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은 다른 지역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뿌리내려 숨 쉬는 모든 생명이 한라산과 곶자왈을 거쳐 흘러나오는 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각종 난개발, 환경파괴로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 물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는 요즘, 남아있거나 사라진 439개 용출수를 5년 간 찾아다니며 정리한 기록이 있다. 고병련 제주국제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저서 《섬의 산물》이다. 여기서 '산물'은 샘, 즉 용천수를 말한다. <제주의소리>가 매주 두 차례 《섬의 산물》에 실린 제주 용출수의 기원과 현황, 의미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제주섬의 산물] (99) 동일리 홍물

동일리에서는 용출되는 산물을 ‘세미’라 하였고 용출되지 않고 고이는 물은 ‘산물무둥이’라 부른다. 산물무둥이는 산물이 안 솟는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물이 솟고 안 솟는 지를 명확히 하였다. 이런 지명을 볼 때 옛 사람들이 물에 대한 지식이 대단하였다는 것과 물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된다는 생활 지혜가 높았을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동일리의 옛 이름은 난드르웨라고 하는 뜻을 가진 ‘동날웨’이다. ‘난드르’는 넓은 들이란 뜻이며 ‘웨’는 사람이 거주하는 곳으로 어떤 지역을 말한다. 그래서 동일리는 ‘넓은 들이 있고 사람이 사는 마을’이란 뜻을 갖고 있는 마을로 바닷가에는 용출수가 풍부하여 자연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동일리 설촌의 역사를 담고 있는 물은 ‘홍물’이다. 동일리 포구 가까이에 ‘히는늪(흰모래 늪)’이라는 곳이 있는데, 히는늪 가까이에서 솟아나는 산물이 홍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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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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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대정읍 동일1리 버스정류소에서 바다 쪽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갈라진 길로 가면 포구 서쪽에 있다. 이 홍물은 상당히 많은 물이 용출된다. 그곳에서 나오는 물이 많음을 빗대어 마치 홍수가 질 것 같다 한데서 연유한 이름으로 이 동네를 홍수(洪水)동이라고 한다. 

홍물 일대는 바다늪 지대로 밀물과 썰물의 차에 의해 자연적으로 바닷물 웅덩이가 조성된다. 바닥은 하얀 모래가 깔려있는 데다 이 지대와 잇대어 바로 위에 샘이 있고 담수가 용출하여 마치 항문 같은 웅덩이로 흘러든다. 이 웅덩이는 아이들이 놀기 좋은 천연 수영장 구실을 하는데, 이에 연유한 이름이 ‘히는늪’이다. 제주어로 헤엄치다를 ‘히다’라고 하는데, 히는늪은 헤엄치는 늪이란 뜻이다.

홍물은 새벽에도 물때를 맞춰서 물을 길러 다녔던 물이다. 여자들이 물허벅을 지고 와서 물을 길러 가는 곳이었으므로 자연히 여탕이 되었다. 이 산물은 밀물 때는 바닷물에 덮이고 썰물 때는 바닥을 뚫고 나와 세 군데서 용출되므로 세 개의 식수통을 만든다. 여기서 모인 물이 다시 두 개의 일자형 빨래터로 흘러가도록 물통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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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물 물통(식수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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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수통 내부.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물통 주변에 1970년대쯤 돌담을 둘렀는데, 쌓았던 담 위에 2010년 경 다시 시멘트로 덧씌웠다. 그리고 원래 있었던 작은 물통만 그대로 두고 나머지는 시멘트로 단장했지만 그래도 물통만은 옛 모습을 최대한 보전하려고 한 흔적이 남아 있다.

‘실 가는데 바늘 간다’고 홍물 옆 담에는 남자들의 물인 생이물이 있다. 이 산물은 생이(새의 제주어)처럼 크기가 작다는 의미의 남자만 사용한 목욕물이다. 단순히 사각통 구조로 만들어졌는데, 솟는 물량이 홍물만 못하지만 여자들에게 큰 물통을 내주고 작은 물통으로 만족한 것은 여자를 위한 남자만의 작은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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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이물(앞)과 홍물(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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