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제주지법 재판부(이흥복 지법원장)는 징역 2년의 실형이 구형됐던 우근민 제주도지사 등의 선거법 위반과 관련한 1심 선고판결을 내렸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 지사에게는 사전선거운동 및 기부행위, 허위사실 공표, 유사기관 설치, 선거비용 지출 허위보고 등 무려 4가지 사항에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벌금 300만원에 불과한 형을, 우 후보의 선거대변인 양 모씨에게는 허위사실 공표죄 등을 적용 벌금 250만원을 선고하고, 자문교수, 회계책임자, 도청 공무원 등에 대해서는 각각 벌금 100만원을 선고하는 등 솜방망이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 당당재판부와 우지사측 변호인간의 '골프' 등 부적절한 회동(대법원은 이 와 관련 해당판사에 '서면경고'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했다) 논란이후 이 법원장으로 재판부가 교체될 때만 해도, 사실 우려보다는 기대가 많았다. 이씨가 그동안 많은 선거법 위반사건을 다루면서 엄격한 법집행을 하는 이른바 '강골판사'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주부임 후 이씨는 지난 3월,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향응을 제공,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5백만원을 선고받은 고모씨의 항소를 기각하기도 했고, 5월에는 선거법 위반 협의로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도의원에게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5백만원을 선고하는 등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서 엄중한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판결에 일주일 여 앞서 이법원장은 지방선거와 관련되어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1심에서 각각 200만원과 25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의원직 상실위기에 있던 지방의원들에게 각각 80만원, 선고유예 형으로 의원직을 유지하게 했다.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며 조짐이 않좋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우려가 이번 도지사 판결에서 현실화 된 것이다.

이법원장에게 묻는다. 재판부는 양형사유에서 "선거관련 부정을 방지하여야 한다는 공익적 요구" 등을 참작하여 선고했다고 밝혔다. 진정 그렇다고 자신하는가? 3백만원이라는 솜방망이 벌금형도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선고이기 때문에? 그러나 재판부의 이번 판결은 공익적 요구에 앞서 힘있는 자(집권 여당의 도지사)는 선거법을 4건이나 위반해도 그 자리를 유지할 '가능성'을 열어준 판결이라는 것이 도민사회의 중론이다(벌써 제주지역에는 2심에서의 '선고유예'를 겨냥한 판결이 아니냐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이번 유죄로 인정된 부분 중 '허위사실 유포' 혐의만 하더라도 법에 규정된 최소선고 형량(벌금 5백만원)에서 절반을 감경(작량감경)하면 250만원이라 할 때, 재판부는 이와 유사한 법정 최소형을 내린 것에 다름 아니다. 그동안 사법부는 입만 열면 선거법위반 사건의 경우 신속하고 엄중한 판결을 내려 "당선되면 그만"이라는 선거풍토를 고치겠다고 호언장담해 왔으며, 또한 위법 사실이 경합되어 있을 경우 '가중처벌'이 일반적 관행임에도, 재판부는 법정 최소형과 유사한 형량을 구형한 것이다.

물론 재판부 나름대로 법의 잣대에 따라 죄의 경중을 따졌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3월과 5월, 광주고법 제주부의 2심 판사로서 지방의회 의원 후보들에게 내린 판결의 결과(각각 5백만원의 벌금형)와 비교해 볼 때, 이번의 선고는 일반 국민의 정서로는 납득하기 힘든 결과이다.

둘째로, 작량감경(酌量減輕: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법관의 작량(그러리라 짐작하여 헤아림)에 의하여 형을 경감하는 일을 말함)의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제주지법이 나누어준 보도자료에는 어느 곳에도 이 이유가 명시된 바가 없다. 물론 법에는 그 이유를 명시할 필요는 없다고 되어 있지만, 이 사안이 갖는 중요성에 비추어 그 이유를 반드시 밝히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그동안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정상을 참작하여 도지사 직무정지 등을 피해"간 것인가? 또한 소위‘도민 통합과 화합’을 바라는 도민적 정서(?)를 반영한 것인가? 만일 전자라면 그것은 집권여당 소속의 도지사를 봐주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고, 후자라면 왜곡된 민심(지역토호세력들이 이른바 도민통합을 명분으로 선처를 부탁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을 고려해 볼 때)을 따른 판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차례 주장한 것처럼 제주지역의 진정한 통합을 위해서라도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그에 따른 법적, 도덕적, 정치적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 뿐 아니라 제주도민 다수의 생각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한편, 우 지사는 선고 다음 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법원의 1심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항소의사를 밝혔고, 이와 함께 “결론적으로 도민들이 당선시켜줬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잘못됐다는 점도 도민들에 의해 당선된 것을 제압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며 "도정에 힘을 모아달라"고 주장했다 한다. 1심 판결이 그래도 당선무효형이 선고됐는데 그 판결을 존중한다면 마땅히 지사직을 사퇴하는 것이 도리임에도 도정에 힘을 모아달라는 부탁을 하는 이율배반도 그러려니와, 후자의 경우는 "유죄 판결도 당선은 뒤집을 수 없다"는 오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하여 다시 묻는다. 지금 이 땅에 사법부의 정의는 살아 있는가? 재판부는 이번 판결이 법 정신에 입각하고 만민에게 평등한 법적 판결이라고 주장할 자신이 있는가? 금번 솜방망이 판결에 대해 많은 도민들이 참담함과 함께 분노를 되씹으며 묻는 이 질문에 재판부는 답해야 한다.

선고 이후 재판부를 성토하는 제주 시민사회단체의 성명과 법원 앞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제 제주도민은 광주고법의 2심 재판부를 두 눈 부릅뜨고 주목하고 있다.

(필자 : 이지훈.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제주개혁포럼(준) 대표간사)
<이지훈의 쓴소리 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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