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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목격자 없는 미세섬유 간접증거가 쟁점...피의자는 범행 부인 ‘치열한 법정 공방 예고’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는 보육교사 살인사건이 10년 만에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유죄를 자신하는 검찰과 범행을 부인하는 피의자 사이에 법원의 합리적 판단만 남았다.

제주지방검찰청은 2009년 보육교사 이모(당시 27세)씨 피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박모(49)씨에 대해 강간살인 혐의를 적용해 15일 구속기소했다.

박씨는 2009년 2월1일 새벽 제주시 용담동에서 자신이 운행하는 택시에 탑승한 이씨를 성폭행 하려다 살해하고 애월읍 고내리의 배수로에 사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10년 전 박씨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결국 풀어줬다. 박씨는 이듬해인 2010년 2월 제주를 떠나 여러 지역을 떠돌며 생활해 왔다.

수사가 난항에 빠지면서 사건 발생 3년 4개월 만에 수사본부는 해체됐다. 2016년 2월7일 제주지방경찰청 장기미제사건팀이 사건을 넘겨받으면서 형사들은 다시 박씨를 겨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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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여성의 사망시점을 증명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동물사체 실험을 진행했다. 당시 사체 상태와 기후조건까지 맞춰 사망 시점을 실종 당일을 기준으로 24시간 이내로 특정했다.

이후 범행 동선에서 박씨의 차량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정하고 당시 용의자와 피해자의 옷, 택시에서 발견된 섬유 조각에 대한 미세증거 분석 작업을 진행했다.

발전된 과학수사 기법을 총동원 해 10년 전 증거물을 다시 꺼냈다. 각 사안별로 입증 불가능한 경우의 수를 제외하며 용의자를 추렸다. 경찰의 마지막 경우의 수는 결국 박씨였다.

다수의 증거를 내세운 경찰은 범행 발생 9년만인 5월16일 오전 8시20분 경북 영주시에서 박씨를 체포했다. 구속영장까지 곧바로 신청하며 수사에 자신감을 보였다

반면 재판부는 경찰이 제시한 섬유 조각이 유사성에 그쳐, 다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범행을 일관되게 부인한 박씨는 체포 64시간만인 5월19일 풀려났다.

절치부심한 경찰은 CCTV 속 노란색 캡이 달린 NF쏘나타 택시 동선을 재분석했다. 도내 18대인 해당 택시의 경우의 수를 재산정한 결과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택시는 박씨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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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섬유 증거도 재차 보강했다. 피해자와 박씨의 옷 5곳에서 서로의 섬유 조각이 발견됐다. 섬유가 군집을 이루며 교차전이 된 현상은 두 사람간 격렬한 신제접촉을 추정할 수 있다.

담당검사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30분짜리 발표자료(PPT)까지 만들어 판사를 설득했다. 결과는 영장 발부였다. 이는 1차 영장 기각 당시와 비교해 증명력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검찰은 증거를 보강해 공소사실 유지에 집중하고 수사검사도 공판에 들여보내기로 했다. 핵심은 직접 증거 없는 간접적인 물적 증거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있느냐 여부다.

2009년 2월8일 애월읍 고내리 배수로에서 발견된 이씨의 시신에는 범인의 DNA가 없었다. 주변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에서 DNA가 나왔지만 이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향후 재판의 쟁점도 법원이 섬유에 대한 간접증거를 인정하느냐 여부다. 검찰은 피의자의 자백이나 목격자의 진술, DNA 등 직접증거 없는 정황 증거만으로도 범행을 입증해야 한다.

검찰 관계자는 “법의학자와 법과학분석관 등 전문가들의 증언을 법정에서 부각시킬 것”이라며“공소유지를 통해 억울하게 죽은 망자의 한을 풀어주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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