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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무죄야. 억울함 사라졌으니 좋은 곳으로 가시길"

김정호 기자 newss@hanmail.net 2019년 02월 10일 일요일 16:43   0면
▲ 10일 오전 11시 제주4.3생존수형인인 김평국(왼쪽) 할머니가 김영란(오른쪽) 제주4.3도민연대 조사연구원의 부축을 받으며 장례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4.3생존수형인 故현창용 할아버지 별세...평균 88.8세 수형인 6명 장례식장 찾아 조문

“매 맞은 값은 아직 돌려받지도 못했는데, 억울해서 죽을 수 있나”
“우리는 무죄야. 이제 죄가 없으니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게나”

지팡이를 쥔 김평국(90) 할머니가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고인이 평소 지병을 앓고 있던 터라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막상 떠나보내려니 마음 한 구석이 쓰라렸다.

제주4.3재심 청구로 공소기각 선고를 받은 생존수형인 18명 중 故현창용(88) 할아버지가 영면에 들었다. 장례는 10일 제주 S-중앙병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진행됐다.

일포에 맞춰 나머지 재심청구인 17명 중 거동이 가능한 양근방(87) 양일화(91), 박동수(87), 조병태(91) 할아버지와 김평국(90), 오희춘(87) 할머니가 고인의 떠나는 길을 지켰다.

양근방 할아버지는 수형인들을 대표해 미망인인 김성아(76)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김 할머니는 고개를 숙여 유족들을 대신해 연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영전 앞에 선 수형인들은 헌화와 분향을 하고 상주의 손을 다시 잡았다. 4.3의 완전한 해결은 멀었지만 고인이 생전 그토록 원했던 전과자 딱지는 떼버렸다며 자녀들을 위로 했다.

▲ 제주4.3생존수형인인 양근방 할아버지가 10일 오전 故현창용 할아버지의 빈소를 찾아 상주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자 상주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故현창용 할아버지의 아들인 상주(왼쪽)가 제주4.3생존수형인인 조병태, (왼쪽), 양일화(가운데), 박동수(오른쪽) 할아버지에게 "오래오래 사시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아버지를 떠올리던 상주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상주는 곧이어 생존수형인들의 식사자리를 찾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며 재차 머리를 숙였다.   

고인은 만 16세이던 1948년 9월26일 제주시 노형동 자택에서 잠을 자다 한밤중에 어머니와 함께 월랑부락 토벌대에 끌려갔다. 경찰서에서 폭행과 모진 고문을 당했다.

1948년 12월8일 고인은 형법 제77조 내란죄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아 인천형무소로 향했다. 한국전쟁 당시 형무소를 탈출했지만 이후 다시 붙잡혀 징역 20년을 선고 받았다.

죽기 전 억울함을 풀겠다며 수형인 중 가장 먼저 재심 청구 의사를 밝혔다. 희망이 현실이 되면서 올해 1월17일 역사적인 제주4.3 재심사건 공소기각 판결이 내려졌다.

검찰의 항소 없이 재판이 확정되면서 2월1일에는 수형인들의 전과기록이 법무당국 전산에서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고인이 영면에 들기 불과 일주일 전의 일이다.

고인은 2018년 3월10일 첫 재심 청구인 진술을 위해 법정에 참석했지만 병세는 계속 악화 됐다. 그해 11월26일 피고인 신문에도 참석했지만 법정에서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 제주4.3생존수형인인 양근방, 박동수, 양일화, 조병태 할아버지(왼쪽부터)가 10일 오전 故현창용 할아버지의 빈소를 찾아 분향과 헌화를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故현창용 할아버지의 빈소를 찾은 제주4.3생존수형인 박동수(왼쪽), 양일화(오른쪽) 할아버지가 고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유족들은 “재판과정에서 고비가 여러 번 찾아와 고인을 요양병원에서 종합병원 중환자실로 옮겼다”며 “생전에 억울함을 풀기 위해 지금껏 버텨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생존수형인들도 고인을 의지가 강한 사나이로 기억했다.

양근방 할아버지는 “죄가 없으니 우리가 모두 힘을 모아 재판에서 이겨야 한다는 말을 자주했다”며 “옥살이를 안했다면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 있을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오희춘 할머니는 “시간이 되면 우리들도 차례대로 떠나야 한다”며 “먼저 가는 사람이 있으니 나머지도 순리에 맞게 준비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박동수 할아버지는 “같은 수형인으로서 동료를 먼저 보낸 것 같아 죄책감도 들고 외로운 마음도 있다”며 “생전에 억울한 죄가 다 사라졌으니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양 할아버지의 7일 오전 6시 지병으로 별세했다. 일포는 10일, 발인은 11일 오전 9시30분이다. 장지는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 선영이다.  

▲ 故현창용 할아버지의 빈소를 찾은 제주4.3생존수형인과 법호인단이 조문이 끝난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4.3수형생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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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의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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類飢有足 2019-02-11 11:26:53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적와대 갑돌씨!
사람보다 먼저는 뻘갱이이죠?
자한당에게 친일파 왜구당이라면서 우파를 비꼬는데 좌파는 어떠한가.
일제시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목포에 일제 적산가옥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여 억지로 문화재로 지정하게 만들었고, 일제의 앞잡이였고 남로당
프락치였던 지애비를 영부인과 동창이라는 빽을 들이밀어 국가 유공자로
지정받아 억지로 훈장을 받아내기까지한 바쿠셔 할매 갑순씨는 앞으로
북조선 영웅칭호나 일본 정부에 旭日章까지 받아낼게 아닌가? 美親ㄴ
사람이 먼저라는데 갑순이는 절대 아니다. 불공평한 세상..갑돌아 어디있냐?
22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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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 2019-02-11 09:01:24    
이념 전쟁이 없는 세상에서 영면하시길 빕니다.
1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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