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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공연한 세이레아트센터 연극 <자살에 관하여>에 출연하는 박은주(왼쪽), 이현주 배우. ⓒ제주의소리
[리뷰] 세이레아트센터 연극 <자살에 관하여>
 
자살률이 높다는 뉴스는 안타깝게도 식상하게 느껴질 만큼 흔한 소식이다. 선진국의 척도라고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한국은 2016년 자살률 1위(10만명 당 25.8명)를 기록한 바 있다. 이마저도 200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라고 하니, 한국에서 자살은 중요한 사회 문제다.
 
세이레아트센터가 13일부터 27일까지 공연하는 이강백 작가의 연극 <자살에 관하여>는 자살을 미화하거나 묘사하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툭하면 자살을 시도하지만 누구보다 삶의 욕망이 강한 인물을 통해, 인간 내면을 한 꺼풀 벗겨내는 작품이다.
 
남자와 헤어질 때마다 3층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목을 매달고, 수면제 30알을 삼키지만 어떻게든 살아남는 소설가 유경화(이현주 배우), 차분하다 못해 때로는 무미건조한 성격의 이혼녀 라디오 방송 작가 남지인(박은주 배우). 두 인물은 동생과 언니 관계라는 기본 설정에 더해 성격부터 취향까지 여러모로 대비를 이룬다. 
 
유경화는 자살에 실패할 때마다 언니 집으로 무작정 들이닥치는데, 뽐내기를 좋아하고 사치스러운데다 대책 없이 막무가내인 동생과 정 반대인 언니는 수시로 부딪친다.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이 제작한 ‘자살 상담 프로그램’이 대박이 나면서 프로그램 진행자 유경화는 일약 스타가 된다. 하지만 자살 상담 프로그램의 수위가 점차 도를 넘으면서 결국 폐지 수순을 밟고, ‘멘붕’에 빠진 유경화는 자신이 상담했던 사람들에게 자살을 부추기며 프로그램을 되살리고자 애쓴다.
 
작품은 늘 자살을 고민하는 유경화라는 인물의 변화에 주목한다. 
 
“자살을 생각할 때 상상력이 풍부해진다”면서 한껏 쿨(cool) 한 척 스스로를 자살 전문가로 포장하고, 그런 가면을 쓰고 ‘죽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도도한 척 조언한다. 인기 방송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도약하지만 이내 맞이하는 몰락 앞에서 가면은 산산조각 나고 적나라한 민낯이 드러난다.
 
죽으려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설득했던 인물이, 한 순간 “자살은 결심한 순간에 옮겨야 한다!”며 오직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자살을 부추기는 후안무치. 광기에 가까운 주인공의 행동에 관객은 각자 안에 존재하는 이기심과 욕망을 마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1994년 <자살에 관하여>를 발표한 이강백 작가에 대해 한국현대문학대사전은 “그는 제도적인 폭압 하에서 신음하는 개개인의 비극적 현실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러한 현실 이면에서 횡행하고 있는 권력의 위선을 폭로하는 데에 더욱 주안점을 두었다”고 밝힌다. 개인적으로 <자살에 관하여>는 권력을 향하던 날카로운 시선을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개인에게 비춘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살에 관하여>는 대학교 발표회를 비롯해 연기학원 등 비교적 널리 다뤄지고 소개되는 대중적인 작품이다. 인터넷 상에서 떠도는 극본과 이번 세이레아트센터 작품은 다소 차이가 있다. 원작을 살펴봐야 더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담배, 성관계 등 ‘19금’적 요소들이 삭제됐고 목소리로 등장하는 인물도 줄어드는 등 전반적으로 담백하게 요약한 느낌이다. 마무리 장면도 군살 없이 깔끔하게 느껴진다.
 
<자살에 관하여>는 두 사람의 대사 연기에 집중한다. 막과 막 사이에 나오는 음악을 제외하면 극 중에 음악이 사용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럼에도 늘어지는 장면이 많지 않고 잘 이끌고 가는 인상을 준다. 
 
이현주 배우는 지난해 9월 세이레아트센터 연극 <분장실>와 달리 보다 다양한 감정 연기를 표출하는 배역을 맡아 눈에 띈다. 연극, 방송 등 여러 무대를 경험한 박은주 배우는 안정적인 연기를 소화했다. 설승혜 배우 등은 주인공들에게 하소연하는 라디오 사연 참여자를 목소리로 연기했다. 예상치 못한 깜짝 등장에 관객은 놀랄 수도 있다.
 
다만, 작품 소개 자료에 적힌 배우 정보와 실제 출연진 간에 차이가 있을 경우 공연 시작 전에라도 안내해줬으면 한다.
 
극 전체로 볼 때 막무가내인 유경화의 비중이 높고 포커스도 모아지기 마련이다. 동생에게 잔소리하는 언니 남지인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곰곰이 되짚어보면 ‘나만의 울타리가 필요하다’며 욕망과 감정이 메마른 남지인 캐릭터 속에서 오히려 정보가 넘실대지만 더욱 고독해지는 현대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남지인의 역할을 고민하는 연출이나 각색은 어떨지 사족을 더해본다.
 
<자살에 관하여>는 두 여배우의 안정적인 연기와 줄거리, 배역이 주는 메시지를 내세운다. 13일 초연을 시작으로 17일까지 오후 7시 30분마다 세이레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15세 이상 관람가이며 관람료는 1만5000원이다. 여러 할인 이벤트도 병행하니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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