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은 지금 ②] 연휴에도 투쟁의 열기는 식지 않아

석가모니는 강정에도 찾아왔다

5월의 첫 주말을 석가탄신일과 함께 맞았다. 해군기지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방문한 문화방송(MBC) '피디수첩' 제작진의 취재는 휴일에도 계속되었다. 취재에 응하는 주민들도 휴일을 잊은 채 아침부터 취재에 응하느라 바쁘다.

"저희가 준비하는 것이 방송 15분 분량이거든요. 이 짧은 시간 안에 해군기지 유치를 찬성하는 주민들과 반대 측 주민들은 물론이고, 국방부, 해군본부, 제주도 등 행정당국의 입장을 모두 정리해서 담아야 합니다. 정말 작업이 힘드네요."

취재는 잘 되냐는 필자의 질문에 대한 이승준 담당 PD의 대답이다. 담당 PD의 심정은 필자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만큼 이 작은 마을에 복잡한 이해관계들과 다양한 세력들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년간 해군기지 문제로 주민 갈등이 고조되면서 민심은 뒤숭숭해지고 마을은 쑥대밭으로 변했다. 거리에서 만난 주민의 말에 의하면, 그간 잘 유지되던 친목도 모두 깨졌고, 부모 제사도 같이 올리지 않는 가정이 여럿 있다. 해군기지 국면이 지나가도 마을 공동체가 정상적으로 회복되려면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자광사 여느 농가보다도 소박하다. 주변에 강정천이 있어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 장태욱 시민기자
 

이렇게 풍파가 닥친 마을에도 부처는 찾아왔다. 길을 물어 마을 주민들이 주로 찾는다는 절을 찾아갔다. 마을 의례회관에서 동쪽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가다보니 길가에 웬일인지 소형 오토바이들이 일렬로 길게 세워져 있다. 가까이 가보니 그곳이 절의 입구가 있는 곳 이었다.

귤 농원 가운데 작은 절집이 아담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파란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여 있어서 마치 작은 농가를 연상하게 한다. 현수막에 쓴 이름이 '자광사'다. 절 주변에 매달아놓은 연등이 주변의 귤나무 색과 대비되어 소박하면서도 다정하게 느껴졌다.

절 입구에 서니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절 바로 동쪽에 강전천이 지나고 있다. 잠시 길에 서서 귤꽃에서 방출하는 향기와 물소리에 취해 있었다. 불심을 전하는데 자연만한 것이 있으랴.

필자가 도착한 후 잠시 시간이 지나자 아주머니들이 절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아마도 예불이 끝났던 모양이었다. 연세가 70세 안팎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대부분 오토바이 한 대씩 잡아타더니 쏜살과 같이 사라졌다. 헉, 좁은 골목길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솜씨가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 오토바이들 예불이 끝나자 할머니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 장태욱 시민기자
 

오후가 되자 PD수첩 제작진이 2박 3일간의 취재일정을 마치고 마을을 떠났다. 제작진은 제주시내에서 남은 일정을 마무리하고 당일 서울로 돌아갔다고 한다.

3일 열린 주민 대책회의, 도청 앞 연좌농성 결의

농부들은 농번기면 일요일도 없이 일을 해야 한다. 일요일 낮에 일을 마친 주민들은 다시 마을회관으로 모여들었다. 해군기지 반대 대책위회의가 저녁 8시부터 다목적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 주민들 5월 3일 저녁 주민들이 마을 회관 다목적홀에 모여 해군기지 저지 투쟁을 위한 대책회의를 하는 모습이다. 황금연휴에도 주민들의 투쟁 의지는 변함이 없다. ⓒ 장태욱 시민기자
 

미리 와서 기다린 주민들도 있었지만, 사정상 예정보다 늦는 사람들 있다. 늦는 사람들도 기다려 주는 것이 농촌의 미덕이다. 그렇게 회의가 시작된 것은 예정보다 30분 정도 늦은 시간이었다.

회의 사회는 강동균 마을회장이 보았고, 이후 일정을 설명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것은 양홍찬 대책위원장이 주로 담당했다.

회의가 열리는 동안 주민들은 현재 도청 앞에서 진행되는 1인시위의 순번을 확인했다. 그리고 새로운 투쟁을 결의하기로 했다. 당장 5월 4일부터 도청 앞에서 주민들이 모여 오전부터 연좌농성을 벌이기로 했다. 주민들이 오전에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귤나무를 살핀 다음 마을회관에 모여서 도청 앞으로 가기로 했다.

 

▲ 양홍찬 대책위원장 강동균 회장과 더불어 해군기지 저지 투쟁을 이끌고 있다. 주민 회의에서 이후 투쟁 일정을 설명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 장태욱 시민기자
 

회의가 끝난 후에도 몇몇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남아 술잔을 기울이며 늦은 밤까지 못 다한 얘기를 나눴다. 필자가 동참하자 그간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한꺼번에 쏟아놓는다. 대책위에 가담해서 해군기지 저지 싸움에 늘 함께해 왔다는 주민이 건넨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강정은 정말 좋은 마을입니다. 저는 특별한 농법을 쓰지 않아도 귤이 너무 맛있어서 작년엔 불로초(제주 감협에서 고급 귤에만 붙이는 브랜드 명칭인데, 불로촌 귤 가격은 보통 귤의 세 배에 이른다)로 팔았습니다. 이런 곳을 두고 다른 어느 곳에서 제가 농사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전엔 정말 사람들이 유순했는데, 이젠 입에 욕이 붙었습니다. 저도 많이 변했습니다."

누가 이 농민들을 이리도 서럽고 애타게 말들었나? 이제라도 행정당국이 주민들과 마음을 열고 진솔한 자세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다. <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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