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28) 음식 먹을 때는 개도 내쫓지 않는다

* 것 : 밥, 음식 따위의 제주방언
(예: 먹을 것이 없으니 초근목피를 다 먹던 적빈(赤貧)의 시절이 있었지.)
* 다울리다 : 내쫓다, 쫓아내다. 구박하다의 제주방언.
(예: 집 어귀에 앉아 우는 까마귀를 후여 하고 다울리다.)

음식 먹을 때는 비록 집에 기르는 개라 할지라도 쫓아내지 않는다, 구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윤회의 길에 나섰다가 전생에 웬 업보를 짊어져 개라는 축생(畜生)으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되, 개라고 마냥 천대할 게 아니다. 

못 사는 집을 생각해 본다. 찌그러진 양은그릇에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를 먹을 ‘것’이라고 주면서 쫓기까지 한 대서야 말이 되는가. 더욱이 개는 만날 꼬리를 흔들며 주인을 따르는 영물(靈物)의 짐승이다. 각별히 대접해 왔지 않나. 내쫓다니 그런 푸대접이 없다.
  
‘비치락으론 개도 안 때린다“는 말과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막대기라면 모를까 빗자루로는 개도 때리지 않는다 함이다. 하물며 사람을 빗자루로 때렸다면 개 취급도 하지 않았다는 얘기 아닌가. 사람 사는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럴싸한 비유다. 밥 먹는 개를 내쫓는 사람, 곧 ‘갑질’의 비유다. 유교의 나라, 인륜도덕이 반듯한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이렇게 피폐해진 걸까. 땅콩 회항에 각종 업소에서 일어나는 (손님들의) 종업원 학대…. 어디 갑질이 한두 번이고 한두 가지인가. 여론의 뭇매에다 맹비난으로 나라가 벌컥 뒤집혔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 유야무야다. 남의 말 석 달 더 안 간다는 말이 백 번 맞다.
 
기억에서 도시 지워지지 않는다. 현대가 3세,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이 운전기사에게 폭행·폭언을 일삼은 사실이 운전기사들의 증언으로 백일하에 드러났었다. 기상천외의 ‘수행기사 매뉴얼’ (장장 A4 140장)을 다 만들었단다. 지키를 강요했다는 것.

‘가자’는 문자가 뜨면 번개같이 뛰어가 출발 30분 전부터 대기하고, 신호나 차선을 무시하고 ‘빨리 가라면 가라’ 이 지경이니, 참 기가 차다. 현대판 노예 문서에 다름 아니다.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갑질의 전형. 

상습적인 폭언·폭행을 자행해 온 데다 이를테면 미동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동차를 출발하고 정지할 것을 강요했음은 물론, 그렇지 않으면 욕설이 쏟아졌다는 것. 심지어 사이드 미러를 접고 운전하게까지 했다지 않은가.

이런 정도에 이르렀다.

이들 재벌 3~4세는 시쳇말로 대표적 ‘금수저’다. 태어나면서 부모는 선택할 수 없는 일. 그들은 처음부터 부를 갖고 출발했으므로 흙수저의 비애를 알 턱이 없다.
  
금전적 수혜, 핵심은 돈이다. 그게 갑과 을을 하늘과 땅 차이이라는 수직적 거리로 벌려 놓는 것이다. ‘을’ 위에 올라타 앉아 노닥거리는 게 갑질이다. 그야말로 가관 아닌가.
  
별다른 제약 없이 기업의 경영권 승계라는 특권으로 이어지는 한, 갑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잖은가. 세상을 살면서 좌절도 겪고 인생의 쓴맛 단맛을 봐야 겸손도 배우고 남 위할 줄도 아는 법인데, 이들은 아니다. 돈을 물 쓰듯 펑펑 쓰는데다 회사 대표이사는 차려 놓은 밥상이니, 인성이 교정될 틈이 없었다.

세상을 쉽게 보고, 결국 근로자를 자기 소유물쯤으로 인식하는 행태가 몸에 밴 그들이다. 갑질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젊은 혈기에 자제력이 부족하고 미숙했습니다.” 당토 않는 사과다. 순전히 거짓부리다.
  
지난번 종근당 회장의 사과 또한 면피용으로 오만의 극치였다. 언론에 나와 90도로 허리를 굽히는 게 사과를 위한 의전(?)이 되고 새로운 풍속으로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닌지. 지켜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과하는 사람이 그나마 마지막으로 가져야 할 덕목은 진정성이다. 겉돈다. 표정을 보면 다 아는 일이다.

한 회사 상무가 부하직원을 각목으로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거래처 말만 듣고 자기에게 대들었다는 것이다. TV를 보니, 이건 사람을 개 패듯 한다. 각목을 휘둘러 분질러지게 등과 머리를 때렸다. 동료가 기진해 쓰러진 마당에 사람이 벽에 부딪혔다고 거짓 신고했다 사실대로 밝혔다니 어처구니없다. 피해자가 하반신 마비라니 그냥 일인가. 갑질이 무섭다. 정글의 포식자보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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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베테랑> 속 재벌 3세로 등장하는 조태호. 좌충우돌, 막무가내인 그의 도를 넘은
'갑질' 행태는 현실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출처=네이버 영화. ⓒ제주의소리

갑질이 끊이지 않는다. 또 성공신화 ‘총각네 야채가게’ 이영석 대표가 갑질의 극한을 보여 줬다. 

행상으로 시작해 연 매출 400억대 프랜차이즈 업체를 키워낸 성공신화로 유명한 그. 소위 가맹주 교육 시, “개 xx야, 너는 부모 될 자격도 없는 xx야.” 욕설에 따귀를 때렸단다. 또 이어진다. “너, 똥개야, 진돗개야?” “진돗갭니다.” 이 질문과 대답이 두어 번 반복으로 이어지고 그때마다 따귀를 때리고…. 이거야, 참 상상 초월이다.

돈을 주무르게 되면서 이렇게 표변한 것. 이게 어디 사람의 짓인가. 보도가 나가자,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오만함이 불렀던 결과”라며 자신의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그 사과란 게 발 등의 불이나 끄고 보자는 수작이 아니고 무언가. 기막히고 한심한 일이라 한숨만 나온다. 

갑질은 가진 자의 횡포다. 먹고 살려는 한낱 짐승인 개도 함부로 내쫓지 않거늘 하물며 사람임에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당장에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니 고개 숙일 수밖에 없는 힘없는 이 사회의 약자들.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제발 갑질 없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사람은 인간이 추구하려는 어떤 가치보다 소중하다. 목청껏 외치고 싶다. ‘사람이 먼저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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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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