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6천만원 들인 문예회관 무대커튼 제작…색채, 형태 엇비슷
채기선 화가 "이미지 등 표절"…해당 작가 "아무나 그릴 수 있어, 표절 아니"

▲ 표절 의혹을 제기한 채기선 화가의 '한라산' 작품
▲ 무대막의 원재로 쓰인 제주대 손일삼 교수의 '한라산' 원작.
▲ 제주도 문예회관 대극장내에 설치된 무대 장막 '타피스티리'(수제품) 작품
<편집자 주=당초 채기선 화가가 '표절 의혹 제기' 기자회견을 했을때까지는 해당 교수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모 교수'로 표기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제주대 미술과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했고, 해당 교수가 공개적으로 입장과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진과 함께 실명을 밝혔음을 알려드립니다.>

제주도문예회관 대극장에 설치된 무대장막의 원화를 놓고 특정화가의 그림을 모방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표절' 논란이 일고 있다.

가로 18m, 세로 8.5m의 무대 메인커튼에 울과 실크를 이용해 제작한 대형 '한라산' 작품의 원그림이 수년간  '한라산'을 테마로 그렸던 작가의 색채와 이미지를 그대로 도용했다는 것.

서로가 잘아는 제주지역 미술계에서 작가간 표절 의혹을 제기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지금까지 미술 작품 표절 문제가 불거진 경우는 지난 2002년 4.3평화공원 조형물 제작 당시 강요배 화백이 그린 '동백꽃 지다'의 4.3연작 그림의 일부(해녀 등)를 당시 제주대 모 교수가 표절했다가 법적 문제를 제기당하면서 도중 하차 한 바 있다.

올해 2월 문예회관 대극장에 '대형 무대막' 설치....원화 자체 '모방' 제기

제주특별자치도 문예진흥원은 지난해 11월 문예회관 대극장 무대 장막 제작을 조달청에 의뢰, 올해 2월 한라산 그림으로 수놓은 대형장막을 설치했다.

이를 위해 도문예진흥원은 지난해 10월 바탕 그림을 제주대학교 미술학과(당시 학과장 김방희)에 의뢰했고 제주대로 부터 무상으로 기증을 받았다.

당시 그림은 김용환 지도교수(서양화)의 책임하에 손일삼 교수(36.당시 전임강사. 4월 1일자로 조교수)가 50호 '한라산'을 그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따라 문예진흥원은 2억 6700만원의 사업비를 갖고 조달청 입찰제에 따라 선정된 서울 소재 전문업체인 '동굉산업'을 통해, 무려 4개여월에 걸쳐 작품을 완성해 내걸었다.

이 대형막 작품은 설경을 이룬 한라산과 갈색빛 오름, 노란색 유채꽃밭 등 제주의 사계를 담아낸 '제주의 상징적인 풍광'을 그린 작품이다 .

하지만 한라산 그림을 놓고 2002년 '한라산' 주제작품으로 서양화 부문 대상을 수상한 채기선 화가(42)가 모 교수가 '상당부분 색채와 이미지를 도용했다"며 표절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

▲ 자신이 그린 '한라산' 그림 옆에선 채기선 화가

채기선 화가 "정열 쏟았던 작품에 대한 저작권 침해이자 명예훼손"

5일 자신의 화실에서 기자회견을 마련한 채 작가는 "제주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공공시설물인 문예회관 대극장 무대막에 본인의 작품의 이미지를 도용한 작품을 설치한 것은 작가에 대한 명백한 저작권 침해이자 명예훼손"이라며 "이는 제주도민과 작가에 대한 문예회관의 책임 없는 원작도용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 표절의혹을 제기한 채기선 화가

채 화가는 "대한민국 화가라면 한라산을 그려보지 않은 작가가 없을 것이지만, 그러나 문제의 무대막 그림은 조형적 기법이 자신의 그림과 너무도 비슷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문제는 공공기관에서 2억 6700만원의 상거래 행위가 들어간 창작행위가 발생했다는 점"이라며 "이는 개인 집에 장식품으로 활용되는 그림이 아니다. 작가로서는 굉장한 치명적인 상황"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만약 무대 막을 그린 모교수가 독창적으로 연구한 한라산 작품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간 연구전시 발표하였던 한라산 작품 자료를 제시해 보라"며 "만약 납득할 만한 연구 자료들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공개사과와 함께 무대 막을 철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관련 미술인 사이에서도 설왕설래 하고 있다. 몇몇 미술작가들은 "무대에 설치된 한라산 그림을 보고 채 작가의 작품인 줄 알고 축하인사까지 건넸다가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다"고 할 정도로 매우 흡사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제주대 손일삼 교수 "누구나 그릴 수 있는 소재"

▲ "표절이 아니다"라고 밝힌 제주대 손일삼 교수
이에대해 그림을 그린 제주대 손일삼 교수는 "이미지를 도용한 것이 표절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한라산을 전문적으로 그렸던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그릴 수 없는 소재는 아니지 않느냐"며 반박했다.

