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94) 표선리 당케 산물

표선리에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설문대할망이 나무를 베어 9만여평의 표선해수욕장을 하루 밤 사이에 메워버리면서 페션마루(페선마루, 표선니마루)라 불렀다. 

지명중에 닥낭통, 알력통, 여의못, 순못, 곡지못 등 제주어로 ‘굴헝’이라는 ‘못’들이 많고 산물이 없는 마을로 식수가 문제되었던 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일찍부터 알력새통, 뒷골새, 당개, 두루박물통 등 많은 우물을 파서 식수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대표적인 마을이다. 그러나 우물들은 염분이 섞여 있어 물맛은 짭짤하여 문제가 많았다. 설촌과 함께 나룩질물이라는 산물을 유일한 식수로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 

산물이 귀했던 마을에 현재 유일하게 바닷가에서 나는 산물로 보전되는 당캐산물이 있다. 이 산물은 설문대(仙門大) 할망 관련 전설이 전해지는 표선해수욕장이 있는 표선항 북측 해안가에서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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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케산물과 표선백빈.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 가까이에 ‘당케세명주할망당’이 있다. 이 물을 제수로 사용하고 있으며, 당케포구(일명 당포)라 했던 마을 사람들이 식수와 기타 생활 용도로 사용했다. 이 마을에서는 설문대할망을 세명주할망 혹은 설맹디할망으로 지칭하는데, 표선리 당케 일대는 설문대 할망이 토목공사로 조성한 곳이라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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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케세명주할망당.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당케는 표선항 일대로 구전에 의하면 ‘옛날 당케마을 앞 바다는 수심이 너무 깊고 거칠어서 폭풍이 몰아치면 파도가 마을을 덮쳐 모든 것을 쑥밭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설문대할망에게 마을앞 바다를 메워달라고 빌었다. 설문대 할망은 마을사람들의 애원을 듣고는 하룻밤 만에 표선앞 바다를 메워 모래밭을 만들었다’면서 흰모래로 만들었다하여 표선백빈이라 한다.

표선해수욕장은 면적이 25만㎡를 넘고 백사장 길이가 200m, 폭이 800m로 원형 호수를 연상케 한다. 흰색의 패사와 검은색의 현무암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해안경관이다.

표선해수욕장과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도 존재한다. 해수욕장이 백사장으로 되기 전에는 깊고 깊은 바다였는데 설문대할망이 소중이(속옷의 제주어) 한번 입어 보지 못하는데 살아서 무엇을 하겠느냐고 하면서 무척 화를 내며 표선면 하천리 달산봉에 있는 집채 만 한 나무들을 표선 앞 바다로 쓰러뜨리고 바다에 있는 전복, 소라, 오분작이, 조개껍데기들을 부셔 흰모래로 만든 후 이 모래로 쓰러진 나무를 묻고 백사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등달(음력 정월 15일부터 이월 15일까지)에 전복, 소라, 오분작이 등이 알맹이는 없고 껍질만 남는데, 이런 것이 백모래로 만든 증표라고 한다. 

세명주할망이 만든 해수욕장 동쪽 끝자락에서 유일하게 솟아나는 귀하기 귀한 당케산물은 산에서 내린 물을 받아 당에서 사용한 물이란 의미도 있지만, 단 한방울의 물도 소중하게 통에 받아썼던 당포 포구의 물이다. 그래서 산물통이라고도 하는데, 통이라 한 것은 바닷물과 섞여 짠맛이 나는 물이기 때문에 최대한 짠맛을 없애기 위해서 통을 만들어 물을 모아 염분기를 가라앉히고 사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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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케산물(좌 여자용, 우 남자용).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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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케산물과 갯담.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지금 이 산물은 두 칸으로 나눈 사각 시멘트구조물로 보호시설을 만들어 보전되고 있으며, 산물이 솟는 곳에 원담처럼 에워싼 갯담 안쪽 모퉁이에 산물이 자리하고 있다. 산물은 솟는 곳을 이용하여 두 칸으로 보호시설을 만들고 바다 쪽은 남탕, 바다 안쪽은 여탕으로 구분하였다. 

현재 산물은 보호시설 바깥쪽 용암절리대 경계의 바위 하부의 모래를 뚫고 솟아나는데, 물을 아는 일부 피서객들이 목욕물로 이용한다. 그러나 관리가 안 되는지 물통은 모래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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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손된 물통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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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통 밖 용암 틈에서 용출 광경.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시멘트 만든 보호시설은 금이 가고 많이 훼손되고 방치되어 그 모습이 바다 풍경과 어울리지 않지만 어색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다. 그래도 산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감이 가고 다행스럽다. 계속 방치되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이다. 지금이라도 옛 모습을 살리면서 해수욕장에 어울리는 피서객들의 명소로써 거듭나는 쉼터가 되었으면 한다.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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