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황금연휴 앞둔 제2공항 예정지 성산읍은? 갈등 우려 언급 자제 분위기 '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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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마을회관 현관. 제주 제2공항 반대 피켓이 내걸려 있다. ⓒ제주의소리
"뭣하러 그런 걸 물어. 요즘은 식게(제사라는 의미의 제주어)집 가서도 제2공항 얘기는 함부로 꺼낼 수가 없어요. 까딱하면 싸움날까봐."

설 명절 연휴를 앞둔 지난달 31일 찾은 서귀포시 성산읍. 집 앞 텃밭에서 부지런히 김을 매던 노인에게 '요즘 제주 제2공항에 대한 지역민심이 어떠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타박이 돌아왔다.

괜한 질문이 불쾌했는지 혼잣말로 몇 마디를 더 한 노인은 급히 사과의 말을 건네자 그제서야 한마디했다.

"왜 이렇게 눈치 보고 살아야하는지 모르겠어. 생각하면 할수록 괘씸하단 말이에요. 마을 주민 누가 새로 공항이 생기는 것을 원했냐는 말이야"

찬반 입장을 떠나 제주 제2공항은 한가롭고 평화롭던 마을의 분위기를 가라앉게 했다. 황금연휴인 이번 설 명절도 마찬가지였다.

겨울 바람이 매서운 성산읍 곳곳에는 더 날카로운 문구의 '제2공항 반대' 깃발과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특히 제2공항 건설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난산리, 신산리, 온평리 일대 도로에는 '고향을 버리고 갈 곳이 없다', '우리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적힌 깃발이 펄럭였다.

▲ 서귀포시 성산읍 곳곳에 걸린 제주 제2공항 반대 깃발. ⓒ제주의소리
▲ 서귀포시 성산읍 곳곳에 걸린 제주 제2공항 반대 깃발. ⓒ제주의소리
대다수의 주민들이 농·어업 등 1차산업에 종사하는 성산읍의 경우 1~2월은 어느때보다 바쁜 시기다. 월동무의 주 산지이기도 하거니와 한라봉·레드향 등 만감류 농가들은 대목을 기대하는 때이다.

설 명절과 맞물릴 때면 떠들썩한(?) 겨울을 지내곤 했던 마을. 그러나 주민들은 제주 제2공항 예정지로 성산읍이 결정된 이후로 묘하게 기류가 달라졌다고 했다.

일주도로변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주민 A씨. 그는 마을 내 확연히 드러난 갈등은 없지만, 주민들끼리 모였을 때 제2공항을 화두로 입에 올리기엔 영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조심스레 전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제2공항에 대한 걱정이 많아요. 태어나서부터 자라온 마을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런 얘기를 꺼내려고 하면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거라. 내심 공항 건설을 찬성하고 있는 사람한테 이런 얘기를 꺼내면 패 가르자는 것 아닌가 싶은 거죠."

A씨를 만나기 직전 '텃밭에서 겪은 일화'를 넌지시 꺼냈더니 그는 제2공항에 대한 주민들의 피로감이 상당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반대하는 주민들이 더 많은 것 같긴 해요. 그런데 반대집회 같은 행사가 있을 때 하던 일을 팽개쳐 두고 가는 것은 다른 문제잖아요. 먹고사는게 우선이지. 안가자니 미안하고, 가자니 부담되고, 그렇다보니 앞장 서서 이야기하기도 참 어렵다는 거에요."

A씨의 가게와 1km 가량 떨어진 식당의 주인 B씨도 "내가 해당되지 않는다고, 살던 집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 입장을 무시할 수 있겠나. 아직은 지켜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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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혼인지. 제2공항이 들어설 경우 이 곳은 공항 진입로가 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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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귀포시 성산읍 일주도로변에 걸린 제주 제2공항 반대 현수막.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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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귀포시 성산읍 곳곳에 내걸린 제주 제2공항 반대 깃발. ⓒ제주의소리
제2공항 갈등이 한창 고조됐을 당시 마을에서는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모 방송국 뉴스에서 성산읍 주민이라고 소개된 인물이 "마을 발전에 도움을 주는데 왜 반대를 하겠느냐. 대부분의 주민들은 공항 건설에 찬성하고 있다"고 한게 마을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주민들은 모자이크 속 인상착의 등을 역추적하며 누군지를 찾아나섰다. 옆 마을 주민이었다.

한 주민은 마을 공동체가 극심한 갈등을 겪게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제2공항 반대운동에 참여해 온 주민 C씨는 "제2공항이 단순히 자연환경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 간의 사이도 파괴할까봐 걱정이 된다. 벌써부터 '공항이 들어서면 보상을 어떻게 받아야 하네' 등의 이야기가 오간다고 하더라. 서로가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속으로 부글부글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C씨는 "찬성하는 주민이든 반대하는 주민이든 충분히 납득할 만한 과정이 없을 경우 주민들끼리 갈라서는 일도 예상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제2공항을 둘러싼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갈등의 해법으로 기대를 모았던 제2공항 타당성 재조사 용역 검토위원회는 재개될 기미가 없고, 국토교통부는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 용역에 착수한 상태다. 

제2공항 반대 주민들로 구성된 제2공항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는 농번기가 끝나는 이달 말을 기점으로 재차 투쟁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대위 위원장을 지낸 강원보씨는 최근 3파전으로 치러진 신산리 이장 선거에서 낙승을 거뒀다. 마을 주민들의 민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강 위원장은 "공사를 이어가려면 먼저 주민들을 설득하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을 관철시키는게 이렇게까지 힘이 들 줄은 몰랐다"며 "국토부가 밀어부치겠다면 주민들도 똘똘 뭉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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