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제 전후 일주일 간격 제각각 추진...'4.3 상품화' 비난여론 일 듯

지난10월15일 정부차원에서 4.3을 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로 인정한 '4.3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 통과되고 31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제주에 내려와 4.3유족과 도민에게 사과했다.
실로 55년만에 누리는 감동이자 그간의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순간이었다.

지난 수십년동안 4.3의 진실을 밝히고자 싸워왔던 수많은 사람들...4.3 유족회와 관련단체, 제주도의회, 그리고 이름 없는 수 많은 양심세력들과 도민들이 4.3 명예회복에 힘을 보탠 결과였다.

그 중에서도 제민일보와 제주MBC의 공로는 돋보였다. 아무도 숨죽여 말못하고 있을 때 제민일보와 제주MBC는 지면과 영상을 통해 가슴 한구석 저 만치에 숨어있는 도민들의 한(限)을 꺼냈고, 묻혀진 역사적 진실들을 하나하나 밝혀내 4.3 대중화에 앞장선 대표적인 언론이었다.

# 제민일보 4월4일, 제주MBC 3월28일 일주일 간격으로 ''4.3 마라톤' 개최

제주4.3의 대표적 언론사인 제민일보와 제주MBC 사이에 '4.3'을 두고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4.3보고서 확정과 대통령의 사과로 도민 대화합 잔치가 될 내년 4.3 56주기를 앞둬 제민일보와 제주MBC가 저마다 '4.3마라톤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나섰다
그것도 일주일 간격으로 마라톤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혀 4.3관련단체는 물론 많은 뜻 있는 도민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민과 MBC가 그 동안 4.3에 공로가 많은 것은 인정하나 그렇다고 4.3마라톤대회를 놓고 벌써부터 힘 겨루기 하는 것은 4.3의 상품화라는 차원에서 보기가 좋지 않으며, 앞으로도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어 양 언론사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4.3마라톤대회 개최를 먼저 공표한 곳은 제민일보였다. 제민은 11월28일자 1면 사고(社告)를 통해 '4.3국제마라톤대회' 상설 개최를 밝혔다.

제민일보는 "4·3 평화 마라톤을 개최하는 것은 4·3의 소중한 교훈을 바로 세우기 위한 것으로 제주도를 인권의 상징이자 평화의 섬으로 자리 매김 하려는 새로운 작업"이라며 "4.3 평화 마라톤 대회는 내년 4월4일(일) 첫 대회를 시작으로 해마다 개최, 먼저 가신 님들을 기리는 동시에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깃발을 올려나갈 것입니다."라고 마라톤대회 개최사실을 지면을 통해 공개했다. 제민일보는 그 후에도 몇 차례 사고를 통해 마라톤대회 개최를 홍보했다.

제민일보가 11월28일자를 통해 4.3평화마라톤대회 개최사실을 밝히자 제주MBC 내부가 발칵 뒤집혔다. 4.3관련단체와 4.3마라톤대회를 준비해 오던 MBC는 예상치 못한 제민일보의 '사고'로 "제민일보가 우리의 사업을 가로 챈 게 아니냐"며 내부 논의를 거쳐 12월28일 오후9시 뉴스테스크 첫 보도를 통해 '4.3 국제평화마라톤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제주MBC는 이날 뉴스를 통해 "제주MBC는 4.3의 역사적 교훈과 진실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 4.3유족회와 4.3연구소, 민예총제주도지회와 공동으로 국제평화마라톤대회를 개최하며, 4.3 국제평화마라톤대회 수익금의 50%는 4.3 진상규명을 위한 기금으로 출연할 것"이라면서 "4.3국제평화마라톤대회는 평화의 섬 정착과 4.3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표방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밝혔다. 제주MBC는 제민일보(4월3일,일요일)보다 일주일 앞선 3월28일(일요일)에 하겠다고 나섰다.

일주일 간격으로 그것도 4.3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놓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4.3마라톤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마라톤 명칭도 제민일보는 '4.3 평화마라톤대회', 제주MBC는 '4.3 국제평화마라톤대회'로 MBC가 '국제'란 글자만을 넣었을 뿐 똑같은 취지이자 대회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제민일보와 제주MBC는 우연의 일지인지는 몰라도 마라톤 대회를 주최할 대한육산연맹에 4.3마라톤대회 신청서도 똑같은 날자에 제출했다.다만 MBC가 2∼3시간 정도 빨리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4.3단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도민사회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도대체 제민일보와 MBC가 일주일 간격으로 4.3마라톤 대회를 열겠다니 이게 무슨 소리냐!"며 의아해 하고 있다.

# MBC "우리 아이템을 가로챘다"...제민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다" 주도권 갈등

제민일보와 제주MBC가 제각각 사고를 통해 4.3마라톤 대회 개최 사실을 공표하면서 양 언론사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다.

