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제안을 통한 예산편성"과 관련한 제언

제주도는 내년도 주요 사업을 도민들한테서 제안받아 예산을 편성하기로 하고, 이달 21일부터 다음달 20일까지 1개월간 100만 내외 도민을 대상으로 2004년도 주요 사업에 대한 제안을 받기로 했다.

제주도의 이번 조치는 일단 예산편성과정에서의 주민참여 확대라는 측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들어다보면 실망스러운 면이 적지 않다.

1. 제주도의 이번 결정은 “예산편성과정에 주민참여를 확대하겠다”는 자율적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관행처럼 따르던 행자부의 “지방예산편성기본지침”에 따른 것이다.

사실 제주도의 이번 결정은 행정자치부가 2005년부터 지방예산편성기본지침을 당초계획대로 폐지한다는 방침아래, 7.31(목) 시 도기획관리실장회의를 개최하여 2004년도 지방예산편성기본지침을 시달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행자부 보도자료(행정자치부 홈페이지 http://www.mogaha.go.kr 참조)에 따르면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지방분권과 자율의 국정원리에 따라 처음 시달하는 이번 지침은 - 예산편성의 자율성과 탄력성을 대폭 부여하는 한편, 예산편성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주민참여형 예산편성제도』를 도입하고, - 예산편성결과를 주민들에게 알기 쉽게 공개할 수 있는 『표준재정공개모델』을 보급하여 재정 운영의 책임성·투명성을 동시에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2. 과연 전국최초인가?

도는 도민한테서 주요 사업을 제안받아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전국 최초라며 도민참여제도를 유지.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제민일보 8월 21일자)

위 행자부 보도자료에도 나와 있듯이, 현재 부분적으로나마 『주민참여형 예산편성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자치단체가 적지 않다. 따라서 전국최초로 『주민참여형 예산편성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 시민소리 인터넷접수(성남 천안시), 주민의견사업공모(군포시), 예산편성 관련 주민
설문조사(함평군), 예산편성 주요사업 공청회(안산시)

결국 전국최초인 것은 도민한테서/주요사업을 제안받아/예산을 편성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3. 이 방식은 과연 새로운 것인가?

제주도는 /이미/주요 사업에 대한 「도민제안」을/연중/우편, 팩스, 이메일을 통해/접수하고 있다. 그리고 /이중 채택된 제안은/도정에 반영된다고 밝히고 있다.

도정에 반영된다는 말은 곧 예산에 반영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이번 「도민제안」과 기존 「도민제안」이 다른 게 무엇인가?


4. 이같은 방식의 도민참여가 과연 ‘예산편성과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주민참여형 예산편성제도』는 - 예산편성과정에 주민참여를 확대함으로써 - 예산편성과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있다 하겠다. 때문에 주민참여의 확대는 “예산편성과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제주도의 주민참여 방식은 -제안을 희망하는 도민은 제안서와 내용설명서를 작성해 우편이나 팩스, 이메일 등을 통해 제주도 예산담당관실로 제출하면 되고, -제출된 제안에 대해서는 심사위원회 심사 후 내년도 예산에 반영하는 한편 우수 제안을 제출한 도민에게는 별도 시상할 계획이다.

이 경우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일부 담당공무원과 심사위원을 제외하고는 도민들이 어떠한 사업을 제안했는지, 어떠한 사업이 채택되고 탈락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개인 혹은 단체가 제안한 사업에 대한 일반 도민들의 의견을 들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결국 전체 도민의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일부에게만 이익이 되거나 손해가 끼치는 사업이 도민의견이라는 이름하에 정당화되거나, 일부 공무원과 심사의원들이 입맛에 맞는 사업만이 채택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5. 결론에 대신하여

『주민참여형 예산편성제도』는 이제 시작이다. 때문에 너무 성급하게 성과를 기대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제부터 외국이나 타 시도자치단체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에 맞는 방식을 찾아나가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결론에 대신하여 제주도에 몇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도청홈페이지에 도예산 도민제안과 관련한 별도의 란을 개설할 필요가 있다.
이곳을 통해 도민의견을 접수하는 동시에 기존의 우편이나 팩스, 이메일 등을 통해 접수된 내용 역시 공개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한다면 도민 각자가 어떠한 제안을 했는지, 이에 대한 다른 도민들이 의견은 어떠한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예산편성과정의 투명성은 물론 심사결과에 대한 잡음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둘째, 최종적으로 반영된 도민제안 관련 예산 및 전체 도예산에 대해 현재 안산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예산편성 주요사업 공청회」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제주도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사업에 대한 제안에 따른 예산편성은 실제 도 전체 예산 중 일부분(주민숙원사업, 지역개발등)에 대한 참여와 공개에 지나지 않는다.
기왕에 주민참여를 확대하겠다고 나선 바에 행자부 지방예산편성지침상 공개토록 되어있는 『표준재정공개모델』에 준한 내용만이라도 공개하고 이에 대한 도민들이 의견을 듣는 자리를 갖는 것이 필요가 있다.

현성욱님은 제주사회연구소 ‘미래’ 선임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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