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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대장정' 마친 제주4.3 연극, 진화는 계속된다

한형진 기자 cooldead@naver.com 2019년 02월 01일 금요일 15:40   0면
[설 특집-취중 인터뷰] 극단 예술공간 오이 <4통 3반 복층 사건> "앞으로도 10년 더 공연"

7개월, 31일, 44시간, 2635분.

제주 극단 ‘예술공간 오이’가 지난해 연극 <4통 3반 복층 사건>을 공연한 시간이다. 5월 31일부터 12월 27일까지 7개월, 매주 목요일 오후 8시마다 1시간 25분 씩 같은 작품을 무대 위에 올렸다. 여름 태풍으로 무대가 침수된 한 번을 제외하면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 

이 글을 쓰는 기자의 짧은 경험을 돌이켜보나 자료를 찾아보나 제주4.3을 다룬 예술, 그것도 연극을 7개월씩이나 매주 이어간 사례는 흔치 않다. 작품은 5월에 앞서 ‘4.3 70주년 문화예술대전’ 기간이었던 4월 2일 첫 선을 보였기에, 집필·준비 과정을 포함하면 사실상 지난 1년 전체를 이 공연에 쏟아 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통 3반 복층 사건>은 한 무대에 두 가지 공간이 존재한다. 위쪽은 현대, 아래쪽은 4.3 당시 제주다. 위에서는 백수 '상식'이 미국인들의 파티로 인한 층간소음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참다 못해 대학 시절 동아리 선배, 후배를 불러 술잔을 기울이지만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삐걱거린다. 아래는 4.3 당시 제주도 어느 마을이다. 아버지의 희생으로 '순임'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다른 생존자와 함께 동굴로 피신하지만 위협은 끝나지 않는다.

▲ 왼쪽은 지난해 4월 '4통 3반 복층 사건' 초연 공연 포스터, 오른쪽은 5월부터 12월까지 장기 공연 포스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70주년이라는 분기점을 맞아 지난해 어느 때보다 많은 4.3 추모·문화 행사가 열렸다. 4월부터 한 해의 끝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킨 <4통 3반 복층 사건>은 연극 예술 뿐만 아니라 4.3예술 전체에 있어 분명 의미 있는 도전이자 결과로 평가 받아야 한다.

자가 4월 2일 오후 3시 제주문예회관 소극장과 12월 27일 오후 8시 예술공간 오이까지 <4통 3반 복층 사건>의 처음과 끝을 현장에서 지켜본 이유이기도 하다. 긴 시간을 한 작품에 몰두하고 난 뒤 무엇을 느꼈는지 연출, 배우 모두에게 듣고 싶었다.

오상운(45) 예술공간 오이 공동대표, 전혁준(35) 극본 겸 공동연출, 전하얀(38) 공동연출, 현대영(27)·강영지(49)·김경미(47)·홍서해(27) 배우까지. 그렇게 28일 오후 7시 15분 연북로 66 지하 1층에서 <4통 3반 복층 사건> 제작진, 출연진과 마주했다. 마음 같아선 홍한별, 홍성웅, 한정임, 이창규, 이미연, 문혜림, 김수민, 김소여, 고승유 등 나머지 출연진도 만나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연북로 66 지하 1층은 예술공간 오이 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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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예술공간 오이에서 가진 '4통 3반 복층 사건' 인터뷰 모습. ⓒ제주의소리

맥주·소주, 안주와 함께 시작한 인터뷰는 2시간을 훌쩍 넘겼다. 어색한 듯 팽팽한 기운이 흐르던 분위기는 빈 술병이 쌓일수록 느슨하게 풀어졌다. 대화는 자연스레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웃고 떠들었고, 때로는 진지하게 눈물지으며 단원들은 지난 7개월, 아니 1년 이상의 시간을 돌이켰다.

장기 공연을 호기롭게 결정했지만 연출부터 배우까지 각자 너무나 고됐던 시간, 다만 어느 공연보다 기억에 남고 보람을 느낀 작품, 앞으로 10년 그 이상까지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마음, 변화하는 시대와 호흡하며 4.3을 알리는데 미약하게나마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 공연 기간 동안 느낀 여러 감정들, 4.3에 대한 각자의 생각들. 

