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읍 의귀리 '현의(顯義)합장묘' 유해 발굴은 시신을 더 넓고 양지바른 곳으로 이장하고자 하는 유가족들의 바람에 따라 이루어졌다.

유가족들의 단순한 생각과는 달리 이번 발굴은 4ㆍ3희생자 집단매장지에 대한 첫 발굴 사례라는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매장지 발굴은 말로만 전해져 오던 집단학살의 실태를 그대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해당 유가족에게 국한되지 않고 앞으로 도내 각지에 산재한 집단매장지에 대한 조사ㆍ발굴의 선례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발굴은 그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그렇게 급하게 이장할 필요성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기존 묘역이 도로에 편입되거나 옮겨져야 할 급박한 상황이 아닌데도 서둘러 이장함으로써 역사적 현장이 훼손되어 버렸다.

눈 앞에서 사라진 4.3의 상징적 사적지

대표적인 4ㆍ3희생자 집단매장지가 우리 눈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잘 보전했다가 체계적인 조사와 발굴 과정을 거쳐 향후 조성될 '4ㆍ3평화공원' 묘역으로 옮기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현의합장묘'가 유가족만의 무덤이 아니라 4ㆍ3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상징적인 사적지이기 때문이다.

더욱 큰 문제점은 사전 조사 없이 서둘러 화장을 결정해 버렸다는 것이다. 문헌자료 조사와 더불어 관련자들에 대한 증언 채록을 통해 학살 및 매장 경위, 매장 희생자 수, 신원을 어느 정도 밝혀놓고 발굴에 나서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진상조사 없이 화장...발굴 기본 원칙도 없는 무리한 발굴 과정

하루 동안 발굴을 해서 다음날 곧바로 화장 처리해 버린 것은 유족들 스스로 진상 조사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드러내 버린 것이다.
당일 현장에서 만난 법의학 전공 강현욱 교수는 발굴된 유골의 상태가 양호하여 DNA 유전자 감식을 통해 대부분 신원을 밝힐 수 있다고 하였다. 대퇴골만이라도 샘플로 채취하여 감식을 해보겠다고 유족들에게 제안했으나, 비용 문제와 유해 훼손의 이유를 들어 유족들은 반대했다.

그러나 미리 계획된 화장ㆍ이장 일정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집행 방침이 확고했기 때문에 발굴의 기본 원칙은 무시되었다. 법의학ㆍ해부학 전공 교수들이 하는 일이라곤 유골의 뼈를 맞추고, 수를 헤아리고, 성별 감식을 하는 정도였다.

발굴 방식도 문제였다. 장의사에서 고용한 인부들이 동원되어 봉분을 삽으로 걷어내면서 시작된 발굴은 막상 유골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잠시 정지되었다. 부랴부랴 동원된 꽃삽과 호미로 조심스럽게 유골들을 밖으로 들어내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실측 조사도 없었고, 발굴 과정에서 무리한 삽질이 이루어져 일부 유골은 훼손되어 버렸다.

사전 전문가 자문단 구성했어야

이번 발굴은 근본적으로 유가족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될 성질의 것이었다. 마땅히 공적인 사업으로 추진되어야 했다. 계획을 세우기 전에 역사학자ㆍ고고학자ㆍ법의학자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 자문단이 필요했으나, 전혀 없었다. 현장에는 고고학 발굴 전문가 한 사람 없어서 유족이 직접 나서서 뼈를 수습하였다.

당일 동원된 의학전공 교수 두 사람이 현장을 지휘하면서 나름대로 체계적인 수습이 이루어졌음은 그나마 다행이다. 원래 화장을 결정할 당시에도 이장의 편의만 고려했지, 원칙적인 조사 방식은 외면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유족들의 전문성 결여를 문제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발굴ㆍ이장 비용을 지원한 4ㆍ3지원사업소나 발굴 계획을 미리 알고 있던 4ㆍ3유족회, 4ㆍ3연구소가 몇 마디 조언만 했더라도 많은 문제점은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발굴은 앞으로 매장지 발굴이나 묘역 조성, 유적지 조사 및 현장 보전 등을 규정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함을 교훈으로 남겼다. 4ㆍ3특별법에 매장지 현장 보전 및 발굴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체계적인 매장지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장 보전에 따른 예산의 확보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의합장묘 발굴의 또하나의 교훈

유적지 보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제주4ㆍ3연구소가 도내 전역에 대한 4ㆍ3유적지 전수조사 결과 애월ㆍ조천읍 지역에만 147곳(희생터 35곳, 잃어버린 마을 33곳, 성터 20개소, 은신처 9곳, 수용소 3곳)이 확인됐지만, 4ㆍ3 유적에 대한 보존방안이 없어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된 법 규정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4.3특별법, 매장지 '현장 보전 및 발굴'관련 규정 추가 절실

지난 3월 진상조사보고서 채택 과정에서 진상조사기획단은 "집단매장지 및 유적지 발굴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정부에 건의했다. 향후 특별법 개정시 이 내용을 삽입하고 시행령과 조례 등 세부법령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개개 유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적 명예회복 차원에서 정부의 지원과 조치가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매년 위령제 등의 행사를 통한 희생된 원혼들의 넋을 기리는 것 못지 않게 유골 발굴에서의 과학적 접근방법을 통한 진상규명 역시 중요한 과정"이라는 강현욱 교수의 따가운 지적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박찬식의 역사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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