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풍력발전단지, 첫 단추를 잘 꿰야

  제주도가 한국전력기술과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14일 발표했다. 제주도와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과 발전사, 대기업 등이 출자하는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해 제주도는 인허가 과정을 지원하고, 한국전력기술은 해상풍력발전단지의 설계, 기자재 구매, 설치 등 모든 과정을 주관한다. 제주도는 17.5%의 지분을 확보해 연간 발전판매수익 649억원 가운데 114억원의 수익을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주도가 해상풍력발전에 관심을 갖고 이 사업에 참여하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사업 전개 방식은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전력기술의 제안 대로 사업의 주도권을 제주도가 행사하지 못하는 구조로는 해상풍력발전이 갖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수익 면에서도 전체 발전판매수익 가운데 80% 이상인 535억원은 당연히 출자한 공․사대기업들이 나눠 갖는다. 이 업무협약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연 수익 650억원짜리 ‘제2의 삼다수’를 대기업에 넘겨버리는 꼴이 된다.

# 돈 한 푼 안들이고 매년 114억원을 버는 솔깃한 제안?

 한전기술의 제안서에 따르면 해상풍력발전단지는 3메가와트 발전기 34기를 설치해 조성하는 것으로 총 사업비는 4500억원이다. 사업비의 70%는 차입하고 30%인 1350억원은 제주도와 공·사대기업들이 출자하는 것으로 돼 있다. 제주도는 출자금 가운데 17.5%인 236억원을 정부 지원금을 받아 출자한다는 것이다. 결국 도는 재정적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고 인허가 과정만 책임지면 된다고 제안한 것이다.

 얼핏 보면 솔깃할 만하다. 발전단지 설계와 시행은 한국전력기술이 다 맡게 되니 제주도는 돈도 한 푼 들이지 않고 매년 114억원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제안이니 말이다. 혹 도가 직접 이 사업을 벌일 경우 총 사업비 4500억원이나 되는 사업을 제주도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지 걱정했을 법도 하다.

 그러나 풍력발전이 안정적으로 고수익을 보장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차입이 가능하다. 한전기술의 제안에도 사업비의 70%를 대출받는 것으로 돼 있는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하다못해 재무적 투자자들을 불러 모을 수도 있다. 돈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사업이라는 말이다.

 현재 도내에서는 남부‧중부‧서부발전, 두산중공업 유니슨 한신에너지 남영비비안 등 8개 공‧사기업들이 450메가와트 규모의 육상과 해상 풍력발전단지 건설을 신청해 놓고 있다. 제주도가 2020년까지 풍력발전으로 500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한다는 목표에 거의 육박하는 규모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풍력발전의 미래를 잘 알고 있는 기업들이 얼마나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 '황금알을 낳는 거위' 풍력발전-제주바람은 '공공자원'...누가 할 것인가?
 
 제주도는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지역별, 월별 풍력과 풍향 등을 조사해 지난 98년 처음으로 행원에 풍력단지를 조성했다. 이를 시작으로 현재 수산, 삼달, 한경 풍력단지가 조성돼 모두 89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전체 도내 전력 생산의 10% 정도를 풍력발전이 차지하고 있다.
 
 구좌읍 월정리 앞바다에서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해상풍력에 대한 실증용으로 해상풍력발전기 설치 공사가 진행중이다. 해상풍력발전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육상풍력보다 에너지 효율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육상의 경우 지형지물 등의 방해를 받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이 25%에 그치는 반면, 해상은 최고 40%에 이른다. 바람의 ‘질’이 좋다는 뜻이다.

 또한 육상에 풍력발전기를 세울 경우 경관을 해칠 우려도 크고, 소음으로 인한 주민생활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토지 구입비용도 만만치 않다. 중산간의 초지 등 육상 풍력기에서 지난 번 행원에서 발생한 발전기 화재 붕괴 같은 사고가 날 경우 자칫 산불로 번질 수도 있고 주변 시설이나 인명 피해도 우려될 수 있다. 해상풍력발전의 경우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롭기도 하다. 

 이런 강점 때문에 유럽에서는 9개국이 서로 연결되는 2000메가와트 규모의 38개 해상풍력단지를 발틱해와 북해에 만들어놓았다. 유럽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 해상풍력발전 시장은 2010년 매출이 30억유로(한국돈 4조6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앞으로 12년 동안 연간 평균 28%의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전남도가 호남광역경제권 선도 산업지원단의 지원에 힘입어 해상풍력 산업화 기반을 구축하고 풍력부품 소재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이런 사업을 누가 시행하느냐 하는 것이다. 종전처럼 외부의 공‧사기업이 주도하게 되면 제주도와 지역주민들에게 환원되는 수익은 10%도 안 된다. 제주도민 모두의 자산인 바람을 이용한 에너지개발은 공공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도가 자체예산과 도민주 공모를 통해 이 사업을 주도함으로써 재정자립도도 높이고 수익이 주민들에게도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이미 제주개발공사를 설립해 생산하는 삼다수가 도의 가장 큰 수입원이 되고 있고, 올해 도 예산에는 도 소유 풍력단지인 행원과 가시리의 전력 판매수익 26억원을 계상하고 있다. 삼다수 수익 1백억원 다음으로 큰 규모의 도 자체 수입인 것이다.

