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음식이야기(5)] 된장

  제주음식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양념은 두말 할 필요 없이 '된장'이다. 기본적으로 제주의 모든 국물 음식가운데 생선으로 끓이는 맑은 국 종류만 빼고는 거의 대부분이 된장으로 맛을 낸다.

심지어는 행사용 국인 몸국이나 고사리 육개장도 그 기본이 되는 돼지 삶는 국물에 된장을 풀어 넣는다. 또한 나물도 된장으로 버무려 무쳐 먹는다. 그리고 제주사람들의 여름밥상에 빠질 수 없었던 냉국도 된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음식이었고 여름철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보관할 때도 된장에 박아 두면 일주일이상 보름까지도 상하지 않게 보관했다고 한다. 

  이렇게 제주사람에게 고마운 음식이었던 제주의 된장은 타 지역과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특징은 먹는 방법의 차이이다. 타 지역의 된장은 주로 끓여서 조리하는데 제주의 된장은 날된장을 그냥 먹는다.

▲ 제주사람의 밥상에는 사철 항상 날된장이 올랐다. 그냥 날된장에 쪽파나 조금 다져놓으면 그만이었다. ⓒ양용진

물론 지역별로 ‘토장’ 또는 ‘집장’이라 하여 생으로 먹는 된장이 있으나 이는 일반된장과 달리 별도로 소량씩 담가 먹었다고 하며 일반적인 된장이라 할 수는 없다. 다른 지방 사람들은 된장에 양념을 더 해 끓여서 강된장을 만들어 쌈장으로 애용하거나 국물이 자작자작할 정도의 찌개를 만들어 먹거나 일부지역에서는 된장을 넣어서 장떡이라는 전을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한결같이 가열 조리해서 먹어왔다.

그러나 제주사람들은 일 년 사계절 내내 우영밭에서 푸성귀를 뜯어다가 날된장에 쪽파 한 두 뿌리 다져넣고는 쌈장으로 애용했고 쉬자리나 어랭이를 회 쳐 먹을 때도 날된장에 식초 몇방울 섞어서 초된장을 만들어 찍어먹곤 했으며 또한 날된장을 냉수에 풀고 노각이나 데친 나물, 톳 같은 해초를 풀어 국을 만들면 즉석 냉국이 되었으니 이렇게 날된장을 사용한 예가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타 지역사람들에게  날된장을 그냥 먹는다고 말하면 군내 나는 것을 어떻게 그냥 먹느냐고 신기하다는 듯 반문하는데 제주의 된장은 신기하게도 군내가 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된장을 만드는 방법이 다르지도 않으며 특별한 콩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제주의 된장만이 날된장으로 섭취할 수 있을 만큼 냄새 없는 된장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제주만의 옹기항아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의 옹기는 타지방과 달리 유약을 거의 바르지 않았다고 표현해야 할 만큼 표면이 거칠고 얇으며 그나마 유약조차도 천연재료로 묽게 발라 굽는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의 옹기항아리는 통기성이 우수해서 내용물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고 냄새가 갇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제주 특유의 옹기 항아리와 맑은 공기가 냄새 없는 우수한 된장을 만들어 낸다는 얘기인데 그래서인지 제주지역의 옹기는 근래에 들어서 그 문화적 가치와 물리적 성질 등이 많이 연구되어지고 있고 친환경 무공해 그릇으로서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 제주옹기항아리, 유약을 바르지 않아 부분적으로 찌그러지거나 색상이 고르지 못하 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통기성이 좋아서 발효음식을 저장하는 최고의 용기다. ⓒ양용진

  또한 어떤 이는 물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한라산에서 부터 모아진 제주의 지하수는 각종 광물질로 구성된 지하 암반을 거치면서 깨끗하고 미네랄이 풍부한 물이 되어 이상적인 된장을 만들 수 있다는 지론인데 아무튼 이 모든 조건이 제주 된장의 우수성을 밑받침하는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적으로 건강식으로 인정받는 발효음식들의 공통점을 보면 유산균 등의 유익한 발효미생물을 살아있는 채로 먹을 수 있다는 공통점을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에 제주된장이야말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가열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세계적인 명품이 될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발효환경의 차이이다. 사실 타지방에서도 잘 담근 된장은 오래 묵으면서 군내가 없어진다고 하는데 보통 일반적으로 된장을 담은 지 일 년이 지나고서야 먹을 수 있을 만큼 숙성, 발효된다고 하며 정말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는 된장들은 보통 2~3년씩은 묵은 것들이라 한다. 그러나 제주의 된장은 담은 지 일 년 이내에 먹는데도 군내가 나지 않으며 심지어 육 개월만에도 시식가능하며 이는 필자가 직접 경험한 사실이다.

