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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공공미술의 도시, 베를린

김준기 평론가 news@jejusori.net 2019년 01월 21일 월요일 09:02   0면
[BOOK世通, 제주 읽기] (120) 백종옥,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반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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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종옥,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반비, 2018. 출처=알라딘.

가장 예술적인 방식으로 역사를 기억하는 공공미술의 도시, 베를린은 말 그대로 도시 자체가 ‘기억의 예술관’이다. 15년 전에 베를린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저자 백종옥은 작가, 큐레이터, 예술행정가, 미술생태연구소장 등 다양한 방면의 활동을 하고 있는 미술인이다. 유학시절에 받은 감동의 기억을 소환하여 책을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베를린의 예술작품들에 대한 백종옥의 생각은 낱낱의 작품 소개에 머물지 않고 공공미술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베를린을 대표하는 10개의 공공미술 작품들에 대한 비평서이다. 첫 장에 실린 ‘노이헤바헤(신위병소)’는 건물 자체가 공공미술 작품이다. ‘전쟁의 비극을 묵상하는 신위병소’는 베를린 공공미술의 정신과 방법을 가장 깊이 있게 전달해준다. 옛 왕궁의 위병소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이 공간은 건축물의 역사성을 동시대적인 소통으로 연결하여 ‘전쟁과 폭력의 희생자들을 위한 중앙 추모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의 한 가운데에는 케테 콜비츠(1867-1945)의 작품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가 놓여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만큼 전쟁의 상처를 깊이 담을 수 있는 것이 그 무엇이 있겠는가".

전쟁의 상처를 잊지 않기 위해 만든 이 작품에 대해 초라해 보인다거나 비극의 처절함이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논평들에 대해 콜비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문장에 등장하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은 실제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인 콜비츠 자신의 마음이다. 판화가이자 조각가로 잘 알려진 케테 콜비츠는 전쟁 폭력과 초기 자본주의의 현실을 담은 반전과 평화 메시지의 예술가이다. 

옛 동베를린 지역의 건축물 한 동 전체를 사용하고 있는 이 작품은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감동을 준다. 텅 빈 공간 속 한 가운데에 죽은 아들을 안고 웅크리고 앉아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다. 건물 천정이 뻥 뚫린 상태여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는다. 바깥이었다면 이런 감동이 없거나 덜했을 것을,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건물 안에 모자상만을 놓아두고는 천정을 뚫어 눈비를 맞게 함으로써 감동을 크기를 배가한다. 공간의 크기에 비해 작품의 크기가 왜소한 데서 오는 역설의 감성학이다. 

아무 장치도 없이 텅 빈 공간 한가운데 바닥에 놓인 브론즈 조상이 있고 그 위에 빛을 떨어뜨리는 천정의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은 빛을 끌어들이는 장치라기보다는 눈비를 끌어들이는 장치이다. 눈비를 가리기 위해 만든 건물 천정에 구멍을 뚫고 그 아래 피에타를 자리잡게 한 이 공간은 전쟁 폭력에 의한 희생을 추념하는 비극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그 천정의 구멍 하나로 인해 이 작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을 연출한다. 숭고미란 이럴 때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필자는 가끔 ‘예술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듣는다. 직업상 감동받은 작품이 많을 것 같지만, 의외로 드물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나는 콜비츠의 이 모자상을 언급하곤 한다. 모자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식상한 주제인가. 서구의 피에타 조상들만 해도 얼마나 애절하게 2천년동안 관람자들의 마음을 동하게 했겠으며, 부산 태종대의 자살바위 위에 있는 모자상은 또 얼마나 많은 힘겨운 이들에게 삶의 따뜻함을 전달했겠는가. 하지만 대다수의 모자상들이 종교 이데올로기와 가족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신파적 내러티브에 의존하고 있다. 

콜비츠의 모자상이 각별한 이유는 공간의 감성학을 도입하여 모자상의 신파적인 내러티브를 절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출해 보일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조형물을 바닥에 깔아 두고, 천정을 뚫어 빛과 눈비를 끌여들이는 탁월한 공간 감성학이 돋보인다. 광장에 우뚝 선 높은 좌대 위의 영웅적 인물상에 대해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반면, 이렇게 낮은 곳에 임한 인간적인 모습의 공공미술 작품에 마음을 열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본디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일까.