제주MBC는 "제민일보가 우리의 아이템을 가로챈 게 아니냐"고 반발하는 반면, 제민일보는 "내부적으로 오래 전부터 논의가 진행돼 온 것으로, MBC가 준비하고 있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며 주도권 논쟁마저 벌어지고 있다.

제주MBC 관계자는 "창사 34주년인 지난 9월14일 기념식에서 은희현 사장이 내년 4.3추모제때 4.3마라톤대회를 개최하겠다는 사실을 밝히고, 각 언론사에 배포된 사보(私報)를 통해서도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면서 "이를 모를 리 없는 제민일보가 11월말에 4.3 마라톤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나선 것은 우리의 사업계획을 가로 챈 게 아니냐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은히현 사장이 지난10월에 직접 4.3연구소 등 4.3관련단체를 방문해 대회취지를 설명하고 공동주최를 합의해 양측이 이미 두 차례 실무협의까지 마친 상태였다"며 자신들이 먼저 4.3마라톤 대회를 준비해 왔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제민일보의 입장은 이와는 다르다.
제민일보 관계자는 "2년 전부터 관광협회와 4.3마라톤대회 개최를 논의하다가 올 하반기부터 이야기가 구체화 돼 11월1일 사원MT에서 마라톤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라면서 "MBC가 자체적으로 마라톤대회를 준비해 왔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으며, 우리 사고가 나간 후 기자들을 통해서 그 같은 사실을 알게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4.3단체와 사전에 논의를 하자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우선 내부적으로 준비를 마친 후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으로 결론 나 대회준비먼저 하게 된 것"이라며 "상황이야 어쨌든 두 군데 언론사에서 경쟁적으로 하는 것처럼 비쳐져 곤혹스럽다."고 밝혔다.

# "4.3은 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4.3단체, 당혹감속에 '통합' 주장 제기

이 같은 상황에서 입장이 가장 난처하고 곤혹스러운 곳은 4.3관련단체들이다.

4.3 유족회와 4.3연구소, 민예총제주도지회는 지난10월 제주MBC 은희현 사장으로부터 제의를 받고 4.3마라톤 대회를 공동주최키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민일보가 주최하려는 마라톤대회를 그냥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4.3단체내부에서는 마라톤대회가 국민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4.3을 주제로 평화마라톤대회를 연다는 것은 4.3의 대중화와 전국화 차원에서 아주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제주MBC와 제민일보가 지금까지 4.3관련 보도를 해 온 공로로 봤을 때 4.3마라톤 대회를 충분히 개최할 명분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두 군데로 나뉘어 제각각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4.3보고서가 확정되고 대통령의 사과가 있자 마자 언론사가 4.3마라톤대회를 개최하겠다고 경쟁하는 것은, 언론사 내부의 사정이야 어떻든 자칫 잘못하다가는 "벌써부터 4.3을 '상품화' 하려는 게 아니냐"는 여론이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우려하고 있다.

때문에 4.3단체에서는 제민일보와 제주MBC가 통합해 4.3마라톤대회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아예 한발 더 나아가 "4.3마라톤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좋으나, 저마다 혼자 개최하겠다는 것은 마치 4.3이 자기네들의 전유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마라톤 대회를 제각각 추진하겠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4.3을 상품화시키겠다는 뜻으로 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마저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복잡하게 꼬여나가자 4.3단체 인사들은 제민일보와 제주MBC를 방문해 양측의 입장을 조율하는데 나서고 있다.

4.3단체 대표들은 일차적으로 제민일보를 방문해 "양측의 입장조율이 끝나기 전까지 대회사고를 내보내는 것을 중단해 달라"고 제의해 제민일보로부터 동의를 이끌어 냈으며, 4.3의 대의명분에 입각해 제주MBC와 공동주최 할 수도 있다는 답변도 얻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4.3단체들은 이어 제주MBC를 방문해 제민일보의 뜻을 간접적으로 전하고 MBC도 4.3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 줄 것은 제안하는 등 양측의 입장조율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4.3단체의 한 인사는 "제민일보와 제주MBC가 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나서 난감하기 이를데 없다"면서 "MBC와 공동개최키로 합의서까지 쓴 마당에서 이를 파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제민일보를 외면할 수도 없다"고 밝힌 후 "상황이 이렇게 이른 마당에 결국은 양 언론사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것을 제안하고 조율해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며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양 언론사가 마라톤 대회를 개최해 주겠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기금까지 조성해 주겠다는 것에 대해 고맙기 그지없으나 결과적으로 대회가 일주일 간격으로 치러진다면 이는 4.3영령은 물론이고 도민들을 우롱하는 결과밖에 안 된다"면서 "비록 우리가 4.3관련단체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도민들의 뜻을 어겨가면서까지 양분된 마라톤대회를 인정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제민일보와 제주MBC가 과연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