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0324.JPG
▲ 19일 <행복배달부 우수씨> 첫 공연을 마친 배우 현유상. ⓒ제주의소리

[리뷰] 세이레아트센터 연극 <행복배달부 우수씨>

2월 19일 막을 올린 연극 <행복배달부 우수씨>는 극단 세이레아트센터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큰 작품이다.

최근 녹록치 않은 여건 속에서 기획사(아이짬컴퍼니)가 참여해 제작했고, 지난해 여름부터 세이레가 만든 연극 가운데 공연 기간도 13일로 가장 길다. 무엇보다 31세의 젊은 배우가 홀로 무대를 채우는 1인극(모노드라마)이다. 직전 작품이었던 <자살에 관하여> 출연 배우들이 공연 후 인사말에서 <행복배달부 우수씨>를 홍보하는 모습에 극단의 심정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한 인물의 일생을 보여주는 <행복배달부 우수씨>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 사랑은 보통 남녀 간의 사랑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면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사랑이다.

주인공 우수씨는 사랑과 보살핌을 듬뿍 받고 자라야 할 어린 시절에 이별과 아픔을 먼저 경험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목사 집안에서 자랐는데, 궁핍한 살림에 학교 육성회비조차 내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더욱이 아끼던 동생 ‘깨순이’가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사랑이 채워져야 할 마음에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가득찬다.

고향을 떠나 무작정 서울역에 도착한 우수씨의 행보는 충분히 예상된다. 구걸로 끼니를 연명하고 비슷한 처지의 노숙자들이 견제하는 가혹한 생활은 그의 분노를 더욱 키웠다. 10년 만인 22세 나이에 서울역 앵벌이 대장으로 등극한 우수씨. 전과 3범의 범죄자가 되고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마음에 웨이터가 되지만, ‘악귀’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돈에 집착한다.

동료의 배신으로 다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철장 신세를 지게 된 우수씨에게 우연히 작은 책자가 눈에 들어온다. 자신처럼 고아로 자란 어린아이들의 사연을 모은 어린이재단의 간행물. 그 뒤로 우수씨의 삶은 180도 달라진다. 중식집 배달부로 일하며 받는 보수를 쪼개 다섯 명의 아이들을 후원한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는 희망으로 차있던 우수씨는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로 50세도 안 되는 짧은 삶을 마감한다.

실제 인물 故 김우수(1957~2011)의 사례를 각색한 작품 줄거리는 사랑으로 인해 인격적인 존재가 어떻게 망가지고 회복되는지 잘 보여준다. 

주인공은 본인의 존재 의미를 미처 찾지 못한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래서 뒤늦게 알아버린 사랑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우수씨는 감옥에 있으면서 형제 둘이서 살아가는 고아에게 후원금을 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사자로부터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는다. 

“나 같은 사람에게 감사하다니. 감사하다니….”

너무나 오랜만에, 어쩌면 생전 처음 듣는 말에 우수씨는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낸다. 그 눈물은 지금까지 미처 알지 못한 타인과의 진정 어린 교감과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뒤늦게 발견한 만감이 교차하는 깨달음이다. 전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시간은 너무 짧았지만, 우수씨는 마냥 공허한 심정으로 눈 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극 말미, 관객들에게 비추는 밝은 미소의 영정 사진은 ‘사랑과 관심은 한 개인을 바꿀 수 있고, 나아가 공동체와 사회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 당신은 지금 사랑하고 있느냐’고 우수씨가 질문하는 것 같다.

<행복배달부 우수씨>는 1인극이다. 31세의 젊은 배우 현유상이 주인공뿐만 아니라 성인 남성, 여자 아이, 노숙자 깡패까지 여러 역할을 소화한다. 건장한 남성이 고군분투하며 ‘1인 다역’하는 모습을 적응하기는 시간이 필요한데, 동생 깨순이를 떠나보내는 시점부터 극은 한층 더 활력을 띄기 시작한다. 거친 몸동작부터 눈물 연기까지 마다하지 않는 현유상의 연기는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다른 공연에서 보면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물 이후에 수습이 안되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그런 면도 비교적 매끄럽게 소화하면서 배우가 얼마나 공들여 준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비록 2013년, 2016년 서울 공연과 비교하면 극장·무대 규모는 소박하나, 진지하게 연기에 임하는 열정은 공연의 백미다.

19일 첫 공연에는 배우의 부모도 참석해 자녀의 연기를 지켜봤다. 부담이 컸는지 현유상은 공연을 마치고 복잡한 심정의 눈물로 감사 인사를 대신했다. 날마다 진행하는 남은 공연에서는 부담을 떨치고 더 자신있게 무대를 장악하는 ‘우수씨’를 기대한다.

작품의 시대 배경은 1957년 출생한 실존 인물을 따라간다. 목사 집안에서 자랐다는 설정까지 더해, 기독교를 믿는 중년 세대들은 연극을 보며 웃고 눈물지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더 많으리라 본다.

주인공의 내면 변화가 정점에 이르는 감옥 편지 신을 포함해, 중요 장면에서 여백을 준다면 더욱 효과적으로 감정이 전달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감도 더해본다. 초반과 비교하면 상당히 짧게 반복되는 후반부 암전이나 첫 수감 장면에서 등장하는 다소 긴 공백은 고민이 필요한 사안이 아닌지 사족을 남긴다.

<행복배달부 우수씨>는 7세 이상 관람가다. 중노년에는 추억을, 그보다 어린 세대에는 훈훈한 미담을 선사한다. 1인극이지만 내용은 연극이 낯선 입문자에게도 무난하다.

<행복배달부 우수씨>는 2월 19일부터 3월 3일까지 매일 세이레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시간은 평일은 오후 8시, 주말과 공휴일은 오후 3시·6시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