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그들은 누구인가] (12) 조총련과 교육

해방 후 재일동포 최초의 민족 단체, 조련(朝連, 재일본조선인연맹 在日本朝鮮人連盟)은, 1949년9월8일 일본정부및 GHQ로 부터 해산명령, 재산도 몰수되고 만다. 또 민족학교도 폐교명령을 받는다.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在日本朝鮮人總聯合會)은 1955년5월에 결성된다. 조련이 해산된 1949년9월부터 조총련이 결성된 1955년5월까지 약6년간, 북한계 단체들이 결성이 되고 또 해산이 되어가며, 조총련이 결성된다.(한국계 민단은 1946년10월 결성후 계속 됨) 1949년부터 1955년 조총련이 결성되는 과정에서, 조방위가 있었고, 민전이 있었다.

한반도에서는 6·25사변이 일어난다. 1950년 조방위(祖防委, 조국방위위원회 祖國防衛委員會)가 결성된다. 북한을 위한 단체이다. 일본공산당 민대(民對, 民族對策部) 중심이 되어 결성된 단체이며, 조국방위투쟁이란 이름하의 행동대적인 단체이다. 6·25 전쟁중의 미국에 협력하는 일본을 비판하고, 일본에서 생산하는 병기 생산중지, 한반도로 이동을 방해하는 공작을 한다. 특히 이들 전쟁과 관련된 공장 근로자들에게 방해 공작을 행하며, 공장 경영자들에게도 방해공작을 펴,일본 당국으로 부터 검거, 투옥자가 나오게 된다.

▲ 조총련 중앙본부 ⓒ제주의소리

1951년1월에 민전(民戰,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 在日朝鮮統一民主戰線)이 결성된다. 민전 역시 일본공산당 민대(民對, 民族對策部)의 지도하에, 민족운동을 전국적 또 통일적으로 행할 목적으로 결성된다. 민전은 합법적인 활동, 조방위는 비합법적인 활동을 하기 위한 단체이다. 이 시기도 6·25전쟁중이었기에, 일본은 미국및 미군에 군사물자및 병기 생산기지로서 또 병참기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생산되고 경유하는 병기가 한반도로 운반되여 미군에 공급되, 북한및 북한군을 공격하는 것이다. 북한계 단체들은 이런 모습들이란 봐 넘길수가 없는 것이다.

이 시기에 일으킨 사건이 수이다(吹田)사건과 히라가다(枚方)사건이다. 수이다(吹田)와 히라가다(枚方)는, 오사카부(大阪府)에 있는 수이다시(吹田市)와 히라가다시(枚方市)라는 지명 이름이다. 오사까시(大阪市)의 북쪽에 인접하고 있는 위성 시(市) 이다. 수이다시(吹田市)는 지금도 오사카 대학(大阪大學)이 있는 곳이며 또 이타미공항(伊丹空港)과 일본철도의 수이다 화물창이 있는, 병참기지의 요지이다. 히라가다시(枚方市)는 공장지대이다.

사건은 같은 날, 1952년 6월 24일밤∼25일새벽에 걸쳐 일어났다. 수이다 사건은 6월24일밤, 오사카대학 북캠퍼스 그라운드와 그 주변에 집결한 민전계 재일동포, 일본 학생, 노동자들이 「6·25, 2주년 기념, 이타미 기지 분쇄 반전 평화 독립의 모임」을 가지며, "미 제국주의가 침략을 위해 한국으로 수송되는 전쟁물자가 수이다(吹田) 화물창 군용열차로 매일 나가고 있다, 이것을 때려 부수자" 라는 구호 아래 행진을 계속해, 또다른 철도회사 한큐(阪急)전철에서 역장과 타협, 밤중 오전3시에 임시열차까지 내놓게 하여 화물창으로 향하지만, 화물창의 화물열차는 이미 피신한 후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과 밀고 밀리는 유혈사태가 발생된 사건을 말한다.

히라가다(枚方)사건은 6월24일날밤, 민전(특히 조방위)계 재일동포, 일본학생, 노동자들이 「6·25 2주년 기념 행사」집회를 행한다. 이곳에 고마쓰(小松)제작소 라는 공장이 있으나, 일제때는 병기공장이 이때에 일본정부에서 민간으로 불하, 한반도로 나가는 군수물자를 생산한다고 하였다. 이 공장에 침입, 시설 일부를 파괴한 사건을 말한다.

