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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생육환경 개선사업을 알리는 현수막. 

'생육환경 개선사업' 놓고 논란..."비자나무 살리려면 제거 당연" vs "무분별 숲 훼손 안돼"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된 ‘천년의 숲’ 제주 비자림 내 정비사업과 관련해 논란이 일고있다. 

사업의 핵심은 비자나무의 성장을 방해하는 다른 나무를 베어내는 것. '주인공'인 비자나무의 보전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과 숲을 함부로 훼손해선 안된다는 의견이 전문가 사이에서도 부딪히고 있다. 

7일 오전 국내 최대의 비자나무 군락지인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비자림. 탐방로를 따라 걸으니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비자림 속 얼기설기 섞여 있어야 할 넝쿨과 작은 나무들이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잘려나간 넝쿨과 나무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취재 소식을 접했는지, 네다섯명의 인부들은 작업을 멈추고 철수했다. 주요 제거 대상은 작은 키의 활엽수와 넝쿨식물. 

벌채가 안된 곳에는 성인 남성 높이의 나무와 넝쿨이 들어차 있는 반면, 벌채가 진행된 곳에는 한손으로 쥘 수 있는 두께의 나무가 밑둥만 남겨져 있었다. 

벌채된 구역에서는 최근 발아한 것으로 추정되는 새끼손가락 정도 크기의 어린 비자나무도 눈에 띄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지난달 14일부터 ‘제주 비자나무 숲 생육환경 개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은 2월까지 예정됐다. 

골자는 비자림 탐방로를 따라 좌·우 약 3m를 제외하고, 숲 중심부의 넝쿨과 다른 나무들을 벌채하는 것이다. 산책로도 정비한다. 

1차 벌채 작업이 끝난 뒤 추가 벌채 작업도 예정됐다. 추가 벌채는 벌채 설계 용역과 문화재청 허가를 다시 받아야 해 시기는 유동적이다.  

총 벌채 구간은 비자림 총 44ha 중 8.3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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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선 왼쪽에 베어진 넝쿨나무 등이 보인다. 오른쪽은 탐방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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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채된 후 곳곳에 널브러진 나무들.
비자림에는 비자나무 말고도 다양한 식생이 존재한다. 제주 특유의 곶자왈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생달나무와 까마귀쪽나무, 후박나무 등 활엽수가 비자나무 생육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게 세계유산본부 측의 판단이다.  

비자림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비자림에는 비자나무 5162본이 있다. 단일 품종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이중 2815본에는 각각의 번호가 부여됐다.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조치다.  

그럼에도 최근 비자나무 3그루 정도가 고사 직전에 몰렸다. 이유는 급성장한 후박나무 등이 햇빛을 가리면서 비자나무가 빛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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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자나무 보존을 위해 잘라낸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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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발아한 새끼손가락 정도 크기의 비자나무.

세계유산본부는 지난해 1억1400만원 예산으로 한국자치경제연구원에 의뢰해 비자림 실태 등을 조사했다. 용역 결과 비자가 아닌 나무 등을 벌채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생육환경 개선사업은 이 용역 결과에 따른 것. 벌채 작업은 송원나무종합병원에서 담당하고 있다. 

비자림 내부 벌채 작업 소식을 듣고 이날 비자림을 찾은 식물학 박사인 김찬수 제주생명의숲 국민운동 상임 공동대표는 비자림이라는 하나의 숲 전체를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 대표는 “비자림은 곶자왈이다. 비자나무를 제외한 식물을 제거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다양한 식생이 존재해야 숲으로서 가치가 있다. 비자나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베어내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비자림 보존 방안에 대해서는 “비자나무 성장을 방해하는 나무의 가지를 정리하는 방법으로도 충분히 비자나무를 보존할 수 있다. 이미 성장한 비자나무는 어린 나무의 성장을 방해한다. 그 속에서도 성장하는 나무가 있다. 숲은 자연스레 유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SNS 상에서도 논란이 일고있다.

최근 비자림에 다녀왔다는 이 모씨는 페이스북에 "비자림은 숲이 아니라 정원(공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천연보호구역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라며 "비자나무의 생육을 위한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비자나무와 큰 나무를 제외하고 모두 잘라내는게 유일한 해결책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초본식물과 목본식물이 어우러지고, 활엽수와 침엽수들이 어우러져 자연스레 경쟁하는 생태계가 건강한 숲으로 알고있는데 꼭 이래야 하나"라고 지적했다. 

비자림 관리사무소 측은 숲의 유지·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비자림은 1000년의 숲이다. 수령이 1000년 가까운 비자 나무도 있다. 비자나무 평균 수령이 600년에 달한다. 당연히 보호해야 나무”라며 “‘비자림’에서 비자나무 보호를 위해 다른 나무를 제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이어 “후박나무 등 활엽수는 햇빛을 받으면 급성장한다. 갑자기 성장해 비자나무 성장을 위협할 수 있다. 성장하기 전에 베어내야 한다. 뒤늦게 베어내려면 예산이 2~3배 이상 투입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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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박나무(빨간원)가 높게 자라면서 주변 비자나무가 빛을 받지 못하고 있다. 비자림 관리사무소 측은 같은 상황이 연출되지 않도록 사전에 나무를 베어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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