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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를 대표하는 사진작가 서재철 씨의 작업실에 최근 화재가 발생해 50년간 서 씨가 모아온 사진 자료들이 소실됐다. 11일 불타버린 작업실을 살펴보는 서 씨의 모습. ⓒ제주의소리

[현장] 제주 대표 사진작가 서재철 작업실 안타까운 화재 “제주인 삶 담은 흑백사진 소실 허망”

“1960년대부터 찍어온 제주의 흑백사진들...이제는 다시 찍고 싶어도 못하는데, 너무 허망하다.”

제주의 자연, 문화를 50년 넘게 카메라로 담아온 사진작가 서재철(72, 자연사랑미술관장)씨의 작업실에 최근 화마가 덮쳤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작가의 오랜 작업물 상당수가 잿더미로 변해버려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마을 안쪽, 작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나타나는 자연사랑미술관. 한때 아이들이 뛰놀았을 운동장을 지나 미술관 건물에 다가가니 옅지만 매캐한 냄새가 바람 속에 실려 왔다. 화마가 덮친지 보름 가까이 지났지만 바람조차 시름에 잠겼다. 

지난 11일 서 씨를 만나러 화재 현장을 찾아가봤다. 미술관으로 사용하는 옛 가시초등학교 뒤쪽의 작은 건물(47.27㎡). 평소 서 씨가 숙소이자 작업실로 이용했던 곳이다. 이곳에 화마가 덮친 것은 1월 19일 오전 1시 30분 경. 불은 순식간에 공간 내부를 태우고 미술관 벽면 일부까지 뻗어갔다. 다행히 밤낚시 하고 돌아오던 주민의 신고로 소방당국이 46분 만에 진화하면서 불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서 씨는 당시 동남아 소수민족 촬영을 위해 해외에 나가 있었다. 화재 소식은 일주일 넘게 지나 귀국하고 나서야 접했다.

그는 “공항에 도착하니 작은 딸이 나와 있었다. 귀국하면 만나기로 약속했기에 대화를 나누는데 대답이 평소와 달리 시원치 않았다. 피로회복제라면서 내게 약도 건네주더라. 그리고 절친한 강영봉 전 제주대교수(현 제주어연구소 이사장)도 나와 있었다. 다른 일정이 있어서 공항에 왔구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차 안에서 딸과 강 교수가 화재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충격을 받을까 우려해 사고 직후 소식을 전해주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화재가 난 현장은 그을린 벽면과 바닥의 검은 재, 탄 내음 만이 남아있을 뿐, 말 그대로 ‘하나도 남김없이’ 불타버렸다. 이곳에 고이 보관돼 있던 수십 년 간 모아온 섬의 ‘작은 역사들’은 모두 소멸됐다. 서 씨에 따르면 발화 원인은 낡은 건물의 누전으로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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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19일 화재가 발생한 서재철 사진작가의 작업실. 제공=서경리.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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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실 내부는 사실상 전소됐다. 제공=서경리.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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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잿더미 속에 남겨진 불탄 사진기. 제공=서경리. ⓒ제주의소리

서 씨는 제주를 대표하는 사진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오랫동안 사진기자로 활동한 제주의 기록자다. 1947년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신문 사진부장, 제민일보 편집부국장을 거쳐 2004년부터 자연사랑미술관을 운영해 오고 있다.

한국기자상(1979·1999), 서울언론인상, 송하언론인상, 현대사진문화상(창작부문), 대한사진문화상(보도부문), 문화체육관광부장관·국무총리표창 등 받은 상만 해도 여럿이다. 1982년 한라산에 추락해 특전사 대원 등 53명이 숨진 이른바 ‘봉황새작전’의 특종도 서 씨의 손에서 나왔다.

특히 제주 자연에 대한 각별한 관심으로 관련 저서도 많이 펴냈는데, 현역 시절 한라산을 눈 깜짝할 새에 오르내리며 ‘한라산 수노루’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번 화재가 더욱 아쉬움이 드는 것은, 50년 사진 인생의 기록을 정리한 직후 벌어졌기 때문이다. 

서 씨는 “화재가 있기 몇 개월 전부터 유독 요란스럽게 모아온 사진 자료를 정리해왔다. 흑백사진을 모두 꺼내 습기 방지 파일에 일일이 넣고 설명을 달았다. 1991년부터 찍어온 몽골 사진 필름도 다시 꺼내 정리했고 카메라, 렌즈, 중요한 책, 20권 가량 되는 메모수첩 등도 작업실 안에 새로 배치했다. 고용량 외장하드 2개와 컴퓨터 안에는 10년 넘게 찍은 디지털 사진 파일이 모두 보관돼 있었다”면서 “내가 보유한 제일 귀중한 것들을 모아서 얼추 정리가 다 됐다 싶었는데...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나도 남지 않고 싸그리 타버렸다”고 허탈해했다. 

귀국 후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딸 서경리 씨에게 “정말 하나도 남은 것이 없냐”고 몇 번이나 물어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는 “폐교 운동장 구석에 작은 종이 하나가 굴러다니더라. 보니까 불타버린 메모 수첩에 써뒀던 가족에게 쓴 편지 조각이었다”면서 “일부 사진은 책 작업을 하면서 출판사에 보낸 것이 남아있고, 사용해오던 메모리카드를 복원하는 작업도 (사진기자를 하는) 딸을 통해 맡겼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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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은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폐교 건물. 오른쪽은 화재가 발생한 서 씨의 작업실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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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까운 표정으로 작업실 천장을 바라보는 서 씨. ⓒ제주의소리

불타버린 것들 모두 하나 같이 소중하겠지만, 옛 제주 모습을 찍은 흑백사진이 서 씨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만든다. 서 씨는 본인이 찍은 제주 사진 가운데 1500점을 지난 2015년 제주연구원(옛 제주발전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에 기증했다. 이 사진들은 ‘제주학 아카이브’의 소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서 씨는 “가장 아쉬운 것은 1960년대부터 찍은 제주사람들의 삶이 담긴 흑백사진이다. 다시 찍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들이라 더욱 미련이 남는다. 특히 옛 제주도 장례풍속, 영혼결혼식 같은 일상 문화 사진이 정말 아쉽다. 사진가에게 사진 자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존재”라며 “이번 화재는 단순한 사진 소실이 아니라 '제주의 중요한 기록 일부분이 없어졌다'는 주변의 위로가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소방당국이 추산한 재산피해액 1000만원. 단돈 1000만원으로 반세기 그가 피땀을 스며 기록해온 제주 역사의 가치를 환산할 순 없다. 환산 자체가 코미디다. 그가 무겁게 입을 뗀다. 

"10년 만 젊었어도 불타버린 빈자리를 사진으로 다시 채우련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럴 수도 없다. 정말 10년 만 젊었어도…" 서씨가 말을 잇지 못한채 내쉰 한숨이 미술관을 가득 채웠다.

서 씨는 “아직 밖에 나가는 게 겁이 난다. 그래도 카메라 셔터를 누를 손가락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면서 “잊지는 못하겠지만 빨리 잊어버리려고 한다. 당장 올해 문충성 시인 1주기를 맞아 진행하는 ‘제주바다’ 사진전에 대비해 준비중인 작업은 꼭 마무리하려 한다. 자연사랑박물관도 정상적으로 운영한다”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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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씨가 화마가 미치지 않은 박물관 건물에서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화재의 충격을 그래도 의연하게 견뎌내고 있었다.  ⓒ제주의소리

자연사랑박물관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19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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