물꼬를 튼 이야기는 작품 안팎으로 뻗어나갔다. 분명한 것은 <4통 3반 복층 사건>은 단순 출연 작품 이상의 존재감으로 단원들 각자 안에 새겨져 있었다. 다가오는 2019년 71주년 4.3에 대한 계획과 그 이후까지, 취중 인터뷰 전문을 정리해 아래 싣는다.


Q. 어떻게 해서 7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4.3 작품을 공연하기로 결정했나. 준비 과정에서 대표 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배우, 제작진들의 의견도 궁금하다.

전혁준 극본 겸 연출
: 지난해 삼도2동에서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1년 내내 공연하는 일정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4.3은 의미도 의미지만 오래전부터 이야기를 선보이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장기 공연은) 욕심이었다. 다른 주말 공연도 있는데, 매주 목요일마다 잡는 건 무대를 계속 바꿔야 하는 노력이 수반되고, 고생이 뻔하게 예견돼 있는 셈인데 말이다. 

중간 중간 배우도 바뀌고 힘든 부분이 많았다. 큰 탈 없이 끝난 것도 신기할 정도다. 무대를 만들다가 지치면 쉬는 사람이 자기 시간 내서 혼자서 무대를 바꿔놓기도 하고, 그러다 잘못 바꿔서 두 번 일한 적도 있었다. 저기 저 친구(현대영)다. (웃음) 어떤 배우는 고등학교에서 요청이 와서 특별 공연할 때 직장도 쉬면서 참여했다. 돌이켜보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내 욕심만으로 될 수 없었고, 배우 포함 모든 단원의 마음이 잘 맞았고 하나가 됐기에 해내지 않았나 생각한다. 

김경미 배우
: <4통 3반 복층 사건> 대본을 처음 보고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쭉 가자’고 제안했다. 더구나 4.3 70주년인데 1년 내내 우리가 해보자고 계속 말했다. 그런데 (장기 공연을) 딱 결정하고 나니까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예를 들어 (현)대영이는 목요일마다 발달장애인 연극 수업을 3시간 동안 한다. 끝나고 1시간 30분 정도 쉬고 바로 공연에 들어간다. 나는 식사를 준비해서 함께 저녁을 먹고 정리한 뒤 바로 투입된다. 다른 배우들도 퇴근하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온다. 돌이켜보면 목요일 공연은 로맨틱하지 않고 굉장히 힘들었다. 끝내고 나니 아쉬움도 컸다. 조금 더 완성된 작품을 했으면 어땠을까. 캐스팅도 계속 바뀌고, 몰입하기에 어려운 여러 가지 여건들도 많았고, 힘든 점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출연한) 공연 가운데 가장 뿌듯했다. 

나보다는 전하얀 연출이 복창이 100번 넘게 터졌을 것이다. 옆에서 보면 ‘부처가 되려나’, ‘몸에서 사리가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전하얀 연출
: 사리가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웃음) 지난해 <4통 3반 복층 사건>은 내 개인 일상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일이었다. 농담처럼 7개월이 쓱 지나간 느낌이다. 그렇지만 제일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힘들지 않았다고 말할 순 없어도 재미도, 보람도 있었다. 만약 이런 장기 공연을 예술공간 오이에서 또 시도한다면 지난해보다 더 체계적인 방식은 무엇일지 고민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전혁준 극본 겸 연출
: 목요일 공연을 마치면 금요일에 나와 주말 공연용으로 무대를 바꾼다. 주말 공연을 마치면 다시 무대를 바꾸고, 월~화요일에 연습을 한다. 새로운 배우가 들어오면 연습은 더욱 중요하다. 나는 수요일마다 정해진 일정이 있어서 거기서 끝나면 오후 9시 30분이다. 그때부터 리허설을 하고 목요일 새벽 1시가 돼야 끝난다. 목요일 <4통 3반 복층 사건>을 마치면 다시 반복이다. 일주일에 무대, 조명을 두 번 이상 바꾸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나중에는 무대 철거·설치 속도가 정말 빨라졌다. (웃음) 전하얀 연출이 방금 말했던 고민은 이런 부분일 것이다.