이날 오후 반박 기자회견을 가진 손 교수는 "필자의 표현기법은 수직적인 산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표현이 엷고 투명하다"며 "저의 한라산은 자연 그대로의 느낌을 담은 반면에 채 화가의 작품은 작가의 감정을 이입시켜 보다 역동적으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이어 "필자의 한라산의 능선과 유연한 곡선의 행태보다 산의 각에 의미를 두고 단순하게 표현했다"며 "반면 채 화가의 오름 능선은 유연한 곡선의 형태를 취하면서 볼륨감과 입체감이 강조되는 차이가 있다"고 해명했다.

제주미대 김용환 지도 교수도 "이미 돌아가셨지만 故 김택화 화가의 화풍을 이어받은 제자들이 많다"며 "채기선 화가도 그 중에 한 사람으로 언뜻보면 작품을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한 화풍을 보인다"고 강조했다.

▲ 5일 제주대 미술학과방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김용환 지도교수(왼쪽)와 손일삼 교수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일부 시인...학자적 양심 유감스럽다"

이에대해 채 작가는 "사실 어떤 작가든지 기량만 갖추면 비슷하게 그릴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며 "한 작가가 자신의 그림을 갖기 까지는 굉장한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손쉽게 기법과 이미지를 도용한다면 어느 작가가 밤을 새며 자기의 그림을 위해 연구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좁은 제주지역사회이다 보니 원만한 해결을 위해 해당 작가를 직접 만나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눴다"며 "하지만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의 입장과 다른 이들과 만났을 때 등 공식적인 입장이 서로 달라, 부득이 기자회견을 통해 작가의 입장에서 소신을 피력할 수 밖에 없었다"고 기자회견을 한 배경을 밝혔다.

특히 "해당 교수는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일부 그림을 모방했다고 시인하며 사과까지 한 적이 있다"며 "학자적 양심을 져버린채 말을 바꾸는 등 국립대 교수가 표절까지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제주대에 무상기증 작품을 의뢰한 부분에 대해서도 "행정적인 측면에서는 대학이 공신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 작업일 수 밖에 없는 그림 자체에 대한 공신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그림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창작영역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대해 제주도 문화예술진흥원 관계자는  "특정인에게 작품을 의뢰했을 때 논란의 소지가 있어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제주대 미술학과에 의뢰를 했던 것"이라며 "다소 화풍과 이미지가 비슷한 것일 뿐이지 한라산그림의 전체 모양과 형태까지 같은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실제 한라산의 전체 모양과 형태까지 닮았다면 문제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며 "이미지를 도용했다는 주장은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편 채 화가는 한라산이라는 주제로 총 14회의 개인전 가운데 4회에 걸쳐 '한라산 주제전을 가진 바 있다.

2002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한라산’주제 작품으로 서양화 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고, 올해 5월9일부터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한라산을 주제로 개인전 오픈이 예정돼 있다.

▲ 한라산 연작 중 하나 ⓒ채기선
<다음은 채기선 작가가 제기한 이미지 오용 근거>

첫째, 본인의 한라산 작품의 특징은 한라산의 웅장한 기상과 생명력을 느끼게 하기 위하여 기존의 원근법에 의존하지 않고 한라산을 색채의 강조와 과감한 터치로 한라산을 강하게 부각 시킨 점.

둘째, 중경에서 제주의 상징중 하나인 오름의 이미지를 레드계열의 색채로 표현한 점.
 
셋째, 한라산과 오름의 강한 이미지를 받쳐주기 위해 화면 밑 부분 3분의1정도를 어둡게 대지와 나무 등을 배치하여 안정감을 유도하고 계절적 이미지의 노란색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점.

넷째, 전체적인 그림의 구성을 한라산의 설경, 붉은오름, 유채 밭을 표현하여 한 그림에서 다양한 계절의 느낌을 표현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 한라산 연작 중 하나 ⓒ 채기선
▲ 한라산 연작 중 하나 ⓒ 채기선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