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좀 하고 살자

함석헌 선생은 일찍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있는가"고 반문할 텐가. 그렇다 생각하지 않고,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다.

살아있고 말을 하고 걸어다닌다고 다 생각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반성적 의식(성찰)을 갖고, 자신의 시대와 자신의 삶에 대해 고뇌한다는 뜻이다. 생각 없이 산다는 것은 반성적인 의식 없이 자신의 시대와 삶에 대해 그저 무관심과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대체로 자신과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일에 대해선 나라 경제가 거덜나도, 정치가 개판으로 돌아가도, 이웃이야 죽든 살든 눈 딱 감고, 들어도 못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한다. 그런데 손톱만큼이라도 자기와 이해관계가 맞부딪치는 일에 대해선 눈에 쌍심지를 집고 나서는 사람들이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사회가 건강해지고 아름다워진다. 생각 좀 하고 살자.

꼴통들은 못 말려

많은 에피소드를 남기고 우여곡절 끝에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막을 내렸다. 우리에게 이번 유니버시아드 대회는 경기 자체보다는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참가와 이들의 모습이 더 큰 관심거리였다.

극우 단체들의 '8·15 반핵 반김 국민대회'에서 있은 김정일 위원장 사진과 인공기 훼손 사건으로 경기 불참을 선언했다가 노 대통령의 유감 표명으로 하루만에 번복한 일이나, 8월 24일 역시 극우 단체들의 반북 기자회견과 북한 기자들의 충돌, 모 시민단체가 내건 북한선수단 환영 플레카드에 찍힌 김정일 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북 응원단이 보인 반응 등이 경기 내내 커다란 관심거리로 화제에 올랐다.

"장군님의 사진이 비에 맞는 걸 어떻게 두고보느냐 말입니다"라며 울먹이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플레카드를 끌어내려 사진이 정면으로 나오게 곱게 접어들고 가던 모습은 실로 경이로운 '사건'이었다. 이를 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갖가지였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간다'에서부터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에 이르기까지.

남북 선수들과 임원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한반도 단일기를 앞세우고 입장하는 광경은 감격의 물결이었다. 그것은 다시 보는 '감격시대'였다. 우리의 통일의지를 내외에 천명한 신명나는 이벤트였다.

그런데 압권은 역시 지난 부산 아시안 경기에 이은 북한 꽃미녀 응원단의 응원이었다. 여대생들로 이루어진 북한 응원단의 면면에서 우리는 마치 풋사과 같은 상큼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서구화된 식생활과 발달한 성형술로 자꾸만 팔등신 서양미인을 닮아가는 남한 여자들의 모습에 식상한 사람들이 느끼는 공감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얼굴에서 우리는 그 옛날 조선 여인들을 보았다.

보수를 위장한 냉전수구세력들의 조직적인 반북집회와 기자회견은 스포츠 교류를 통한 범민족적 화해 분위기에 초치고 재 뿌리는 추태였다. 역시 꼴통들은 못 말리는 집단들임을 생생히 확인할 수 있었다. 꼴통들에겐 몇 가지 공통된 행태가 있다. 하나는 남이 결코 잘 되는 것을 눈뜨고 못 봐 잔치상에 재 뿌려야 성에 차는 심술이요, 둘은 결과에 대해선 무대책 무책임을 고수한다는 점이요, 셋은 그들의 사전엔 중도나 화합이란 단어는 없는데, 이것은 시대나 문명사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무지함, 옹졸함, 극단적인 사고의 동맥경화에 빠진데서 연유한다. 우리는 선이고 너희들은 악이라는 과도한 선악이분법에 집착하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

사회주의 종주국과 그 주변국들이 다 무너지고, 전후 세계사를 양분했던 냉전 질서가 이미 와해된 이 시점에서도 아직도 그들 의식의 시계는 6, 70년대에 맞춰져 케케묵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미망에 사로잡혀 있다. 극우 꼴통들에겐 자주통일이니, 평화통일이니 하는 말들은 매우 사치스런 말이다. 모든 대북 지원과 교류, 협력 사업은 이적행위일 뿐이다.