오상운 대표
: 2~3개월 정도면 큰 부담 없이 공연할 수 있다. (전하얀) 연출자가 짜증이나 불만도 전부 챙기면서 배우들을 이끌어 온 덕분에 무사히 마친 것 같다. 그리고 극단 전체로 볼 때 (이런 장기 공연은) 쉽게 결정하지 말자는 생각이 든다. 끝난 것은 맞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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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혁준(왼쪽), 오상운 예술공간 오이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전혁준 극본 겸 연출
: 다시 말하겠다. <4통 3반 복층 사건> 전회 출연자로서 하나도 힘들지 않고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 힘듦조차 즐거움으로 승화시켰다. (전체 웃음)

현대영 배우
: 발달장애인 연극 수업을 끝내고 <4통 3반 복층 사건>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오늘도 하는구나’, ‘관객이 또 왔구나’, ‘신기하다 왜 평일 목요일 저녁에 연극을 보러올까’, ‘취소는 안되나’라는 별 별 생각이 들었다. 군대 느낌이었다. (웃음)

개인적으로 <4통 3반 복층 사건>은 무대 위에서 여러 가지를 실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매주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도전해보면서 큰 도움이 됐다. 장난으로 말했지만, 관객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올해도 예술공간 오이 공연을 많이 보러 오셔서, 무대 위에 더 많이 설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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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영 배우. ⓒ제주의소리

강영지 배우
: 출연진 가운데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1년 간 공연하자는 결정이 참 고마웠다. ‘4.3 70주년이니까 우리도 했다’는 것보다는 연말까지 이어가면 좋겠다는 제안이 고마웠고, 그래서 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다.

Q. 7개월 간 이어오면서 이런 저런 사연도 많을 텐데, <4통 3반 복층 사건>을 집필하게 된 과정도 듣고 싶다. 

전혁준 극본 겸 연출 
: 예전부터 쓰고 싶은 이야기였는데, 항상 발목 잡았던 것은 (스스로 보기에) 내 실력, 내 깜냥이 부족한 게 컸다. 차일피일 미루다 70주년이 됐고, 눈 오는 어느 날 (오)상운이형과 만나서 4.3 작품 이야기를 했다. 그때는 ‘70년이 69주년과 다를 바가 없는데 70주년이랍시고 한다’는 생각에 작품을 안 쓰기로 결론 내렸다. 그런데 제주민예총으로부터 4.3예술제(4.3 70주년 문화예술대전)에 참여하자는 문의가 와서 다시 고민에 빠졌다. (오)상운이형이 한 마디를 남겼는데 ‘너를 생각하면 하지 말고, (예술공간) 오이를 생각하면 해라’였다. (전체 웃음)

오상운 대표
: 난 그렇게 말 안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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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난 가득한 오상운(오른쪽), 전혁준 예술공간 오이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전혁준 극본 겸 연출
: 그래서 70주년이랍시고 한다는 걱정이 웃기지 않나 싶었다. 69주년, 70주년 시기를 가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기에,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극본을 썼다.

올해 4월에도 <4통 3반 복층 사건>을 한 달 동안 공연한다. 매년 4월마다 공연할 예정이다. 또 다른 4.3이야기를 만들면 그 이야기로 4월을 채울 것이다. 꾸준히 행동과 공연으로 내 마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본다.

오상운 대표
: 4.3에 대해 (연극으로) 이야기하는 게 내 관점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4.3’이 맞는지 틀린지 (우리는) 모르니까. 4.3을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리면 그건 하나의 역사로 남아버리니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런 고민이 필요한 사례를 너무 많이 봐왔기에 4.3의 연극화가 많은 부담이 됐다. 돌이켜보면 (전)혁준이가 잘 풀어준 것 같다.

