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다시레기'

내가 20대 초반이었을 때, 가족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 처음으로 죽음을 가까이에서 느끼게 해 주었던 경험이다. 때문에 당시의 나는 상당히 심각해 있었다. 물론 많이 슬프기도 했다. 가슴 한 구석이 휑~ 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황량해진 심사에 짜증을 돋구는 사람들이 있었다. 술에 취해 고성을 지르는 사람, 노름 자본을 뜯어 가는 사람, 술이 부족하다 고기가 부족하다며 땡깡을 부리는 사람, 이건 말이 문상이지, 사실은 문상을 빙자한 한 바탕 놀이였다. 괘씸했다. 상을 당한 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해주지는 못할 망정 행패라니.

나이가 좀 더 들어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을 때, 그 땐 20대 초반 내가 가졌던 그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상주가 슬픔에 빠지는 것을 막아 주기 위해 일부러라도 상주를 괴롭힌다는 것이었다. 들어보니 그럴 듯도 했다. ‘다시레기’라고, 전남 진도에선 아예 발인 전날 한 바탕 웃음 잔치가 열리기도 한다. 이 ‘다시레기’에선 상주를 웃기지 못하면 그건 낙제점이 된다. 그런 만큼 상갓집 풍경은 침통보다는 활발한 웃음이 있어야 제격이라는 게 분명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제주도엔 다시레기가 없다. 물론 비슷한 건 있다. 영장밭에서 춤추는 장면을 담은 만농 홍정표 선생님의 사진만 봐도, 제주의 장례 역시 침울함만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상갓집의 희극:뻔한 조화(弔花)와 정치인들의 악수 공세

희극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슬픔이 극복된다. 그렇다면 요즘은 어떤 희극이 연출되고 있을까? 나는 단연 그 뻔한 조화(弔花)와 정치인들의 악수 공세를 들고 싶다. 얼마 전 나의 외숙모가 돌아가셨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장소는 동광성당, 밤이 늦어 살짝 졸음이 오기 시작할 때였는데, 주변이 소란해졌다. 누가 뜬 모양이었다. 우근민 도지사였다. 자연스럽게 한 사람 한 사람 악수 세례가 이어졌다.

그러나 압권은 역시 현경대 의원이었다. 우근민 도지사가 퇴장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도착했다. 똑같이 반복되는 행사. 그러나 그 남자에겐 특별한 게 있었다. 한 사람도 놓치지 않으려는 집념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주방도 예외일 순 없었다. 그 날 내가 놀란 건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던 그 아줌마의 차례가 되었을 때였다. 안절부절하며 장갑을 벗으려 하자 현경대 의원은 예의 그 자상한(?) 웃음을 지어가며 물 젖고 세제 잔뜩 낀 고무장갑 위로 아줌마의 손을 덥석 잡는 게 아닌가. 확실히 그 남자에겐 뭔가 있긴 있다.

이런 희극이 있기에 상갓집은 침울하지 않다. 진도 다시레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정치인들의 그 촌스런 연기들이 유족들을 슬픔에서 건져 준다.

하지만 상가는 아무래도 상가인가. 그날 냉소의 웃음을 흘리던 나는 이내 곧 슬퍼졌다. 외숙모의 타계 때문만은 아니다. 민초들의 그 착한(?) 심성들 때문이었다. 사실 현경대가 도착하기 방금 전까지, 내 주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온 국민의 취미생활이 되어버린 ‘정치인 욕하기’를 하고 있었다. 도마에 오른 사람 중엔 현경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나의 외사촌형 한 분은 정말 거품을 물 듯이 현경대를 비난했다. 솔직히 속으로 동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 남자 현경대가 나타나자 나의 외사촌형은 구십도로 절을 하며 악수를 나누는 게 아닌가. 아, 이런 배신감이라니!

이제 그만들 사기치자!

욕을 하지 말던지, 아니면 악수를 피하던지, 그도 아니면 형식적인 악수라도 나누면서 따끔하게 한 마디 해주던지, 그래야 할 게 아닌가. 아니, 최소한 구십도 절은 하지 말아야 할 게 아니냔 말이다. 이건 사기다. 도민들이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현경대를, 정치인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거다.

정치인들은 본능적으로 영악하긴 하지만 그래도 순진한 구석이 있어서 이런 사기엔 또 잘 넘어간다. 그러니 그들은 마치 자신이 정말 훌륭한 정치인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들 잘못이 아니다. 온전히 국민들, 도민들 잘못이다. 국민들이 정치인을 배려 논 것이다. 도민들이 현경대를 망쳐 놓은 것이다.

이제 그만들 사기 치자. 싫다 하면서도 앞에서 구십도 절하는 짓들은 하지 말자. 그저 권력자가 손 한 번 잡아준 것에 감동하여 헤 벌레~ 하지는 말자. 정치 똑바로 하라고 따끔하게 말해주자. 그도 아니면 분명히 싫다는 싸인을 보내자. 악수를 거부한다거나 자리를 피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안 그러면 정말 그들은 착각 속에 살게 된다. 선거에 나서는 놈 치고, 자신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놈을 본 적이 있는가. 없지 않은가. 그것 봐라. 그들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게 해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사기치는 건 죄다. 초등학교 바른 생활 시간엔 도대체 무얼 배웠는가. 정직하게 살아야 할 게 아닌가. 아니 그 이전에 국민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땅에 떨어진 사회도덕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사소한 일에서부터 정직해야 한다.

정치개혁은 상갓집에서부터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 정치 변화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주민 참여, 주민 소환이 별 게 아니다. 직접 민주주의는 가까이 있다. 가장 흔하게는 상갓집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직접 정치인들을 만나는 자리 아닌가. 그곳에서 할 말을 못하면 도대체 어디서 하겠다는 건가. 왜 그런 직접 민주주의 기회는 날려 버리면서 큰 그림의 정치개혁만을 떠드는가. 구체적 현실에선 자신의 정치적 의사 표명도 못하면서 추상적으로 민주주의, 주민 자치를 떠들면 뭐 하겠는가.

정치는 현실이다. 구체적 삶이다. 그러니 이제 도민 사기극은 그만들 하자.

*뱀 발: 강준만의 책,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이라는 책을 처음 잡았을 땐, 노무현이 국민을 상대로 사기 치고 있다는 내용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읽어보니 정반대였다. 오히려 거꾸로 국민들이 노무현에게 사기 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현경대가 사기치는 게 아니라, 도민들이 현경대에게 사기 친다는 말이다. 그러니 제발 현경대 쪽에서 화들짝 놀라는 일은 없길 바란다. 그리고 왜 하필이면 다른 국회의원들도 많은데 현경대냐고 묻지 않길 바란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구 의원이라 자주 접하게 되어서 그렇다. 그러나 현경대가 아니라 원희룡이나 그리고 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 나머지 두 사람을 이 글에 대입해도 아무 문제없다. 똑 같다. 현경대와 차별성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나 개인으로서는 현경대 의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광주 학살의 주범들과 한솥밥을 먹었던 그리고 지금도 먹고 있는 사람들을 나는 결코 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너무 섭섭해할 필요는 없다. 모두 다 그 스스로가 행한 업의 대가일 뿐이다. 게다가 이 글의 비판 대상은 현경대가 아니라 그를 욕하면서도 앞서선 굽실거리는 도민들이니 현경대 의원이 기분 상할 이유는 없다.
<이영권의 직설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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