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도민제안 예산편성 실효성 있나?

그 동안 지방예산의 통제수단이었던 예산편성기본지침이 폐지되면서 지방의 예산편성 자율권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제주도는 도민제안을 통해 내년 예산을 편성하겠다고 한다.(제주일보 8월 21일자) 사업분야별로 도민제안을 받고, 그 제안에 대해 심사위원회 심사 후 내년 예산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 행자부의 예산편성기본지침과 집행부 위주로 이루어졌던 예산편성에서 벗어나 주민의견을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 동감은 하나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꼼꼼히 따져보자.
먼저, 제주도는 청정 환경 보전과 균형 있는 지역개발 등 5개 분야에 대해서 우편엽서와 팩스, 이메일 등을 통해 도민제안 사업을 받고 있다.
예산에 대한 정보제공이나 예산편성에 대한 원칙이나 방법도 없다. 그냥 제안만 받자는 식이다. 얼마나 많은 도민들이 사업제안에 참여할지 의문스럽다.

천안시의 사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천안시는 2002년 예산편성시 시민의견을 수렴한다는 취지에서 시 홈페이지를 통해 9월 한 달 동안 한시적으로 아이디어를 접수받았다. 고작 20여명의 시민이 의견을 내놓았다. 이들 의견 또한 대부분 '어디에 다리를 놓아달라' 등 민원성 주문이었다고 한다.

실제 예산편성시 사업으로 채택하거나 참고할 만한 의견이 적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제주도의 도민사업제안 예산편성은 천안시의 사례를 답습할 개연성이 농후하다. 결국 주민의견 수렴했네 하는 유명무실(有名無實)한 생색내기용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 심사위원회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문제제기다. 가정해 보자. 환경단체가 난개발을 방지하고 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사업을 제안했을 때, 이 제안이 도지사의 입장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면 과연 환경단체의 제안내용이 심사위원회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동안 제주도의 도지사판공비공개나 행정정보공개에 대한 소극성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각종 위원회 구성에 있어서의 정실(情實)주의와 회의내용 비공개, 유명무실 위원회 문제 등이 노정 되어 왔다.

이렇게 제주도의 각종 위원회는 전문가의 자문을 구한다는 취지로, 주민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취지로 정책집행의 정당성을 포장해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심의위원회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누가 보장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이것을 보장한다는 것은 나무 위에 올라가 물고기를 찾는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결론적으로 제주도가 이번에 발표한 도민제안 예산편성은 밥상에 얼씬도 못하다가 겨우 김치쪼가리 하나 주겠다는 격이다.

혹자는 지방의회의 예산심의 과정에서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면 될게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지방의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나열해 보면, 예산심의 기간이 짧다, 법령에 의해 의회가 심의할 범위가 제약되어 있다, 사업예산에 있어 소지역 갈등과 소규모 나눠먹기가 자원배분이 많다 등이다.

여기에 지방의원의 전문성 부족, 구성에 있어서 자영업자 위주, 각종 사업에 대한 이권개입, 집행부와의 은밀한 담합 등이 있어왔다. 그리고 필자가 사적으로 아는 한 의원은 공개적으로 의회의 예산심의는 숫자조정에 가깝다고 한다. 이렇듯 의회를 통한 예산편성시 주민의 참여방법은 함량미달이다.

사실상 주민은 세금을 낼 의무만 있지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자기 결정권한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주민이 예산편성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제 그 대안을 이야기해 보자.

예산편성에 주민참여 방안으로 자주 회자되는 것이 '참여예산제'이다.
참여예산제는 1988년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시에서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이 제도는 예산의 투명한 공개와 주민참여를 통한 예산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고, 시정부와 지역주민 대표와의 협의를 바탕으로 예산계획을 마련하는 것이다.

참여예산제는 지방정부 예산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그 지역주민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필요한 예산을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지방자치와 참된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참여예산제'는 지방의 재정운영권한이 법·제도적으로 충분히 보장될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적 상황에서 참여예산제의 도입은 이른감이 있지만 그 취지와 의미를 살리면서 우리 상황에 맞게 조절할 수는 있다.
즉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야부터 주민과 함께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민의 참여방법을 조례 등으로 제도화하는 것이다.

일단 아래의 서울시 예산편성에 시민참여 조례안을 유심히 살펴보자.