이들의 일급 이데올로그인 월간조선 사장 조갑제의 말대로, 이들은 평양의 주석궁에 탱크를 밀고 들어가 항복문서를 받아내야 통일이 된다는, 끔찍하고 위험천만한 흡수통일론을 주문처럼 읊조리고 있는 자들이다. 조금이라도 남북간에 화해와 평화의 기운이 싹트는 행사나 사업은 배가 아파 그냥 못 넘어가는 자들이다. 8·15 반북집회에서 대형 인공기를 온몸으로 가르고,(마치 해원굿을 하는 무당이 광목천을 가르듯이) 불사르는 모습은 한 편의 코믹한 3류 '퍼포먼스'였다.

이들 냉전 수구적 극우 꼴통들의 족보를 더듬어 올라가면, 일제 식민주의자들에게 빌붙어 민족을 팔고 일신의 영달을 꾀한 친일 모리배들이 있다. 이들은 해방 후 미군정기에는 다시 친미사대주의자로 발빠르게 변신, 친미만이 살길이다 라고 게거품을 물었으며, 전쟁으로 분단이 고착화 된 이후엔 반공, 반북주의자로 모든 양심적인 민주세력들, 자주적 평화통일론자들을 '좌익용공'으로 몰아 탄압하고, 빨갱이 사냥을 벌였던 자들이다.

이들은 반공 국시론을 비판하고, 통일국시론을 주장한 국회의원조차 구속시켜 감방에 집어넣었던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지역 분열을 조장한 자들도 같은 부류에 속한다. 알량한 부와 권력으로 소지역주의를 획책하는 지역 토호들도 대체로 이런 부류의 인사들이다.

누가 이들을 말릴 것인가.

꼴통들의 나라

한반도를 감도는 평화와 화해의 무드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이 시대의 대세가 되었다. 2천 년 6·15 공동선언 이후 꾸준히 지속돼 온 남북간 교류 협력 사업은 휴전선 지뢰밭을 갈아엎어 끊어진 철로와 도로를 다시 잇고, 이제 그 길로 금강산과 평양, 백두산 관광의 길도 열렸다. 수학여행 길에 나선 제주의 학생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개성과 평양을 거쳐 백두산에 오를 날도 머지 않을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릴 일이 아닌가.
최근 잇달은 극우 꼴통들의 조직적 발호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색깔을 띤 노무현 정권의 출범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이들이 노 정권의 지리멸렬한 정국 운영으로 벌어진 민심의 틈새를 노린 세 과시로 보인다.

이들이 요즘 곧잘 들고 나오는 반핵과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가 평화주의자와 인권 옹호론자를 가장한 허구라는 점은 세계 최대 핵 보유국 미국에 대해선 맹목적 찬양과 숭배로 일관해 왔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지금까지 국내의 민주세력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열악한 인권 상황에 대해선 철저한 침묵으로 방관, 방조해 왔다는 사실에서 너무나 잘 드러난다.

지금까지 이 나라는 수구적인 극우 꼴통들의 천국이었다. 역대 정권은 음으로 양으로 이들을 지원, 비호했고, 이들은 조금이라도 사회에 진보의 기운이 보일라치면 물리적 강제력을 행사했고, 공안정국을 조성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꼴통들이 쥐락펴락 해 온 이 나라를 언제까지나 이대로 두고 보아야 하는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과 정치·사회의 민주화, 진정한 반전 평화를 갈망하는 우리 사회의 모든 진보적인 양심 세력들은 굳게 연대해야 할 것이다. 실익 없는 논쟁과 명분 없는 진영내 싸움은 그만두고, 민주와 진보의 대의명분을 대중 속으로 확산하는 실익 있는 전술을 구사하는 중지가 필요할 때이다.
<김현돈의 살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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