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칼럼니스트라 불렸던 그... 알고보니 하루에 3~4시간 자며 자료 모으는 노력파

블로그의 대중화는 사이버세계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었다.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매니아들이 특유의 내공으로 전문가들 못지않은 인정과 관심을 받았고, ‘파워블로거’라는 신개념까지 등장하게 됐다. 때문에 블로그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공신력 있는 상이 필요로 하게 됐다. 그래서 등장한 한국블로그산업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가 등장했다.

그런데 2012년 2월 열린 ‘2011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에서 대상을 받은 이가 제주 구좌읍 송당리에 산다는 사실은 다소 놀라운 일이었다. 그 블로그가 정치/시사 블로그라는 점에서, ‘어떻게 그런 최신의 정보가 필요한 민감한 글이 산골마을에서 탄생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개인부분 대상을 수상한 사람은 아이엠피터로 불리는 임병도(43)씨.

그는 원래 서울의 평범한 직장이었다. 그러던 그는 어느 날 귀농을 생각하게 됐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고 한다. 다만 스피디하게 도시에서 쉬지 못하고 지내는 것보다, 자연과 더불어 살기 좋은 공간에서 머물고 싶다는 소망에서 5년 전 제주도로 무작정 내려왔다.

사실 당시 귀농을 생각하면서 어느 지역으로 갈까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제주를 선택한 것은 ‘의외로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었다. 서울과 왔다 갔다 할 때도 편리하고, 생활환경도 준수했다. 그렇게 그는 처음에는 세화리 펜션에 짐을 풀었다가, 얼마 뒤 지금 구좌읍 송당리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아이엠피터, 네티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다

▲ 그의 블로그는 한국의 최신 이슈를 주로 다룬다. 하루 방문객이 1만~2만명에 이르고 각종 포털사이트로부터 파워블로그로 인정받기도 했다.

2011 블로그 개인부문 대상을 수상한 소감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자신이 받았다는 사실보다 평범한 일반블로그의 한 사람으로 수상한 것이 기쁘다고 답했다. “원래 시사평론가와 같은 유명인들이 종종 받은 적은 있어요. 하지만 일반 블로거들은 받은 적이 없거든요. 제가 상 받았다는 사실보다 일반블로거가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뿌듯합니다. 일반블로거들도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거든요”

그는 얼마 전 그의 첫 책을 냈다. 이전에 ‘곽노현 버리기’라는 책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집필한 적은 있지만 그의 이름으로 낸 책은 처음이다. 책 제목은 ‘아이엠피터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자신을 평범한 블로거라고 소개하는 그가 어떻게 책까지 내게 된 것일까?

그는 멋쩍게 웃으며 겸손하게 대답했다. “원래 제가 책을 낼 능력은 안 되죠. 그래서 책 집필은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그 동안 블로그에 제가 쓴 글들을 모아서 책을 내자고 하더라구요. 블로그의 쓴 글들을 보관하는 차원에서, 또 삭제되고 없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차원에서 어쩌다보니 책을 내게 됐습니다”

사실 그는 원래 정치, 시사 전문 블로거가 아니었다. 일본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던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그 나라의 시각에서 본 한국, 혹은 해외의 이야기를 주로 다뤘다.

그런데 2009년 말 본격적으로 글의 주제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 전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잘못된 점들을 종종 올렸는데, 미국에서 글을 올릴 때는 ‘친미주의자’라고 야유하고, 일본에서 글을 올리면 ‘친일주의자’라는 악플이 달리곤 했다. 그러자 오기가 생겼다. ‘한국사회에 도대체 뭐가 문제기에 내 눈에 이렇게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는가’하는 생각이 절로 든 것이다. 한국의 문제가 왜 생겼는가를 파헤치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의 시사 이슈들과 정당 정치와 관련된 글을 올리게 됐다. 그렇게 정치, 시사 블로거의 길로 들어섰다.

사실 그가 ‘평범하고 재밌는 글’을 올렸을 때는 방문자수가 더 많았다고 한다. 한 달에 100만 명이나 되는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사쪽으로 가니 오히려 방문자 수가 절반으로 뚝 줄었다고 한다. 시사쪽으로 글이 올라가면 골치 아프게 여기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게 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물론 그럼에도 하루 1만여 명, 한 달 50만 명이 그의 블로그를 찾는다.

온라인에서 아이엠피터를 평가할 때 흔히 ‘방대한 자료 수집 능력’을 높게 평가한다. 직접적으로 물어봤다, 혹시 다른 노하우가 있냐고 혹은 다른 정보통이 있는 건 아니냐고. 그가 웃으며 한 대답은 “그냥 시간싸움이에요”라는 단문이었다. 그는 어떤 이슈가 탄생했을 때 기본적으로 나와 있는 모든 자료를 모으고 정리한다고 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부터 신문 기사, 보도자료, 발언내용, 논문에 이르기까지 되도록 많은 정보를 읽고 그 속에서 필요한 내용만을 정리한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정말 무식한 짓이죠. 정말 무식한 짓인데, 다만 바다 밑을 세세히 뒤지면서 건져내는 것과 같아요. 그러다보면 어쩌다 하나 큰 게 걸리게 되고 그런 것이죠” 사실 그는 엄청난 노력파였다.

그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3~4시간. 보통 새벽 4시 반 정도에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다. 아침 7시에는 어느 정도 글이 완성 돼야 한다. 매일매일 그의 글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글을 하나 완성시킨 후에도 다른 글을 위해 또 다른 작업이 시작된다. SNS를 통해 어떤 일이 이슈인가를 살펴보고, 뉴스도 일일이 챙겨봐야 한다.