'서울특별시 예산편성에 있어서 시민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조례(안)

■ 예산참여 시민위원회

<구성>
① 관계 공무원
② 예산 및 행정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전문가로서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의한 비영리민간단체의 추천을 받은 자
③ 본 위원회의 참여를 희망하는 시민으로서 공개모집절차에 의해 선정된 자
(②와 ③에 해당하는 자의 비율이 2/3를 초과하여야 한다.)
<기능>
① 예산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집약하는 활동
② 시민들을 대상으로 서울특별시 예산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활동
③ 예산정책토론회를 개최ㆍ주관하는 활동
④ 기타 위원회의 목적달성을 위해 필요한 활동

■ 예산정책토론회

① 예산정책토론회는 예산참여 시민위원회가 주관하여 진행한다.
② 예산정책토론회는 매년 9월에 1회 실시한다.
③ 예산정책토론회는 사전설명회, 분야별 토론회, 총괄토론회로 구분하여 진행한다.

■ 예산관련 위원회

① 재정계획심의위원회, 투자심사위원회 등 위원회 위원의 2/3이상을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의한 비영리민간단체의 추천을 받거나 시민을 상대로 한 공개모집을 하여 위촉하여야 한다.
② 위원회의 회의는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위원회의 회의의 안건과 회의록은 회의종료 후 7일 이내에 서울특별시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어야 한다.
**여수시민협 주최 제37회 시민토론회 자료 p.5 재편집

위에 있는 서울시의 조례안을 토대로 제주지역 실정에 맞게 「제주도 예산편성에 주민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조례」를 만드는 건 어떨까? 그리고 예산편성에 대한 공청회와 청문회 등의 예산정책토론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해 보자. 현재 경기도나 인천에서는 예산편성단계에서 예산과 관련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가 지방분권시범도 위상에 걸맞게 가장 먼저 주민참여 예산편성 조례를 제정하고 예산편성과 관련한 공청회와 청문회를 정례화 하자.
이럴 때 생색내기용이란 비난도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 당국은 유념하기 바란다.

--추신:제주일보에 '도민제안 예산편성제'가 전국에서 제주도가 처음으로 실시한다는 것은 잘못된 기사(?)입니다. '도는 -----가 전국 최초라고'표현하면서 물론 제주도가 한 얘기지만, 기자라면 사실확인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인천, 안산, 대전, 성남, 마산, 청주, 부산(필자가 아는 것만) 등 모두 제주도 보다 먼저 주민의견과 제안을 통한 예산안 마련을 시행한 자치단체입니다.

***참여예산제(Or amento Participativo)는 매년 한번의 사이클을 통해 시민들이 개인으로서, 혹은 시민사회의 다양한 집단들(지역결사체, 문화집단, 특수이익집단)의 대표로 참여할 수 있는 이중구조를 발전시켰다.

그들은 특수한 지역들을 위한 계획과 자치적인 투자우선권에 대해 협의하고 결정했으며 이런 계획들의 결과를 검토했다. 이 과정은 매년 3월, 시의 16개 지역 각각의 지역의회(regional assemblies)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거대한 회의에는 때때로 천명이 넘게 참석해서 前해의 계획과 예산을 검토했으며 자신들을 대변할 대의원들을 선출했다.

시민들에게 답변하기 위해 시장과 참모들은 이 회의에 출석했다. 모든 대의원들은 출석자의 수에 따라 증감되었고, 그 전체 수에 특수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의 비율을 추가로 적용했다. 그 다음 달에 이 대의원들은 지역의 욕구에 대해 토론하고 하나의 계획을 수립하는데 필요한 기술적인 기준을 충분히 이해한 후(이런 전제하에서) 한 주나 보름 간격으로 각 지역에서 회의를 가진다.

참여자의 수는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 40∼60명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참석했다. 또한 각각의 주제 포럼(thematic forum)에서 대의원들은 하나 이상의 지역과 관련된 계획을 토의한다. 이런 작은 중재회의들(Intermediary Meetings)은 제2차 지역총회(Regional Plenary)에서 지역 대의원들의 한 표가 지역의 요구를 우선화하도록 하고 자치예산평의회(Municipal Council on the Budget)의 평의원들을 선출한 후 종결된다.<진실의 힘>

---> 이 글은 Politics & Society라는 잡지에 실린 지양팔로 바이오치(Gianpaolo Baiocchi)의 글("Participation, Activism, and Politics: The Porto Alegre Experiment and Deliberative Democratic Theory", 2001년)을 민주노동당 하승우 운영위원(경희대 박사과정)이 번역하여 축약한 것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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