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자의 교단일기(5)]소규모 농촌학교 순회교사 남발은 온전한 학습권 확보의 장애

곁에 와있는 줄만 알았던 봄이 주춤거리는 사이, 삼월도 벌써 중순을 넘어가고 있다. 음력으로는 아직 정월이니 겨우살이를 나는 게 지극히 당연한데도, 봄에 대한 기다림은 간절하기만 하다. 

소규모 농촌학교의 새 학기는 봄뜻을 앗아가는 꽃샘추위만큼이나 오슬오슬하고 황량한 몸살 증후군을 앓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5학급이었는데 올해 들어 3학급으로 줄면서 바야흐로 초소규모학교가 되었다. 가까스로 학급 정원수를 웃돌아 두 학급을 운영해 왔는데, 서너 명의 학생이 전학 감으로써 학급당 정원 37명이라는 기준에 적용되어 두개 반이 한 학급으로 통합된 것이다.

학급수가 줄면서 교사 정원도 11명에서 8명으로 줄었다. 한 교사가 1·2·3학년 교과를 전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었고, 수업시간이 적은 교사들은 두세 학교로 수업지원을 나가는 '순회교사'가 되었다. 

올해 우리 학교에서 타 학교로 순회 나가는 교사는 전체 8명의 교사 중 4명에 이른다. 4명의 교사들은 하루, 이틀, 사흘까지 타 학교 수업지원을 위해서 근무지 학교를 비운다. 그리고 타 학교에서 3명의 교사가 수업지원을 위해 우리 학교에 온다. 화·수·목·금요일에는 4명이 수업 지원을 나가고, 화·목요일에는 3명이 수업지원을 온다.  

소규모학교에 근무하면서 타 학교로 수업지원을 나가는 순회교사가 될 수 있는 건 그나마 행운인 듯하다. 학교의 형편이 형편이다 보니 종전과 달리 순회교사라고 해서 학교업무를 빼주거나 하지는 않지만, 날마다 학교에 붙어있어야 하는 업무나 담임 업무를 배정하지 않으므로 조금은 가벼운 근무여건을 가질 수 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하거나 각종 자잘한 일들에서 잠시 해방될 수 있다는 건 일상의 탈출로서도 다행한 일인 것 같다. 거기다 가산점도 받고, 월 5만원의 수당도 받을 수 있으니 굳이 순회교사를 마다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전체 교사 8명이 모두 학교에 남아있는 날은 오로지 월요일 하루뿐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시간표 짜기와 일과 진행은 무척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업지원을 나가거나 들어오는 교사들의 시간표를 채우다 남은 빈자리는 남아있는 교사들의 몫이 되기 십상이다. 

상치교사를 줄이기 위해서 순회교사가 생겨났다지만 순회교사의 남발은 학교에는 업무 장애, 교사들에게는 교과지도와 업무 폭증으로 돌아오고 있다. 더욱이 아이들에게도 온전한 학습권 확보의 장애가 일어나고 있다.

선생님이 순회를 감으로써 학습과정의 적절한 안내나 조치를 받을 수 없어 애태우거나, 순회 오는 선생님에 대해서는 우리 학교 선생님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수업에 소홀하거나 거리감을 느낌으로서 학습 분위기 형성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학교를 자주 옮겨 다녀야 하는 순회교사들도 잦은 근무지 이동으로 산만해져 집중력이 떨어지는 고통을, 학교에 남아있는 교사들은 업무과다로 인한 고통을 받고 있다. 

잔류교사들은 교과담당도 없고 교육청에서 수업지원을 해주지 않은 상치교과 수업을 해야 한다. 우리 학교도 순회를 나가지 않는 3명의 교사들이 상치교과를 가르치고 있다. 과학교사는 1학년 한문을, 사회교사는 2학년 한문을, 국어교사는 3학년 한문을 맡도록 교과를 배당하였다.

교육청에서는 국어교사가 한문 1·2·3학년도 같이 맡도록 조언했지만, 특정 교과 교사의 업무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고육지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교과배당은 전공과 관계없이 교사의 수업시수와 학교형편, 원활한 학사운영 논리에 의해 일방적이고 반강제적으로 배정될 뿐, 이 과정에서 의사결정의 민주적 절차는 기대할 여지도 없다.  

새 학기 업무분장을 발표할 시기에는 각 교과와 교사의 이권에 따라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업무라는 것은 일단 떨어지면 해야 하므로 '어찌 되겠지'하고 좋은 마음에 일을 떠맡았다가는 일 년 내내 고생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들 사이에서는 '하루 싸우면 일 년이 편하다'는 말이 관습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런데, 학교업무 중에는 한시적인 일도 있고, 연중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또, 해도 그만, 대충 해도 그만인 일이 있는가 하면, 하지 않으면 학사일정을 삐걱거리게 하거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들도 있다.

교사의 업무부담은 이런 차이에서 비롯되므로 어찌해서든 가벼운 일을 맡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3학급의 소규모 학교라고 해서 공문이 일부만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큰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의 반만 해도 되는 일이라면 겁낼 일조차 못된다. 

소규모학교 교사들은 교과는 교과대로 과다하게 지도해야 하고, 학사업무나 행정업무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현실에 매여 있다. 이런 상황이니 학교 밖으로 나가지 못한 교사들은 '쉐앗베(밧줄)'로 걸려매인 '밧갈쉐(밭가는 소)'의 처지와 다름없다. 

   
 
 
학교의 관리자들은 상부기관과 학부모로부터 질타나 비난이 오는 것을 못 견뎌 한다. 그래서 교사들의 고충을 알면서도 교원평가와 사회분위기를 내세우며 교사들을 더욱 단단하게 학교 안에 묶어놓으려 한다. 교육자의 자세와 헌신을 강요하는 일이 자칫 교사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발전을 도와주는 일을 저해하는 직권남용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초소규모 학교에서는 하루 1000평의 밭을 갈기에 적당한 힘을 가진 소를 단단한 '쉐앗베'로 걸려매고, 2000평의 밭을 갈라고 채찍을 휘두른다. 한눈팔지 말고 부지런히 밭만 갈아서 수확량을 올리라고 '답달'한다. 날마다 '느랏' 해서 돌아오는 고단한 일상이 되풀이되건 말건 한해 목표량과 수확량만이 중요할 따름이다.

날로 황폐화 가는 학교현장에서 진정한 교육을 기대할 수 있을까?

                                                                               [고산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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