▲ 메주에 곰팡이 핀 모습. 제주사람들이 살던 옛 흙집에는 고초균 등 유익한 발효 미 생물이 많았고 이 균들의 활동으로 메주가 잘 띄워졌다. ⓒ양용진

결국 타지방에서 일 년 이상 숙성시킨 만큼의 품질을 제주에서는 육 개월 만에 달성 가능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결국 발효환경이 우수하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제주는 전국에서 평균 습도가 가장 높으며 겨울철에도 영하로 잘 떨어지지 않고 전체적으로 일조량도 풍부하며 여름철에도 수시로 바람이 불어서 더운 기운을 한곳에 머물지 않게 하는 기후적 특징이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이 된장 속의 발효 미생물들의 활동에 가장 적합한 조건을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에 결국 단기간에 우수한 품질의 된장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 특징은 종류의 차이이다. 타 지역에 가보면 된장도 종류가 많다. 막장, 토장, 담북장, 비지장, 집장, 지례장.... 등등 집안에 따라, 지역에 따라 독특하게 이름붙인 별도의 된장들이 있는데 대부분 일반 된장을 재 숙성 시켜서 만들거나 다른 부 재료를 더하여 단기 재 숙성시키는 된장들이다. 그러나 제주에는 오직 한 종류의 그냥 된장만이 있을 뿐 전국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청국장조차 없다. 외지에서 오신 분 가운데 몇 분이 필자에게 “된장이 그렇게 좋다고 하면서 왜 청국장은 없느냐”고 푸념 섞인 질문을 해 온 적이 있었다. 전국 어느 지역이나 유명한 청국장집들이 있는데 제주 향토음식점중에는 유독 유명한 청국장전문점이 없다는 말이다.

사실이 그렇다. 제주도는 전통적으로 청국장을 만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청국장이라는 된장은 단기 발효시킨 된장으로 일반 된장이 숙성 될 때까지 기다리며 만들어 먹었던 대체용 된장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제주 사람들은 늘 숙성된 품질 좋은 된장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된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 톨(톳)냉국, 날된장을 냉수에 풀고 톳을 조금 썰어 넣으면 냉국이다. 섬유질이 많은 해초와 발효균이 살아있는 냉국은 간단하지만 장 건강에 이로운 건강음식이다. ⓒ양용진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우수한 된장이 그동안 외지에는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것은 지방마다 각종 다양한 된장이 애용 되고 있는 상황에서 타 지역의 된장이 이동할 만한 필요성이 없었을 뿐 아니라 더구나 험한 바닷길을 헤쳐 가야하는 뱃길로는 더더욱 알려지기 힘든 여건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되어 진다. 거기다가 된장은 고추장과 달리 철저히 서민들의 양념이었기 때문에 과거 민초들의 생활을 생각해 볼 때 일부러 맛있는 된장을 찾아다니지는 못했을 것이고 또한 된장은 어느 집에서나 그 집 부엌살림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집밖으로 유출하지 않았던 전통을 생각해보면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제주 된장의 식품으로서의 가치를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왜냐하면 근래에 와서 전국적으로 재래 된장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관심의 이면에는 천연발효식품이 가지는 건강음식으로서의 기능과 친환경 로컬푸드의 이미지가 부각된 면이 많다. 그렇게 본다면 제주 된장이야 말로 전국의 동일 상품가운데 가장 우수한 명품임에 틀림없으며 또한 전통 재래 식품산업의 정통성을 유지하면서 산업화 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조건을 가지고 있음을 자각해야한다.

▲ 쌈으로 먹다가 시든 배추가 있으면 데쳐서 날된장에 조물조물 무쳐놓는다. ⓒ양용진

 
  그리고 그 이전에 된장이라는 음식의 종주국으로서 그 원천의 자존심을 지켜야한다는 책임감을 우리 스스로 가져야 한다. 된장의 원조는 분명 우리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젊은 세대들에게 질문을 하면 중국이 원조라고 말하는 이들이 상당수에 이르며 우리에게서 전수받은 일본의 미소된장이 전 세계 된장 유통량의 80%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눈 여겨 보는 사람이 없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누려왔던 우리 고유의 것들을 버리고 편리함과 합리성이라는 명분으로 외래문화를 동경하면서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어지는 된장을 거리낌 없이 선택하고 우리의 자존심마저 포기해 버린 꼴이 되었는데 아직도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더 이상 늦기 전에 우리가 가진 가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가치의 정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나가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제주의소리>

<양용진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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