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02) 조정환·전선자·김진호, 《플럭서스 예술혁명, 갈무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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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환·전선자·김진호, 《플럭서스 예술혁명》, 갈무리, 2011. 출처=알라딘 홈페이지.

1) 부르조아적 질병의 세계, 즉 ‘지식인적인’ 전문적이고 상업화된 문화를 제거하라. 죽은 예술, 모방, 인공예술, 충상예술, 환상주의 예술, 수학예술의 세계를 제거하라!

2) 예술에서 혁명적 흐름과 조류를 촉진하라. 살아있는 예술, 반-예술을 촉진하라. 비평가, 딜레땅트들, 전문가들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있는 비예술실재(non art reality)를 촉진하라.

3)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혁명가들의 핵심집단을 통일된 전선과 행동으로 융합하라.
1963년에 마키우나스가 기초한 플럭서스 선언문은 이와 같이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비판, 민중과 결합하려는 혁명적 의지, 혁명가들과 연대하는 조직 대항을 공언했다. '플럭서스(Fluxus)'는 1960년대 유럽사회를 뒤흔든 혁명적인 예술운동이다. 50여년 전의 선언이지만 그 메시지는 동시대의 예술현상에 대입해도 매우 유의미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 책, 《플럭서스 예술혁명》은 작곡가 존 케이지와 사회조형을 주창한 요제프 보이스,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 등 3인의 플럭서스 예술가를 통하여 20세기 중반 전후 유럽의 전환을 야기했던 플럭서스의 역사성과 그것의 동시대성을 재조명한다. 

이 책의 공동저자들은 미술계의 이론가나 비평가들이 아니다. 그들은 정치철학과 미학, 음악학 전문가들이다. 세기가 바뀌어 예술 패러다임도 수차례 전환했지만, 한국의 예술계는 여전히 근대의 초입에 머물러 있거나 근대를 생략한 근대 이후에서 방황하고 있다. 노동해방 문학의 전사 조정환은 자신이 꿈꿨던 해방의 서사를 21세기 버전의 철학과 미학으로 재구성하는 이론적 실천으로 되살리고 있다. 그 활동의 공간으로 꾸리고 있는 연구자 모임이 '다중지성의 정원'이다. 조정환과 그의 동료 연구자 전선자, 김진호가 함께 쓴 이 책, 《플럭서스 예술혁명》은 ‘예술체험과 예술창조의 새로운 가능조건에 대한 미학적 탐구’이다. 

“상품의 예술화와 생산의 미학화가 예술의 금융화와 결합되는 것은 이러한 조건하에서다. 미술품의 구매나 판매는 미술 애호가나 미술관보다 미술펀드나 옥션에 의해 담당된다.…이로서 예술작품들과 예술행위는 지대격차를 노리는 금융자본의 투기대상으로 자리잡는다. 이것은 예술유통의 그융화의 현상형태들 중의 하나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예술은 산업과의 유착 속에서 복잡한 메커니즘을 통해 금융자본과 광범위하게 연계되어 있다.”
- 《플럭서스 예술혁명》 중에서.
동시대의 예술체제를 자본주의 경제체제 관점에서 위와 같이 분석하는 조정환은 이 책은 서장, ‘플럭서스와 우리’에서 플럭서스 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그들의 전략, 성과와 한계 등을 정리한다. 그는 자본주의 생산체제에서 생산과정 자체의 미학화에 주목한다. 지상에 거하던 예술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경쟁체제에 깊숙이 개입하여 소비자들에게 예술과 미학에 대한 욕망을 대리충족해주는 기제로서 상품디자인의 모습으로 이 땅에 현현한다. 생산과 소비의 공업모델에서 창작과 수용의 예술모델로 전환한 동시대 사회구조 전반은 예술의 상품화 단계를 넘어 예술의 금융화를 촉진하고 있다. 

따라서 예술은 산업과 일치하고 나아가 삶과 통합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제 예술은 근대주의가 정초한 예술이념과 달리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온전히 귀속했다. 조정환이 플럭서스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 ‘삶과 예술의 통일’이라는 그들의 슬로건과 동시대의 예술현상을 비교·분석하기 위함이다. 플럭서스는 물질형식의 예술이 대상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투쟁하며 예술의 소외에 저항했다. 그들은 자본주의 상품체제에 포섭되지 않기 위한 전략으로 비물질예술의 해프닝을 벌였다. 