조총련의 전 조직 민전(民戰)은 1955년 6차전국대회를 개최하여, 민전을 해산하고 조총련을 결성하는 의결을 거쳐, 드디어 전후 일본에서 민단과 쌍벽을 이루는 조총련이 결성된다. 민전의 처음 강령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사수하고, 재일동포 권익옹호, 반미제국주의 등등이었다. 그러나 곧 강령에서 '조선민주주의공화국 사수' 라는 대목은 사라지고 만다.(후에 재등장)

이미 해산된 조련이나 민선의 중심인물들은 종전이전부터 공산주의 활동을 해오던 공산주의자들 이었다. 해방 이전 전쟁때는 천황제가 시퍼렇게 살아있어서 공산주의자들을 탄압 투옥 시킨다. 식민지때 일본에 있었던 우리 동포들에게도 공산주의자가 상당수 있었다. 조련의 결성에 중심적인 활동을 한 김천해도 일본공산당의 거물이었다. 조총련이전의 조직들은, 일본공산당은 재일동포를 일본국내의 소수민족으로 규정하여 일본공산당 민족대책부 지도하에 있는 조직들인 것이다. 일본공산당 민족대책부에는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동포들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 조총련 조선학교를 소재로 한 영화 <우리학교> 중에서. ⓒ제주의소리

조총련이 결성되면서 일본공산당에서 탈피, 조선노동당(북한)의 지도를 받게 된다. 조총련이 결성되여, 일본공산당에서 조선노동당으로 노선이 바뀌었으면, 당연히 권력투쟁이 있게된다. 여기에 주류파로서 등장하는 인물이 한덕수(韓德銖,1907년∼2001년)이다.

북한에 김일성이 있다면 조총련에는 한덕수가 있다, 라고 말할수 있을 정도로 조총련 결성때부터 그가 사망할때까지 조총련 의장을 한다. 경상북도 출생인 그는 해방전에는 민족활동으로 투옥되기까지 한다. 조총련이 결성되면서 충실한 김일성 부하로서, 평양으로 부터 사랑을 받게 된다. 북한으로 부터 '영웅' 칭호를 받으며,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또 김일성이 북한에서 사망했을 때는 그는 북한에 있으면서 서열4위의 고위에 있을 정도로, 북한의 고위직 정치가로서까지 군림하게 된다.

본인과 같은 생각하에 같은 행동을 하지 않거나, 본인에게 충성을 하지 않는 동지는 처참하게 숙청을 하거나, 조직을 떠나게 만든다. 차라리 조직에서 이탈하는 것이 좋다. 북한이 아닌 일본에서의 숙청이란, 북한에 가는 배를 태워 버리는 것이다. 북한에 갔을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북한 사람과 같은 숙청의 길이 있을 뿐이었다.

조총련 내부는 경찰조직이 있으며, 조직 내부에서 불이익한 행동을 하게 되면 가차없이 경찰조직이 관여해서 폭력과 린치가 있게되며, 더 무서운 것은 북한에 가는 배를 태워 버리는 것이다. 북한에 가기만 하면 조용히 아주 잘 해결되며, 일본정부에는 본인의 의사로서로 북한에 갔고, 북한이 좋아서 오지 않는 것이다, 라고 말해버리면 더 찾을 길이 없다. 당연히 경찰조직은 불법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조총련이 북한의 충실한 일본 앞잡이라는 것은 충분히 설명이 되었다. 북한 경제사정이 지금 나쁘다는 것은 말 할 필요가 없다. 충실히 북한에 돈을 보내기 위해서 지금 안달이다. 이런 조총련도 우리 민족에게는 좋은 일도 했다. 한국에 좋은 일을 했다기 보다는 민족에게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이다. 일본이란 외국에 살면서도 우리 한민족으로서 민족정신을 잃지않고 살게 하는데는 한 몫을 한 것이다.

조총련은 철저한 조직력이다. 북한의 명령이 조총련으로 하달되면, 철저한 조직력으로 북한과 같은 조직행동을 한다. 이런 철저한 조직력은 조선학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조총련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도 민족교육이다. 조총련에 소속된 사람들을 보면 민단 사람들보다 더 철저한 민족정신을 가지고 오늘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한국의 이익보다는 북한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민족정신이라서 조금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 민족정신, 역시 교육의 산물이다.

 

▲ 신재경 교수 ⓒ 제주의소리
 필자 신재경 교수는 1955년 제주시에서 출생했다. 제주북초등학교, 제주제일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 한양공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한일방직 인천공장에서 5년간 엔지니어를 한 후 1985년 일본 국비장학생으로 渡日해 龍谷大學대학원에서 석사·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京都經濟短期大學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京都創成大學 經營情報學部 교수로 있다. 전공은 경영정보론이며, 오사까 쯔루하시(鶴橋)에 산다. 오사카 제주도연구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기도 한 신 교수는 재일동포, 그 중에서도 재일제주인들의 삶에 대해 조사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재일동포들의 '밀항'을 밀도 있게 조사하면서 <제주의소리>에 '어떤 밀항이야기'를 연재해 왔다. 또 일본 프로야구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발휘 '신재경의 일본야구'를 써 왔다.    jejudo@nif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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