# 제주도 이미 매년 26억 풍력발전 수익...제주에너지공사가 해상풍력발전 주도해야

 방법은 이렇다. 제주도가 초기 자본을 투자해 가칭 ‘제주친환경에너지공사’를 설립하고 발전단지 건설을 추진하는 것이다. 도민주를 공모해 본격적인 사업을 펼치기 위한 자본 조달 방식을 택할 수 있다. 막대한 사업비는 대출도 가능하다. 대출이자의 대여섯배에 이르는 수익이 보장되는 것이니 이자지급도 문제가 아니다. 해상풍력발전기 설치비용도 한국전력기술은 3메가와트 풍력발전기 1기당 설치비용을 135억원으로 계상하고 있으나 에너지공사가 시행자가 될 경우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아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 아파트 건설 시행사가 40%의 마진을 챙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거기다 대규모로 설치할 경우 단가는 더 줄어든다.

 공사 설립을 통한 제주도의 풍력사업 주도로 얻는 이익은 엄청나다. 발전판매수익과 탄소배출권 판매수익으로 재정자립도를 높일 수 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주의 기업들이 살아나고, 고소득 일자리 수천개가 만들어진다. 제주 기업에 의한 엔지니어링 수출이 이루어지고, 산업구조가 전면적으로 개편된다. 제주의 미래가 바뀌는 새로운 성장 동력인 것이다. 한국전력기술이 이 사업을 주도할 경우 우리에게 이런 기회는 다가오기 어렵다.

 스마트 그리드 사업이 제주에서 크게 환영받고 있지만 모든 분야를 대기업들이 독차지하고 있어 제주 기업은 참여할 공간이 없다. 몇 개 제주 기업이 컨소시엄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전력망은 한국전력이, 통신망은 SK텔레콤과 KT가, 전기자동차 충전소는 SK에너지, GS칼텍스 등 정유사가, 스마트 미터와 같은 주요 소재부품과 건설은 LG, 삼성,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우리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은 그렇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해상풍력발전기 건설 기술 수준은 수중 타워를 세우고, 여기에 발전기와 로터허브(rotorhub, 날개)를 조립하는 수준이어서 제주의 기업들이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 도내 건설·토목기업들이 육지 대기업들의 하청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게 된다. 풍력발전은 설치로 끝나는 게 아니다. 관리·유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수익 규모도 달라진다. 도내 건설기업들이 설치․관리․유지에 참여함으로써 첨단 에너지 기업으로 전환하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엔지니어링 수출도 가능해져 제주 경제와 일자리 재창출의 선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또한 대규모 해상풍력발전단지가 조성될 경우 풍력발전 연관 산업도 제주에 자리잡을 수 있게 돼 수천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풍력발전은 대형 세트산업이다. 발전기와 로터허브, 타워 등에 소요되는 수백가지의 주요 부품 생산업체와 함께 풍력발전기를 해상에 설치하는 데 필요한 이동용 특수 바지선을 제작하는 조선업체까지 필요하다. 이들 업체에는 제주대학교의 풍력대학원을 비롯한 도내 각급 학교에서 양성된 전문인력들이 취업할 수 있다. 산업구조상 3%에도 미치지 못하는 제조업 비중이 자연히 높아져 도내 산업구조도 바꿀 수 있다. 도내 농공단지들을 장차 각종 제조업체들이 들어설 산업지원 배후단지로 활용할 경우 지역균형 발전의 효과도 얻게 된다. 

# 제주풍력발전, 단순 순익떠난 제주미래 비전...17.5% vs 신성장동력 

 에너지공사 산하에 '신재생에너지실증센터'를 설치해 풍력만이 아니라 재생에너지와 신에너지도 함께 연구․개발하고, 제주대학교의 풍력대학원을 신재생에너지대학원으로 확장해 전문인력 양성과 연계할 경우 제주는 친환경에너지 산업의 메카가 될 수 있다. 대규모 단지 건설에 필요한 기자재를 수주하는 조건으로 선진기술을 갖추고 있는 유럽 전문기업들의 제조공장을 제주에 유치해 기술 확보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이런 점들 때문에 해상풍력발전사업을 제주도가 주도한다는 것은 발전판매수익 수백억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풍력발전 시장(2008년 기준 518억달러)은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457억달러) 보다 규모가 더 크다. 이런 거대 산업이 제주에 유치되는 것을 상상해보라. 제주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 고희범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바람의 질이 국내 최고인 데다 이미 국내에서 가장 먼저 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해 ‘풍력발전 1번지’로 불리는 제주도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포기한 채 편안하게 부스러기나 얻어먹으려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의회도 이 협약과 관련한 심의과정에서 애초 15%로 제시된 제주도의 지분이 너무 적다는 문제제기를 하기는 했지만 심도있는 검토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협약이 체결된 것도 문제다. 첫 단추를 제대로 꿰기 위해 제주도가 한국전력기술과 체결한 업무협약은 신중하게 재고되어야 한다. /고희범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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