전하얀 연출
: 관객은 지인으로 온 사람들 보다는 일반 관객들이 많았다. 들인 공에 비하면 더 많은 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쉽다. 

강영지 배우
: 어떤 관객은 4.3 관련 공연을 인터넷으로 찾다보니 우리 밖에 없어서 검색해서 왔다고 하더라. 경남 김해에서 온 분은 나중에 또 한 번 보겠다고 약속했는데 다른 분과 같이 와서 ‘약속 지켰다’고 말해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 분이 만족하지 않았다면 또 오겠나. <4통 3반 복층 사건> 공연이 자랑스럽다. 만약 4.3 작품이 두세 개 더 있었다면 고르면서 더 넓게 4.3을 알 수 있어 좋았을 텐데….

그리고 대학 시절에 4.3에 대해 배우고 익힌 것들을 자연스레 후배들에게 전해 줄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당시에는 정말 그렇게 했냐’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이번 공연을 하지 않았으면 한 번도 들려주지 못할 이야기로만 남아있었을 것이다.

홍서해 배우
: 작품을 하겠다고 지원할 때, 대표님에게 역할 관계없이 출연하겠다고 했다. 여자 역할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순임, 덕선 두 명 뿐이었다.

김경미 배우
: 아주망! (전체 웃음)

홍서해 배우
: 아주망도 있지만….(웃음)

처음 대본을 읽을 땐 덕선을 하고 싶었다. 공연을 하다 보니 순임이가 더 낫다고 생각했다. 상식도 그렇고 인물 마다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삶의 가치라는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물은 순임이라고 생각해 매력을 느꼈다. 감정선에 따라 한 단어 한 단어 표현하는 방식도 좋아 (연기)하면 할 수 록 재미있었다.

‘이 목숨이 몇 개짜리인지’라는 대사도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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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서해 배우. ⓒ제주의소리

Q. <4통 3반 복층 사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망자를 꺼내는 장면이다. 문예회관 소극장 공연에서는 현대인인 '파도'가 어둠이 깔린 무대 곳곳을 다니면서 숨어있던 4.3희생자를 꺼낸다. 희생자의 손에는 작은 조명 장치가 쥐어져 있는데, 망자와 빛이라는 대비를 통해 4.3희생자들은 어둠 속의 망자가 아닌 빛을 품은 존재라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장면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예술공간 오이로 무대를 옮기면서 공간상의 문제로 꺼내는 대신 망자들이 한꺼번에 등장해 빛을 나눠주는 연출로 일부 바뀌었다. 두 연출자에게 이와 관련한 생각을 듣고 싶다.

전혁준 극본 겸 연출
: 대본에 그 장면은 ‘맨홀뚜껑’이라고 써 놨다. 아래 위를 잇는 공간을 열고 나오는 이미지가 순간 맨홀뚜껑이 생각나서 그렇게 적어뒀다. 저도 기자의 의견에 동감한다. 복층으로 만들어진 무대에서 위층은 현대, 아래층은 4.3 당시 제주라는 과거다. 위에서 볼 때 아래층은 과거이자 죽은 자이지만, 평행선처럼 그들의 희생이 있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아래층은 죽음만 있지 않다. 그 당시의 삶이 고스란히 보여 진다. 과거 순임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가 미래의 다른 인물로 와서 '상식'의 뺨을 날리는 장면은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4.3을 포함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알리는 캐릭터 ‘파도’ 같은 사람들이 실제 우리 주변에 있기에, 파도가 무대를 열어 망자의 손을 잡아 올리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전하양 연출
: 예술공간 오이는 공간이 제약돼 복층을 구현하기 힘들다. 장기 공연에서 맨홀 뚜껑 장면은 ‘딜라이트(delight)’라고 변경됐다. 연출을 하면서 이 장면은 관객들에게 무엇이든 (의미를) 주는 의도를 담았다. 무대 위 망자들은 웃으면서 손에서 빛을 나눠준다. 과거에 희생된 그들이 현재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자는 방향으로 연출했다.

