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으로 하는 나무타령

민요는 문자가 없던 시대부터 지속적이고 꾸준하게 삶을 노래하고 사회를 반영해 온 구술문화이다. 그러나 민요는 교과서의 주요 학습내용으로 다뤄지지 못하고 ‘생각 넓히기’나 ‘심화·보충’에서 한두 편 다뤄질 뿐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소리꾼들의 삶과 노래를 들려주거나, 인터넷에서 퍼온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채록해 오라는 숙제를 내보기도 하는 것은 민요전공자로서 최소한의 애정표현 방법이다.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나무타령〉이 나온다.

‘청명한식에 나무 심으러 가자/ 무슨 나무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거짓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네편 내편 양편나무/ 입맞추어 쪽나무/ 너하구 나하고 살구나무/ 이 나무 저 나무 내 밭두렁에 내나무......./ 로 끝나는 전래동요이다.

이 단원은 ‘메모하기’를 학습하는 단원이지만, 학생들이 실제 민요 가창의 주체가 되어 노랫말을 붙이고 불러보는 활동을 통해 민요의 소통구조를 이해하고 그 깊은 맛을 음미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모둠별로 20가지씩 나무의 종류를 조사한 다음 전래동요 〈나무타령〉과 같이 노랫말을 붙이도록 하였는데, 아이들이 만든 〈나무타령〉의 유형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음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음상의 쾌감을 얻는 전형적인 민요 사설의 구성방식을 활용한 것들이었다.

‘떼굴떼굴 구슬잣나무/ 음메음메 소나무/ 밭을갈자 소나무/ 후루룩후루룩 국수나무 / 망치쾅쾅 꽝꽝나무/ 어푸어푸 물푸레나무/ 고기죽네 작살나무/ 냄새펄펄 쥐똥나무/ 뽀뽀귀신 쪽나무/’

이러한 사설 구성은 우리 민요에 두루 나타나는 표현방식으로, 노랫말의 대부분은 의성어나 의태어의 반복을 통해 정서적 쾌감을 얻음과 동시에 말놀음에 가까운 재미를 얻는 데 있다. 특히, 동요를 비롯한 어희요(語戱謠)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우리친구 벚나무/ 실실 웃는 매실나무/ 살살 웃는 살구나무/ 살살 녹는 녹나무/ 낼름낼름 배롱나무/ 어흥 따끔 호랑가시나무/ 생각하자 생강나무/ 계획 짜자 구상나무/ 등 돌리는 등나무/ 때가 많은 때죽나무/ 신들려 왕버들나무/’

음상의 유사성을 활용하면서 사설의 내용은 일상생활 주변의 삶과 사람살의 단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노랫말들도 꽤 많이 등장하였다.   

‘너무졸려 자장나무/ 잘못하니 사과나무/ 너무아껴 아까시나무/ 어린왕자 바오밥나무/ 제주해녀 히어리/ 잠깨우는 좀깨잎나무/ 비가 많이 와 우산고로쇠/’ 와 같은 귀여운 노랫말, 독서를 통한 배경지식을 활용한 노랫말이 있는가 하면, ‘안 들려 귀 파 조팝나무/ 일어섯! 누운잣나무’와 같은 해학적인 노랫말들도 등장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4개 국어 회화나무/ 외국 가는 비자나무/ 폭죽 터진 꽝꽝나무/ 복장불량 복장나무/ 땅값 올라 땅비싸리나무/ 대출하자 은행나무/ 표절금지 복사나무/버튼 눌러 복사나무/‘와 같이 요즘의 세태나 시대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노랫말들과, ‘개그맨 명자나무/ 매일 노는 탱자나무/ 탱자 탱자 탱자나무/ 장가못가 총각귀신나무/ 미스코리아 꽃단풍/ 감귤아씨 미선나무/’처럼 사회분위기와 현실을 반영한 노랫말들이 꽤 많았다. 특히, 〈나무타령〉에 가장 많이 선택된 나무는 단연 ‘돈나무’였다. ‘돈 필요해 돈나무/ 돈 좀 다오 돈나무/ 부자 되라 돈나무.’ 등과 같이 돈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의 풍조가 여실히 드러났다. 예로부터 민요로써 민심을 살피는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던 것은 민초들의 삶과 가치관, 시대상황과 현실을 반영하는 이러한 민요의 특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톡 튀는 〈나무타령〉이 하나 있었다. 자기 모둠의 여학생들이 자신의 노랫말을 따라오지 못하니 따로 부르고 싶다고 용감하게 나서는 학생이 있었는데,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앞으로 나오더니 랩으로 〈나무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랩으로 하는 〈나무타령〉

Say 워워(워워)
Say 워워워(워워워)
시작할까요?(시작하세요)

바가지에 물푸자 물푸레나무
송일국 주몽에서 출세했다 주목나무
아기 잘도 잔다 자장가 섬잣나무
호나우두 슛 골인 호두나무
영화보자 가문의 위기 가문비나무
미녀는 석류 먹는다 미루나무
정준하 다음 머리 맞나? 중대가리나무
공부시간 할 짓 없어 헛기침 한다 헛개나무 무! 무! 무!
아파트 위층 그만 좀 뛰어다녀 좀꽝꽝나무
꼬리 겨우 길렀는데 불태워 없어졌네 꼬리겨우사리나무
가래 길어 제기 놀이하자 긴가래나무
고생해서 고구마 심었더니 생강 자라난다 고구마생강나무
노지심 박치기 어린이 따라하지 마세요 박나무
양다리 걸치지 말자 양다리 걸친 사람 찔리지? 양다래나무
털갈이 한다 갈매기 털갈매나무
망한 땅에 개나리 난다 망개나무

수줍은 여학생들이 보조를 못 맞추는 건 당연한 지도 모른다. 저런 나무도 있었구나 싶은 나무이름들과,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사설들, 발랄하면서도 귀여운 래퍼의 동작을 지켜보는 동안 아이들이나 나는 내내 키득거렸다. 랩이 끝났을 때 내 눈가엔 눈물이 비죽비죽 흘러나왔다.

▲ 양영자 고산중 교사
민요의 유능한 가창자들은 가창상황과 분위기, 청중의 호응에 따라 얼마든지 사설을 길게 구연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체험이나 정서를 노랫말에 실어 진솔하게 토로하고 풀어냄으로써 청중의 공감을 얻어 왔다. 때로는 사설의 양적 충족과 확대를 위해 말을 한꺼번에 몰아붙여 촘촘하게 엮어나가는 사설엮음 방식을 택함으로써 얼마든지 사설을 길게 구연해내기도 한다. 전래동요의 가창에 랩 형식을 차용한 것은 사설을 길게 구연하고자 하는 가창자의 욕망의 반영이면서, 민요의 전통적인 사설엮음 원리를 잘 반영한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고 듣기만 한다. 기계문명의 급속한 발달은 노래를 부르던 시대에서 듣는 시대로 바뀌게 했다. 모둠별로 민요의 노랫말을 만들고, 함께 불러보는 것도 닫힌 소통체계를 회복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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