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꽃보다 음식①] 제주에서 먹는 '멜국'

곧 봄입니다. 나이가 들며 달라진 게 있다면, 계절이 바뀌는 것에 별로 감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다른 계절과 달리 봄은, 온도의 변화만큼이나 저절로 '아 봄이구나' 하고 내뱉게 됩니다. 

겨우내 입혔던 애들의 내복을 벗기고 밖에 내보낼 때, 두툼한 솜이불이 무겁다고 느껴질 때, 꼭꼭 여며두었던 베란다의 문을 활짝 열고 기분 좋게 볕을 쬘 때, 이렇게 봄은 우리 곁에 어느 틈에 와 있습니다. 

매일 먹는 째개가 지겨워질 때  
  

▲ 싱싱한 제주 멜 삼천원 어치입니다. 두어 번 헹구듯이 씻어 건져 놓았습니다. ⓒ 강충민

거의 매일 된장국 혹은 김치찌개로 식탁을 차리다 보니 조금 질리기도 하여 오랜만에 제주시에 있는 동문재래시장에 나가 보기로 했습니다. 저와 각시, 원재, 지운이까지 온 가족이 나섰습니다. 재래시장에 갈 때 모두 같이 가 버릇해 애들도 소풍가는 것 마냥 신났습니다.
 
딱히 무엇을 살지 정하고 나선 길이 아니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멜'을 발견했습니다. 멜은 꼭 봄에만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제주대학교 해양산업공학과의 김석종 교수에 따르면 "4월 초가 되면 멜이 산란을 하기 시작하는데, 2월 초에서 3월 초 사이가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고, 기름도 져 있어 가장 맛있다"고 합니다.

근데 '멜'이 뭐냐고요? '멜'이란 멸치의 제주도 사투리입니다. 씨알 굵은 젓갈용이나 국물용으로 쓰이는 크기를 말하지요. 그래서 제주에서는 멸치젓을 '멜젓', 멸치국을 '멜국'이라고 하지요(이하 제주사투리 어감을 그대로 살려서 '멜'이라 하겠습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멜을 본 김에 제주의 향토음식이라 할 수 있는 멜국을 끓이기로 했습니다. 한 봉지 가득 삼천원을 주고 샀습니다. 멜튀김과 멜조림도 할 요량으로요. 시장모퉁이에 소박하게 펼쳐 놓은 할머니에게서는 봄동과 달래를 천원어치씩 샀습니다. 봄동은 멜국에 넣고, 달래는 양념장을 만들 요량으로요. 이천원에 너무 고마워하시는 할머니에게 괜히 제가 미안해졌습니다.

멜과 봄동만 있으면 OK...재료가 참 쉽죠잉?
   

▲ 시장 한모퉁이의 할머니에게서 봄동, 달래를 각각 천원 어치씩 샀습니다. 이천원에 너무 고마워하셔서 제가 다 미안했습니다. 냉이국을 끓여도 참 맛있을 봄입니다. ⓒ 강충민
 
비단 '멜국'뿐만 아니라, 육지 사람들의 시각에선 이해 못하는 제주음식이 많이 있습니다. 갈치, 고등어, 전갱이(제주사투리로는 각재기)를 비롯한 거의 모든 생선을 국으로 만들어 먹습니다. 거기에 돼지고기로도 국을 끓여 먹는다면 말 다하는 거겠지요(저는 맛만 있지만…).

이렇게 비린 것을 가지고 국을 끓인다는 것은 그만큼 재료가 신선하다는 것의 증명일 터, 게다가 요즘에는 이런 제주음식들이 웰빙음식으로 각광받으면서 음식점에 떡 하니 메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기에 특히, 양념을 거의 넣지 않는 원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린 간단한 조리법은 제주음식의 핵심입니다. 그럼 이제 너무도 간단한 멜국을 만들겠습니다.

멜국 만들기
재료: 멜(생멸치), 봄동, 다진 마늘(간 맞추기 : 천일염, 액젓 또는 새우젓).

재료가 참 쉽죠잉? 요즘 제주의 시장에선 거의 모두 머리를 떼어낸 멜을 내놓습니다. 우리가 국물용으로 쓰는 멸치에서 쓴 맛을 제거하기 위해 내장을 떼어내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 완성 직전의 멜국. 멜국이 끓고 있습니다. 같이 넣은 봄동나물은 살짝 끓여 뜸으로 익혀야 개운합니다. 불끄기 직전입니다. ⓒ 강충민

이제 국을 끓이기로 했으니 맨 먼저 냄비에 물을 붓고 끓여야 하겠지요. 그냥 맹물입니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깨끗한 물로 멜을 헹구듯 씻어냅니다. 두 번 씻으면서 채 손질 못한 내장이나 아주 얇은 비늘도 제거합니다. 다 이런 것도 두 번 씻으면 다 없어지니 굳이 설명할 필요 없는 과정입니다. 채 1분도 안 걸리는 과정입니다.

