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a.png
[데스크 칼럼] ‘비례대표 축소’ 무산 이후 책임 회피 가관...'차선책' 위해 다시 머리 맞대야 

단언컨대, 제주도의원 선거구 획정 논란은 제주도와 도의회,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의 무책임·무능이 빚은 참사다. 제주도는 선거구획정위원회의 권고안이 나온 후 5개월을 흘려보냈다. 국회의원들은 시대의 흐름과 당내 정책기조 조차 간과했다. 도의회는 ‘당사자’라는 이유로 사실상 팔짱을 꼈다.

선거구획정위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선거구획정위는 처음부터 29개 선거구 재획정 방안을 논의에서 배제했다. 고심의 흔적은 엿보이지만, 손쉽게 가려고만 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결국은 돌고돌아 스스로 규정한 ‘최악의 상황’과 맞닥뜨리게 됐다.  

‘비례대표 축소’ 시도가 무산된 뒤의 태도는 더 가관이다. 폭탄을 돌리듯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제주도는 5개월을 허송세월 해놓고 이제와서 시간이 촉박하다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댔다. 국회의원들은 현실적으로 의원입법은 힘드니 정부입법으로 하든지 제주도가 알아서 하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입법절차를 감안하면 정부입법은 ‘현실적으로’ 더 어렵다는 점을 모를리 없을 텐데, 무책임의 극치를 보는 것 같다. 

도의회는 이른바 ‘3자 합의’가 밀실야합 비판에 직면하자 뒤늦게 “회의 참여만 한 것”이라고 슬그머니 발을 뺐다.  

당사자여서 운신의 폭이 좁았다는 말은 변명에 가깝다. 과거 우리는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에는 득달같이 달려드는 의원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3자’ 모두 하나같이 무기력증을 보이고 있다.  

무릇 정치인의 생명은 정치력에 달려있다. 애당초 쉬운 문제라면 정치력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정교한 논리와 끈질긴 설득으로 상황을 돌려놓는게 정치인의 역할이다.  

‘도의원 정수 2명 증원’을 추진한다고 했을 때-이게 최선인지는 차치하더라도-사실 여건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우선 두 번의 지방선거를 치르는 동안 제주도 인구는 10만명 증가했다. 경기도와 세종특별시도 내년 지방선거에서 의원 정수를 늘리려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적어도 제주 만큼은 자치특례 확대에 매우 우호적이다. 

그런데도 ‘3자’는 최악의 수를 두고 말았다. 오영훈 의원이 고백했듯이, 더불어민주당 내에서조차 비례대표 축소 발의를 위한 원군(援軍)을 얻는데 실패했으니 비례대표 축소가 뭘 의미하는지는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랐을 뿐이라는 말도 책임 회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정치 지도자들의 철학과 비전은 실종됐다. 비례대표 축소안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은, 그동안 일부 의원들이 보여준 실망스런 행태에 대한 생리적인 반응은 아닌지 곱씹어봐야 한다.    

정녕 29개 선거구 재획정 말고는 대안이 없나. 신관홍 도의회 의장도 언급했듯이, 도민갈등을 어떻게 감당하고 수습하려는지 걱정된다. 그때도 의원들은 ‘당사자’여서 가만히 있을지 궁금하다. 

최근 한 정당은 ‘도지사·국회의원·도의회 의장+원내 5당 도당위원장 연석회의’를 제안했다. 또다른 정당이 호응하고 나섰다. 어떤 형태가 됐든, 다시금 머리를 맞대면 차선책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문제는 의지다. 원희룡 지사가 멍석을 깔면 된다. 국회의원들은 더 이상 무능함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도의회도 팔짱을 풀 때가 됐다. 이에 도내 정치권이 화답하고  난 이후에 선거구 재획정 논의를 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편집국장>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