이처럼 높은 곳을 올려다보게 만드는 광장의 서사가 익숙하게 자리잡은 근대도시의 기념비들과 달리, 바닥과 수평을 지향하는 베를린의 공공미술은 ‘낮은 공공미술’이라고 부른 만하다. 그것은 노이헤바헤 공간의 피에타만이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작품들은 높은 곳에 우뚝 솟아 광장을 지배하는 수직의 기념비들과는 달리 수평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훔볼트대학 광장에 자리잡은 미하 울만의 <도서관>은 아예 자하로 파고들었다. 이 책의 두 번째 장, ‘분서의 흔적, 텅 빈 도서관’에서는 괴벨스가 주도한 훔볼트대학의 유태인 학자들의 서적 분서 사건을 담은 울만의 작품을 다룬다.

여기 텅 빈 공간에 가득한 장소의 기억이 있다. 광장 한가운데에 위치한 울만의 조형물은 광장 표면 위로 드러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밤에 빛을 발하는 투명 유리판이 전부다. 이 작품은 지하에 존재한다. 지하에는 빈 책장이 있다. 분서 사건을 기억하게 하는 역발상이 돋보인다. 1933년에 유태인 학자들의 저서들을 불태운 나치는 이후 유태인들의 정신만이 아니라 신체를 유린했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책들의 화형식은 만행의 시작’이었다. 유태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이 작품은 사건이 벌어진 장소 지하에 텅 빈 공간을 창출함으로써 불멸의 기억 저장소를 만들었다. 

콜비츠나 울만의 작품들만이 아니다. 이 책의 모든 작품들은 전쟁 폭력에 관한 예술적 기억투쟁을 다루고 있다. 피터 아이젠번의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는 2711개의 콘크리트 블록으로 이뤄진 거대한 추모 공간이다. 니콜라우스 히르슈 등의 <17번 선로>, 카롤 브로니아토프스키의 <추방된 베를린 유대인을 유한 경고의 기념조형물> 등 작품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베를린의 공공미술은 전쟁에 대한 기억과 반성적 성찰을 담고 있다. <기념비 1944년 7월 20일>(리하르트 샤이베 외), <아이히만의 유대인 담당부서>(로니 골츠), <빛상자들>(프랑크 틸), <기념비>(콜호프앤콜호프), <추모의 창>(온아르키텍투르), <화해의 예배당>(페터 자센로트 외) 등 이어지는 작품들에서도 역사의 기억을 소환하여 성찰하는 베를린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베를린의 공공미술 작품들에 저자의 깊은 이해가 잘 담겨 있다는 점이다. 유학 시절 베를린에 머물며 오랫동안 접해온 그의 작품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 잘 담겨있으며, 나아가 작품 이해를 위한 역사적 배경과 작품 생산의 과정을 두루 꿰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작품에 대한 비평적 분석과 역사 및 사회-정치적인 해석을 동반한 백종옥의 베를린 공공미술 이야기는 공공미술 비평이 갖춰야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잘 알려준다. 

베를린 공공미술이 들려주는 또 하나의 자극은 인체조각의 역설이다. 한국 미술계에서 인체 조각은 그 어떤 자극도 선사하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장르 정도로 취급받고 있다. 베를린의 공공미술에 나타난 인체 조각들이 보여주는 성찰의 깊이는 그러한 편견의 부당함을 일갈한다. 예술이 인간의 형상을 다루지 않고 그 어떤 맥락에서 인간의 삶을 다룰 수 있다는 말인가? 모든 작품이 인간의 형상을 다룰 필요도 없지만, 역으로 인간의 형상을 다루지 않고 우리의 삶을 다룬다는 것도 공허한 언어유희에 빠질 위험을 높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만 유의해야 할 것은 그 인체를 만들고 배치하는 공간의 감성학이 있어야 진부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베를린의 예술 작품들은 그런 점에서 인체의 조형성만큼이나 배치의 감성학과 철학이 중요하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백종옥의 저술은 공공미술 비평의 새로운 관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전시장에 걸린 회화 작품 비평에서 작품 제작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거의 없다. 작품의 재료나 가격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예산 대비 효율성의 문제 또한 심난하게 미술작품 비평의 주요 요소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공공미술 비평은 과정과, 재료, 가격, 효율성 등의 문제를 다룬다. 국가권력과 시민사회가 진지하게 공론장을 열어 작품의 제작과 설치, 보존에 이르기까지 공공미술 작품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해야)한다는 점도 신선하다. 심지어 작품의 감상/향유에 따른 반응과 이에 대한 대응까지 담아 공공미술 비평이 일반적인 예술작품 비평과 달라야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역사성과 장소성을 바탕으로 인간이해의 심연으로 다가서게 하는 베를린 공공미술을 정갈한 비평언어로 담아낸 저자의 수고에 경의를 표한다.

▷ 김준기
미술평론가.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전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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