봄동은 미리 씻어 놓으면 참 좋습니다. 멜국 끓이기가 워낙 쉽고 간단한 과정이라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물이 팔팔 끓이면 씻어 놓은 멜을 넉넉하게 냄비에 넣습니다. 그 사이 후다닥 봄동을 먹기 좋게 썹니다. 된장국 끓일 때의 크기 정도라고 하면 딱 입니다. 

'멜'의 형체를 살리는 것이 포인트
  

▲ 완성된 멜국입니다. 의외로 시원하고 맛있습니다. 제주의 향토음식이죠. ⓒ 강충민

멜을 넣은 다음 한소끔 끓어오르면 바로 썰어 놓은 봄동을 넣습니다. 다시 쉴 틈을 주지 않고 다진 마늘을 넣고 천일염을 넣고 간을 보고 기호에 따라 액젓이나 새우젓을 넣습니다. 그 다음 살포시 불을 끕니다. 매운 고추를 다져 넣거나, 고춧가루를 넣어서 먹는 것은 순전히 먹는 사람의 몫이니까 굳이 설명 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죠.
 
이제 끝이냐고요? 네 끝 입니다. 굳이 우아하게 레시피니 뭐니 하지 않아도 끓인 물에 멜 넣고 봄동 넣고 다진 마늘 넣고 간하면 끝인 그야말로 "참 쉽죠잉" 할 수밖에 없는 제주의 음식입니다. 요리 시간이 채 5분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멜을 넣고 오래 끓이게 되면 국물이 탁하고 특히 개운한 맛이 덜 하더군요. 온전한 멜의 형체를 살리는 빠른 조리가 핵심인 거죠.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요? 한 마디로 개운합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술 마신 뒷날이면 어머니는 멜국을 자주 끓였습니다. 눈치 빠른 분은 아시겠지요. 네, 해장에도 좋습니다.

"뼈만 쓱 발라내면, 아이들도 좋아해요"

[보너스] 멜튀김과 멜조림

▲ 완성된 멜튀김입니다. 실제 완성된 건 거의 한 소쿠리입니다. 조금 부드럽게 상온의 물로 반죽했습니다. ⓒ 강충민

삼천원 주고 산 멜의 양이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밝혔듯 튀김과 조림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멜 코스 요리로 저녁 만찬이 될 참입니다.

멜로 튀김을 하려고 하면 뼈가 문제이겠지요. 어른들이야 뼈째로 와자작 씹어 먹는 것도 좋은 맛일 테지만 애들은 뼈 발라내랴 하다 보면 금세 멜튀김 자체에 거부감을 일으키겠지요. 뼈를 발라내면 애들도 아무 부담 없이 잘 먹고 오히려 맛있다고 난리입니다.

한 손으로 멜의 윗부분을 잡고, 다른 손으로 뼈가 보이는 부분을 쭈욱 잡아당기면 쉽게 빠집니다. 그걸 칼로 일일이 하지 않아도 쉽게 쏙 살만 발라집니다.

이렇게 뼈를 분리한 멜을 밀가루나 튀김가루에 한 번 묻힌 다음 반죽을 입혀 튀겨 내면 됩니다. 바삭하게 한다면 얼음물에 반죽해야 되겠지만, 저는 부드러운 맛이 좋을 것 같아 상온의 물로 반죽을 했습니다. 그 대신 묽게 반죽했습니다.

찍어먹을 양념장은 일식집의 튀김용 장도 좋겠지만 할머니에게서 산 달래로 양념장을 만들었습니다. 씹을 때 달래향에서 봄 내음이 물씬 느껴지라고요.

전골냄비에 씻어 놓은 멜을 넣고 조림을 합니다. 조림을 할 때는 멜을 그릇에 넣고 식용유 한 두 방울 떨어 뜨려 버무려 준비합니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살이 부서지지 않고 단단해서 씹는 감촉도 훨씬 좋습니다.

이렇게 준비한 멜을 전골냄비에 담고 양념장을 끼얹습니다. 양념장은 강하지 않게 간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맛술, 매실액(없으면 설탕)을 넣고 만듭니다. 이렇게 만든 양념장을 위에 끼얹고 물을 살짝 부어 타지 않게 하고 약한 불에 졸입니다. 간간이 양념이 고루 섞이게 뒤적여주고 3분 정도 졸이면 완성입니다.

이렇게 해서 멜 삼천원, 봄동나물 천원, 양념장에 들어간 달래 천원. 도합 5천원으로 멜 코스요리를 완성했습니다. 저녁밥상을 완성하고 온 가족이 둘러앉은 시간, 봄과 행복은 우리 가족 곁에 같이 있었습니다. 

▲ 봄향기 물씬 풍기는 제주 멜코스 요리입니다. 실제로는 멜국 한냄비. 튀김 한 소쿠리. 조림 전골냄비 가득입니다. 재료비 총 5천원 들었습니다. ⓒ 강충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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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제휴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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