조정환은 예술의 지위와 경계를 넘어서기, 예술가 지위와 소유로부터의 이탈, 비물질 예술의 입증 등의 성과를 남긴 플럭서스가 남긴 다음의 한계를 지적한다. 

1) 전문적 예술가로 남아있느 상태에서 예술가와 제도예술을 비판했으며, 
2) 그들의 주창한 산예술과 반예술을 다중의 삶 속에서 구현하지 못했고, 
3) 그들의 참여는 그들의 프로그램 속에서만 존재하였으며, 
4) 다중의 감각, 사유, 행위, 소통은 이들의 예술로 들어갈 수 없었고, 
5) 전문예술을 넘어서려 하면서도 다중예술과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것을 미학화하는 데 그쳤으며, 
6) 삶과 예술의 통일이 아니라 산업과 예술의 통일로 기울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의 혁명은 예술 안에서의 혁명이었지만 그들의 남긴 숙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서양음악의 견고한 구성주의 아성을 허물고 새로운 소리를 창조한 존 케이지는 문학과 미술 중심의 현대예술 운동에 전혀 다른 방식의 새로운 예술 에너지를 불어넣어주었다. ‘비구성주의 작곡가 존 케이지’를 정리한 김진호는 작곡과 연주에서의 우연성을 새로운 예술 창작의 방법론으로 도입한 케이지를 근대를 넘어선 비구성주의 작곡가로 명명한다. 케이지의 음악은 머스 커닝햄의 몸짓과 만났으며, 백남준의 해프닝과 비디오아트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김진호의 다음과 같은 갈무리 언급은 그의 위치를 새삼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케이지는 파괴자나 절연자가 아니라 보완자라는 것이다. 케이지의 역할은 플럭서스 예술혁명이, 찻잔 속의 태풍과도 같이, 20세기 자본주의 예술체제 내의 혁명이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전선자는 ‘플럭서스와 요제프 보이스’에서 플럭서스 운동의 핵심 보이스를 조명한다. 보이스는 사회조형(social plastik) 개념을 제시하면서 예술의 역할이 예술계 내부의 게임언어가 아니라 사회의 내용과 형식을 재구조화하는 적극적인 사회적 실천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플럭서스 운동의 핵심에 위치하면서 수많은 공연과 퍼포먼스를 벌였다. 뒤셀도르프미술대학에 몸담고 있던 그는 미술대학의 조소입체 영역에 머물지 않고 물질형식의 예술을 넘어서는 비물질예술을 실천했다. 1960년대 후반 '68혁명'과 마주한 그는 당시의 청년 학생들과 조우하며 동시대적와 호흡하고자 했다. 대학에서 쫓겨나 자유대학을 만들고 녹색당 창당에 참여하는 등 사회예술의 실천가로 살아간 그는 플럭서스 예술혁명 정신을 자신의 삶 속에 담아 실천한 플럭서스맨이다.

조정환은 ‘백남준의 예술실천과 미학혁신’에서 그의 예술이 얼마나 실천적이었으며, 그 배경에 혁신적인 미학사상이 있었다는 점을 밝힌다. 그의 예술과 미학은 예술장 내에서의 혁신에 그치지 않고 20세기 패러다임 자체를 뒤흔든 예술혁명을 결과했다. 10대 시절의 그는 식민지 조선의 학생으로서 마르크스를 접했으며, 일본 유학시절에 동경대에서 미학을 전공한 엘리트였고, 유럽으로 건너가 플럭서스를 만나 예술혁명에 뛰어들었다. 68혁명의 태풍 속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텔레비전을 예술로 끌어들이는 혁신이었다. 1984년의 인공위성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하여 그는 미디어를 통하여 시공간을 초월하는 전지구적 소통을 일궜으니, 20세기의 예술가들 가운데 백남준만큼 예술의 장 안팎에서 혁신을 실천한 이도 드물 것이다. 

플럭서스 예술혁명이 예술과 사회를 혁명하지는 못했지만 예술과 사회에 여전히 혁명적 사유와 실천이 유효하다는 점을 존 케이지, 요제프 보이스와 더불어 백남준의 예술이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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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관장
현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미술평론가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전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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