전혁준 극본 겸 연출
: 문예회관 첫 공연에서 배우들에게 울지 말라고 신신 당부 했는데 (오)상운이형이 너무 오열했다. (전체 웃음) 동굴 안에서 남아있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뛰쳐나가는 역할을 웃음으로 표현해달라고 연출자로서 요구했다. 오히려 남은 사람을 위해서 본인 슬픔을 감추고 웃으며 희생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물론 무대 위에서는 감정선을 조절하기 쉽지 않다. 안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난다는 배우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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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공간 오이 단원들이 진지하면서 때로는 웃음지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제주의소리

강영지 배우
: 동굴에서 나와 대신해 죽으러 나가면서 ‘아주망 몸 보니 뛰어나질까’라는 농담 대사가 너무 슬펐다. 문예회관 때는 폭풍 오열을 했다. <4통 3반 복층 사건>은 억압하는 장면이 없다. 총소리만 나거나, 순간 불이 꺼지는 식으로 직접 대상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스펙터클 하게 총부리, 칼날을 겨누면 관객들에게는 잘 먹힌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것 없이 아픔을 절제해서 보여줘 배우로서도 참 인상 깊었다.

오상운 대표
: 생각해보니 딜라이트 이전 동굴 결혼식 장면부터 울었다. (전체 웃음)

김경미 배우
: 결혼식 장면이 정말 슬프다. 동굴 안에서 내(파도)가 결혼시켜준 젊은이들이 영혼이 돼 빛을 뿌리는 장면을 뒤에서 보면 눈물이 콸콸 나온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Q. 강영지 배우, 김경미 배우, 오상운 대표는 극 안에서도 밖에서도 다른 단원들보다 조금 더 어른이다. 세 명이 20대였던 과거와 지금은 4.3도 연극도 많이 달라졌다. 어떤 차이가 있나.
※ 세 명 모두 제주대학교 출신. 강영지 어업학과 90학번, 김경미 사학과 92학번, 오상운 관광경영학과 94학번.

김경미 배우
: 나는 사학과라서 4.3 관련 활동이 많았다. 그때 까지도 4.3 활동에 대한 탄압이 심했다. 당시에 4.3 연극은 장일홍 선생의 <붉은 섬>이 가장 유명했는데, 공연 자체가 너무 무섭고 전부 핏빛이다. <붉은 섬> 이후로는 4.3 연극을 보진 않았다. 무서워서. 

<붉은 섬> 다음이 이번 <4통 3반 복층 사건>이다. 이 작품은 4.3을 대하는 슬픔이나 무게감은 덜하지 않은데, 마주하는 건 보다 가벼워졌다. 개인적으로 <4통 3반 복층 사건>은 10년 이상 계속 했으면 좋겠다. 수익과 관계없이 우리가 쭉 해보고 싶을 만큼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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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미 배우. ⓒ제주의소리

전혁준 극본 겸 연출
: 오상운 대표님은 2000년 제23회 전국대학연극제에서 본인이 쓴 4.3 연극(알 수 없는 것과 알아버린 것, 그 시작을 위한…)으로 은상과 특별상을 수상했다. (박수와 웃음)

오상운 대표
: 23~4세 밖에 되지 않은 어린 대학생 시절이었는데, 일단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960년대 제주도 독립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제주도를 하나의 독립 국가로 남기고자 처벌까지 마다하지 않은 운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대학 선배들에게 4.3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슬픈 과거가 제주에 있었다고?’라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시절까지 전혀 몰랐다. 그리 오래 되지 않았어도 4.3 이야기는 제삿집에서만 나오던 시절이었다. 4.3으로 연극을 만들었던 건 대학생이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함도 있었다. 그런데 공연을 하고 나니 ‘(4.3은) 가볍게 할 수 있는게 아니구나’라고 느꼈다.