국회 상임위원회 중계를 보면서 어떤 의제들이 교환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도 한다. 괴롭거나 피곤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고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 그렇게 피로감이 들거나 하진 않아요. 다양한 이야기를 보기 때문에 지겹거나 하지도 않아요. 재밌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글을 쓰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일까? ‘선거법에 대한 공포’라고 그는 답했다. 비교적 정제된 글을 쓰는 것으로 인정받는 그였기에 다소 의외의 대답이었다. 음모론이나 상대방 비하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것을 늘 염려하고 있을까.

“사실 글에 대해 어떻게 문제제기를 거느냐에 따라 언제든지 선거법 위반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되도록 법의 저촉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피하고 팩트만 추려내요. 누군가의 주장이나 의견은 되도록 빼고 사실관계에 충실한 부분만 기술하죠”

하지만 이와 상충되는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했다. 1인 미디어의 롤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그는 블로그 특성상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 대해 논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1인 미디어의 가장 큰 기본은 전문성이에요. 그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얘기를 해줘야 하거든요. 객관적 사실에 대한 나열 뿐 아니라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특유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기주장을 실어야 해요. 쉽게 말하면 주석서에요. 논어나 맹자의 글을 그대로 보기는 어려우니 주석서처럼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이죠”  

 

"인터넷 토론, 아직까지는 글쎄..."
 
웹 2.0 시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 토론’에 대해서도 의견을 물었다. 이 문화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다소 부정적이었다. 인터넷 토론 문화 자체가 가능한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 그는 끊임없이 화면을 쳐다보며 자료들을 수집한다. 관련논문들부터 국회상임위 보도자료까지, 그야말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제주의소리

“당장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보면서 토론을 해도 안 되잖아요. 그런데 그걸 인터넷 공간에서 가능할 거라고 하면 넌센스죠” 단순하면서도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토론 문화’라는 것은 찾기 힘들다.

권위주의적 정서가 만연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 힘들며, 구체적인 언어로 이른 바 ‘태클’을 건다면 ‘왜 문제를 일으키느냐!’라는 반응이 돌아오기 일쑤이다. 토론 교육이라는 것을 받아본 적도 없고, 그 문화가 형성되어 있지도 않은데 사이버 공간에서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라인상에서의 토론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단정적인 물음에 그는 그렇지만도 않다고 했다.

“그래서 전혀 성향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끼리는 토론이 힘듭니다. 다만 어느 정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토론은 가능합니다. 물론 그 때도 예의를 지키면서 조심조심하게 해야죠.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단답형으로 이뤄지는 댓글에서는 생각이 완전히 다른 사람끼리는 제대로 된 토론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차라리 논리적인 구성으로 비교적 장문의, 예를 들어 A4 두 장 분량의 형식을 갖춘 글을 통해 의견을 교환한다면 그것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왕 얘기가 나온 김에 몇 가지 시사적인 이슈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어봤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세대론’, ‘20대는 정치에 관심도 없고 불평만 많고 무능하다’는 담론에 대해서 그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요. 지금 20대가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든데요. 더 이상 대학교에 들어가면 끝이 아니에요. 학점도 챙겨야 하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해요. 취업준비를 해야 하고 스펙도 쌓아야 해요. 당장 생존의 문제에 맞닥뜨려 있는데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가 없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20대를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 무관심이 반복되다보면 당신들의 아들딸들에게도 악순환이 반복된다, 문제 해결은 정치를 통해서 가능하다 - 이런 식으로 왜 힘든지를 깨닫게 해줘야지 무작정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왜 젊은 세대가 청춘콘서트를 좋아하는데요. ‘현실을 공감’ 해 주기 때문이잖아요. 정치인들이나 일부 기성세대는 흔히 ‘정치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만 강조하고 정작 이런 면에는 소흘해요”  

인터뷰 도중 그의 한 살 박이 딸아이가 자꾸 그의 품에 와서 안겼다. 아내가 몇 번이고 데리고 나갔지만 아빠가 그리 좋은지 계속해서 품을 파고들었다. 임씨는 난감한 듯 몇 번 웃다가 두 팔로 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숲으로 둘러싸인 그의 집 풍경과 더불어 너무도 편안한 장면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런 평안한 숲 속에서, 제주도의 산골마을에서 어떻게 최신의 민감한 정보들을 모으고 날카로운 글들이 탄생할 수 있을까.

▲ 날카로운 글을 선보이는 아이엠피터 임병도(43)씨는 실제로 만나보니 의외로 편안한 아빠의 모습이었다. ⓒ제주의소리

그는 ‘시대가 변했다’며 어느 공간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산골이건 도시건 양방향소통이 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전화도 있고, 인터넷도 있고, 그 속에 SNS도 있죠.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합니다.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다만 ‘양방향 소통’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지금 사방에 정보가 떠다니고 있는데, 시골에 있다고 정보가 안 오는 게 아니거든요. 물리적인 공간, 지역적인 것은 상관없습니다”

숲 속의 파워블로거인 그는 올 해 대선을 앞두고 그는 더더욱 바빠졌다. 올 12월 대선을 앞두고 경선부터 대선까지 모든 과정을 취재하려는 생각중이라고 했다. 이와 더불어 정권만 바뀐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검찰, 외교통상, 국방 분야와 관련된 문제들은 해결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그 부분에 자신의 힘을 쏟아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싶은 목표도 가지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가 행하는 작업들은 말 그대로 ‘쉬운 정치 설명서’와 같은 것이었다. 평범하고 작은 노력들이 모여 준수한 결과물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 특히 인정받은 그의 글들이 끊임없이 노력으로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그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명쾌하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라!’는 삶의 명령을 그는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자신의 분야를 즐기는 동시에 악착같이 노력을 하는 아이엠피터 임병도씨. 앞으로 보여줄 그의 도전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주의소리>

<문준영 인턴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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