식점, 숙박업소, 마을기업 등을 이용하고 제주의 매력을 찬찬히 느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도민·관광객 가리지 않고 이런 유형의 관광을 낯설게 느꼈지만, 점차 인지도가 높아진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여기에 장애인 전문 여행사 두리함께, 제주4.3을 알리는 제주다크투어 같은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활동하는 업체들도 주목할 만하다.

백가운 제주다크투어 대표는 “4.3 70주년이었던 지난해 약 1200명이 4.3을 주제로 한 제주다크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4.3 뿐만 아니라 제주의 역사와 문화도 같이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면서 “만 명이 한 번 찾는 섬이 아니라 백 명이 열 번 방문할 수 있는 매력을 가진 섬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 비전을 가진 관광 계획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제주다크투어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4.3기행. 제공=제주다크투어. ⓒ제주의소리

공공 영역에서도 ‘더 좋은 관광’에 대해 모색하고 있다. 제주관광공사는 지난 2015년 12월 지역관광처를 신설했다. 

지역관광처는 현재 융복합지역관광팀, 문화관광팀으로 나눠 지난해 ▲생태관광 테마파티 에코파티 ▲지속가능한 지역관광 컨퍼런스 ▲추자·마라 매력화 프로젝트 ▲삼춘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삼다공원 야간콘서트 ▲원도심이 와랑와랑 ▲목관아 달빛콘서트 ▲제주국제사이클링페스티벌 ▲제주4.3 70주년 홍보·팸투어 등을 진행했다.

신현철 융복합관광지역팀장은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유휴시설이 우리 예상보다 훨씬 많이 읍면 농촌 지역에 존재한다. 정부 평가에서 농촌 유휴시설을 활용한 사업은 우대 점수를 줄 정도”라며 “이런 시설과 제주만의 자원은 있지만, 관광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낼 사업·기획력은 부족하기에 중장기 역량을 키우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마을 관광을 위해서는 관 중심이 아닌 지역 주인공들이 일궈가야 한다”고 과제를 밝혔다.

정현정 문화관광팀장은 “제주시 원도심에 몇 년 동안 문화 행사를 개최하니, 이제는 때가 되면 사람들이 모이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다른 행사들도 함께 열리는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면서 긴 안목에서 접근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 제주관광공사의 '생태관광 테마파티 에코파티' 모습. 제공=제주관광공사. ⓒ제주의소리
▲ 제주관광공사의 '원도심이 와랑와랑' 모습. 제공=제주관광공사. ⓒ제주의소리

# 고인물 머물지 않고 새로운 물결 받아들여야

다만, 이 같은 관광 유형은 도내 관광 산업 전체로 볼 때 아직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지속가능한 운영이 자신 있다는 여행사는 매우 적은 편이다. 기업, 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연수, 교육 여행 등 꾸준한 수익 모델을 발굴하는 데 애를 쓰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존 제주 관광을 부정적으로 매도한다고 여기는 시선이 있다. 산업화 시기, 지역 경제를 견인해온 노력은 노력대로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분명한 문제점이 생겨났고, 그것이 도민 전체의 삶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는 수준까지 다다른 사실을 외면한다면 자칫 ‘고인물’로 전락할 수 있다. 

생태·공정여행을 기존 제주 관광의 밥그릇을 나누는 ‘마이너스’가 아닌, 제주 관광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가능성을 넓히는 ‘플러스’로 인지하고 공생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제주도정 역시 이런 인식 위에서 생태·공정여행을 위한 보다 실효성 있는 지원 정책을 세워야 한다. 

허순영 대표는 “공정여행이 정착하려면 보다 정교한 통계 자료가 필요하다. 공정여행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국내·외 관광객 실태 조사, 계절·시간·연령대별 관광지 이용 패턴, 항공편·호텔·렌터카 이용 형태, 관광지에 머무는 시간과 관광 형태 등 각종 통계를 조사해야 한다.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기존 통계 수집과는 새로운 방식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정책을 제안했다.

윤순희 대표는 “제주사회적기업협의회는 지난해 행정자치부에서 공모한 ‘주민체감형 디지털 사회혁신 활성화(공감e가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중교통을 활용한 여행 코스를 만들고 플랫폼까지 선보일 예정”이라면서 “생태관광은 몇몇 업체만으로 이룰 수 없다. 취지에 공감하는 더 많은 여행사가 많아져야 한다”고 밝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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