전국대학연극제 연출을 맡은 친구와 4.3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기도 했다. (예술공간) 오이가 4.3 이야기를 나중에 하자고 제안한 것도 간단히 풀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자칫 가볍게 연극화 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4통 3반 복층 사건>은 (전)혁준이가 잘 풀어줘서 후회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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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대화를 나누는 예술공간 오이 단원들. ⓒ제주의소리

강영지 배우
: 큰아버지가 4.3으로 돌아가셨는데, 우리 아버지가 동생이니 제사를 지냈다. 근데 아무도 모르게 제사를 치렀다. 일명 까마귀 제사였다. 연좌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몰래 했던 것이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4.3은 분노였다. 대학 선배들에게 배운 것은 오직 (4.3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으니 알려야 한다는 것 뿐이었다. 때로는 시위할 핑계를 찾는 것 같아 선배들과 싸우기도 했다.

<4통 3반 복층 사건>을 공연하면서 공부 같지 않은 공부도 다시 했다. 대본을 읽으며 ‘그때 제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이야기했을까’라고 스스로 질문하고, 사투리도 정교하게 살펴봤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이 땅은 무수한 희생자들이 만든 땅’이라는 파도의 대사가 깊이 다가왔다. 대학 시절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희생자들의 존재와 살아남은 이들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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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지 배우. ⓒ제주의소리

Q. <순이삼촌>의 현기영 작가는 ‘소비문화, 엔터테인먼트 시대에 돌입한 오늘 날, 4.3예술은 더욱 매력적이어야 한다’며 새로운 시도와 해석을 강조했다. 예술공간 오이의 <4통 3반 복층 사건>은 이런 조언에 부합하는 의미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4.3예술은 어떻게 가야할까?

전혁준 극본 겸 연출
: 현기영 선생의 조언은 지금 시대에 이야기를 가장 잘 전달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하라는 뜻이라고 본다. <4통 3반 복층 사건>에 머물러 있지 않고 어느 날 4.3을 가지고 실험극도 할 수 있다. 예술의 표현은 무제한이기에 상상력으로 한계를 깰 수 있다. 과거에 구애받지 않고 틀을 깨다보면 새로운 표현 방식이 나올 것이다.

전하얀 연출
: 난 제주도 사람이긴 하지만 10년 이상을 제주 밖에서 살았다. <4통 3반 복층 사건>을 본 타 지역 지인이 “제주도 사람들이 육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다. 제주를 사랑하는 육지 사람인 나는 그것이 불편하고 서운했다. 그런데 이 공연을 보니 그렇지 않아 좋았다”라고 말하더라.

어떤 식으로든 4.3은 오래 기억돼야 한다. 동시에 70년 전 일어난 일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모르는 사람도 많다. 우리의 역사라면 계속해서 이야기 하는 게 맞다. 무엇보다 이런 공연 형태로 보는 건 미래 세대들에게도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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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하얀 연출. ⓒ제주의소리

<4통 3반 복층 사건>은 계속 달라질 것 같다. 극 안의 현대 이야기도 바뀌고 과거도 바뀔 수 있다. 진화하는 시대에 따라 오늘 날과 계속 소통하면서 그 시대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향으로 <4통 3반 복층 사건>도 진화한다면 좋지 않을까. 

어떻게든 기억하고 알아야 하는 4.3이다. 그 이야기를 예술로 푸는 것은 정말 많은 고민이 필요한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러나 좋은 방향성이 있다면 예술로서 4.3을 보다 쉽게 접근하는 방법은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나도 그리고 누군가도 <4통 3반 복층 사건>으로 그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4통 3반 복층 사건>의 복층 무대는 정말 제대로 구현해보고 싶다.

강영지 배우
: 이번 기회를 통해 도민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주에는 우리 예술공간 오이나 메이저 극단 뿐만 아니라 다른 소규모 극단들의 공연도 많다. 관객이 관심 가지고 찾아갈 때 예술은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한다. 다른 연극도 많이 봐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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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마치고 무대 위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예술공간 오이 단원들. 강영지(맨 오른쪽에서 두 번째) 배우가 전혁준 연출(맨 오른쪽) 볼에 뽀뽀를 하고 난 뒤 익살스러운 모습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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