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노래비 건립 시비와 관련하여

최근 제주상징노래비 조형물 건립을 둘러싼 제주문화예술재단과 도내 미술계의 갈등은 공공미술에 대한 제주도 문화예술 행정의 파행성과 문화마인드의 빈곤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태로 보인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각 지자체에서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가고 있으나, 제주도의 경우 아직도 이에 대한 수준은 '초보'의 딱지를 떼지 못한 실정이며, 미술인들이나 미술단체들의 인식 수준도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일부 미술인들은 염불에는 관심 없고 젯밥에만 눈이 어두워 조형물 용역수주에 따른 이권 다툼을 벌여 온 것도 사실이다.

흔히 환경미술, 환경조형 등으로 불리고 있는 공공미술은 의뢰기관이 공공기관이거나 공공기금이 지원된 경우이며, 환경미술은 공공미술을 포함하는 상위의 개념으로 공공미술 중에서 도시계획과 결합된 미술을 말하는데, 주로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의뢰를 받아 이루어진다. 공공미술(Public Art)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공공 장소 속의 미술, 공공 장소에 대한 미술의 개입을 의미한다. 여기서 미술은 특정 장소에 놓여지는 예술작품 뿐만 아니라 공공 시설물의 디자인, 문화 프로그램 또는 예술공간이나 문화시설도 가능하다.

공공미술의 중요성은 여러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문화정책적인 차원에서는 황폐해진 도시 환경을 인간화하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지역공동체의 정체성을 표현하며, 이러한 과정에 예술가를 참여시킴으로써 예술의 사회적 기여를 실현하고 문화예술을 진흥시킨다. 그리고 미학적 차원에서는 모더니즘의 틀 속에서 억제되었던 미술의 소통 기능을 회복시키고, 이를 통해 예술과 사회의 통합을 성취하도록 하며 행정 관료, 미술가, 건축가, 도시계획가, 디자이너들과 지역사회간의 연대와 협력을 도모하게 한다.

미국과 일본 등 외국의 사례를 보건대 1960년대부터 1980년대를 거치면서 공공미술의 개념과 작품에 뚜렷한 변화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공공장소 속의 미술에서 공공장소 속의 지역공동체 미술로 이행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광장 같은 빈 공간에 조형물을 갖다 놓는 형식에서 도시재개발 과정에 미술가가 계획 단계부터 참여하는 형식으로의 이행이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공공미술은 미술관의 작품을 그대로 거리에 설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주민과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체 예술'을 모색하고 있다.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주민들로 구성된 지역위원회가 작가 선정에 참여하기도 하고, 지역 주민들과 공무원들이 직접 참여하여 디자인한 타일로 인도를 포장한 경우도 있다. 작가와 건축가, 관련 공무원, 아트디렉트가 함께 작업을 구상하고 이렇게 결정된 계획을 건축가가 받아들여 마스트플랜을 수립하는 협업 과정은 일본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 일반화되고 있다.

지자체가 공공미술을 지역사회에 결합하는 방식은 두 가지로, 첫째는 지자체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의뢰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고 둘째, 민간부문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난 공공미술에 대한 욕구를 실현할 수 있도록 공공미술 지원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전자는 공공미술 프로그램으로, 후자는 1%법안과 같은 법 제정과 보조금을 줄 수 있는 제도 마련으로 귀결된다. 공공건물일 경우 건물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미술가를 참여시켜 미술이 놓이는 공간에 대한 조정이 이루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설치물, 안내표지판에서부터 예술품의 구입과 배치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공공미술을 결합한다. 어느 한 지역을 개발할 땐 계획 단계에서부터 새롭게 조성해야 할 공공장소들을 선정하고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한다.

지금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추진하고 있는 제주민요 노래비 건립은 제주도가 추진해온 '섬집아기 노래비' 건립이 작곡가 이홍렬의 친일 경력이 격렬한 비판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내놓은 사업이다. 제주도는 이를 제주문화예술재단에 용역(용역비 2억 5천만원)을 주었고, 재단은 부설 조형연구소에 조형물 건립 사업을 위임시켰는데, 조형연구소가 건립위원회를 통해 특정 작가에게 이 사업을 수탁하게 하자 도내 미술인들 사이에서 이에 따른 문제 제기를 하면서 갈등과 시비가 빚어졌다.

섬집아기 노래비 건립 추진부터 이미 파행은 예고된 것이었다. 공론화 과정이 생략된 밀실 문화예술행정의 당연한 결과였다. 도민들에게 왜 특정 지역에 아무 연고가 없는 특정 음악인, 그것도 친일 경력이 있는 음악인의 노래비를 세우려고 하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를 구하지 못한 채 추진한 밀어부치기 행정이 거센 여론의 벽에 부딪혀 좌절되었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내놓은 것이 '제주민요노래비'이다.

나는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해서 이런 어설픈 절충이 이루어졌는지 모른다. 노래비로 책정된 예산이라 다른 용도로 전용할 수 없다는 말은 궁색한 변명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왜 꼭 노래비가 되어야 하는가. 다른 문화예술 분야에는 예산을 투입할 곳이 없어서? 꼭 노래비를 건립해야 할만한 무슨 필연적인 이유라도 있는가. 많은 미술인들과 단체, 언론에서도 노래비 건립의 절차적 공정성만 시비를 하고 있지 왜 제주상징조형물이 노래비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문제 제기도 없다.

상징조형물이 되기 위해선 지역성과 상징성에 대한 미학적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표절 의혹으로 법정 시비까지 벌어져 보완 단계에 있는 4·3평화공원 상징조형물도 현상공모 당선자의 역사의식의 부재에서 지역성과 상징성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행해진 결과물이다. 물론 그런 작품을 뽑은 심사위원들의 자질과 심사과정의 투명성도 시비 거리가 될 것이다.

공공미술의 성격을 갖는 상징조형물을 건립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을 두고 계획의 입안 단계에서부터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고 지역 예술인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공청회와 공개토론회를 거치는 민주적인 절차가 필히 선행돼야 한다. 그러한 절차를 통해 어느 지역에 어떤 조형물을 건립할 것인지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작가 선정의 투명성을 기하고 미술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선 주민 대표들과 공신력 있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구성하고, 공개 절차를 거쳐 선정된 작가는 반드시 작업 과정에서 위원회와 일정한 협의를 거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두어야 할 것이다.

함량 미달의 조악한 조형물들이 범람하는 이유는 이런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한 가운데, 용역 수주를 위한 로비와 이면 계약, 시공 하청 등 우리 사회의 비리 관행이 문화예술판에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있어왔던 제주도내 대형 건축물 신축에 따른 조형물과 미술품 선정을 둘러싸고 빚어졌던 각종 의혹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외국의 사례를 보아 알 수 있듯이 공공미술은 공동체예술을 지향해야 한다. 계획에서 설치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보장해야 하며, 지역 주민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꾀하는 참신하고 적절한 내용성을 담보해야 할 것이다. 문화엘리뜨주의에서 나온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배제하고 소외시켜서는 곤란하다.

공공미술을 강조하는 가장 절실한 이유는 결국 쾌적하고 아름다운 생활 환경을 추구하는 지역 주민들의 욕구에 미술이 부응하고자 함이다. 이것은 점차 그 관심사가 증대되고 있는 문화권의 확대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문화권의 확대는 인권, 환경권과 아울러 인간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한 행복권의 추구와 맞닿아 있는 영역이다. 미술의 공공적 기능과 역할에 관, 민, 예술가 모두가 올바로 인식하고 실천할 때 조형물 건립에 따른 해묵은 시비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김현돈의 살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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