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만 더 햇볕을 주십시오"

'주여, 어느덧 가을입니다
지난여름은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어 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십시오
일년의 마지막 과일이 무르익도록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베풀어주십시오
과일이 터질 듯 익어
마지막 향기가 포도주에 깃들 것입니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집을 짓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또 그렇게 오래 남아
밤새 책을 읽으며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이리저리 가로수 사이를 불안하게 헤맬 것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릴케(1875-1926)의 시 '가을날'을 읽었습니다.
가을날의 풍요와 추석 보름달의 넉넉함을 새기며 읽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그린 고향은 이렇게 무르익은 가을이었습니다.
떠났던 이들이 만나 도란도란 정을 나누는 풍경이었습니다. 농주(農酒) 한 사발로 불콰 하게 익은 그리움이며 설렘이었습니다. 철철 넘치게 따라 마시던 인정이 있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만큼만 하여라." 그렇습니다. 이번 추석은 그런 명절이어야 했습니다.

풍요속에 감춰진 탐욕의 비늘

그러나 우울한 귀향이었습니다. 정겨웠던 고향엔 타향같은 서먹한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차려진 상(床)위에는 기름기 흐르는 윤기가 번들거렸지만 마주한 가슴에는 뻥 뚫린 삭막함만이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지어낸 웃음소리는 "왁자"하게 넘쳐 났지만 공허했고 가려진 마음속에는 온갖 탐욕들이 비늘처럼 일어서서 번득이고 있었습니다.

소꿉동무 때 나누었던 우정을 시늉하면서도 마음속에는 저울추의 무게를 계산하는 흥정이었습니다.

웃고 나서도 더욱 서글퍼 씁쓸해지고 가진 것을 나누면서도 가슴은 휑하니 냉기가 서리는 이 '우울한 귀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흔들리는 국정, 비틀거리는 경제, 악다구니 정치, 각종 사건사고에 살인.강도.자살등 막가는 사회 현상, 북핵문제와 이라크 파병 논쟁, WTO 농업협상과 관련한 농민의 자살까지, 여기에다 나라 전체를 할퀴고 간 태풍 '매미'의 상처등 어느것 하나 보름달처럼 밝은 소식은 없습니다.

아프리카 초식 동물들처럼 한 놈이 내달리면 왜, 어디로. 무엇 때문에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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