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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예래동 판결, 개발 패러다임 전환 기회로 삼았다면...

지난 3월의 대법원 판결은 어쩌면 원희룡 지사에게 ‘절호의 기회’였을지 모른다. ‘자연·문화·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를 내려놓지 않았다면 말이다. 둘러대려면 둘러대기도 좋았다. 마음이 ‘청정’과 ‘공존’에 가 있었다면 말이다. 청정과 공존은 제주미래비전을 수립중인 원희룡 도정이 채택한 핵심가치다.

생각만 고쳐먹었더라면 놓치기 아까운 찬스였다. 역대 도정의 난개발의 과오를 반성하고, 미래 개발의 청사진을 새로 그릴 수 있는 그런 기회.

대법원 판결의 핵심을 따져보자. 유원지의 공공성, 공익성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특정 사업자의 돈벌이 수단으로 유원지가 파헤쳐선 안된다는 함의가 숨어 있었다. 

유원지가 어디 이 뿐인가. 예래동 말고도 자그마치 20여개에 이른다. 아직 손도 안댄 곳도 많다. 예래동을 반면교사 삼아, 아니 뒤틀린 예래동을 처음부터 바로잡아 환경·주민 친화적인 개발의 길잡이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을까?   

“대법원도 이러는데 나더러 어떡하라고...” 시쳇말로 원 지사로선 항변할 수도 있었다. 청정과 공존을 앞세웠다면 말이다. 여기서 공존은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당국과 주민의 공존까지 망라한 개념일 테다. 

아쉽게도 원 지사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소송을 건 주민들을 향해 핏대를 올렸다. 수천억, 수조원대 국제소송 가능성을 들먹였다. 반대자가 ‘극소수’라는 표현까지 썼다. ‘대다수 주민들의 의견은...’이라며 편을 나눴다. 소름이 돋았다. 전형적인 이이제이(以夷制夷)다. 권위주의 시절에 자주 등장했던.

원토지주대책협의회가 제안한 공개토론은 공허한 메아리만 남았다.

대신 원 지사가 선택한 건 국회였다. 의원들로 하여금 유원지 특례 도입을 위한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게 했다. 다선의원 출신 답게 여야 의원 21명을 움직이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다.

제주특별법 개정 촉구 결의안 채택을 놓고 제주도의회에서 열띤 공방이 벌어진 지난 3일에도 원 지사는 국회를 찾아갔다. 별도의 건의문을 들고서.

제주특별법 개정이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걸까. 개정안은 유원지에 설치할 수 있는 세부시설 기준을 제주도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조례 제정을 놓고 또 한번 홍역을 치를게 뻔하다. 그 전에 특별법 개정도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민생법안이 아닌데다, 국회에서도 찬반이 첨예하게 갈릴 수 있다. 연내 처리가 안되면 총선 정국과 맞물려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자칫 급한 불도 끄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대법원 판결이 난지 8개월이 흘렀다. 원 도정이나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제주특별법 개정에 ‘올 인’했다. 

그 사이 소송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제주특별법이 개정되더라도 사업 재개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실기(失期)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의회는 모처럼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불을 뿜었던 예산전쟁이 언제 있었나 싶다. 이율배반, 민의 외면, 역주행이란 비판을 감수했다. 자체 여론조사 결과까지 무시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도리로 쳐도 이건 아니지 싶다. 무효 판결이 난 실시계획 인가처분은 누가 내줬나. 사태를 초래한 근원이 당국에 있다는 말이다. JDC가 속으로 억울해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JDC가 면죄부를 받을 일은 아니다. 2심 패소 후 안이하게 대처했던 JDC는 대법 확정 판결 후엔 무기력함을 노출했다. 돈 몇 푼(?) 아끼려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못할 상황을 자초했다.

불을 끄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불만 꺼선 안된다는 것이다.

가령 이랬으면 어땠을 까.

대법 판결 직후 ‘전(前) 도정’의 잘못된 행정행위에 대한 사과부터 하는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용기있는 일이다. 이어 주민(토지주)들에게 진정성있게 다가간다. 그리고 법률적 하자를 치유하는 노력과 동시에 개발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을 모색한다. 이러면 누가 원 지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확인이 필요하지만, 대법까지 간 토지주들의 애초 의도는 예래단지 개발의 ‘궤도수정’이었다는 말이 있다.   

너무 멀리 와 버렸는데, 혼자 소설을 쓰는게 아니길 바란다. 취임 초기 '환경·협치 전도사'를 자처했던 원 지사로서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더 도드라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같아 하는 말이다.

어떻게든 삽질을 계속하려 하면서 "미래는 청정과 공존!"이라고 외치는 것은 아무래도 넌센스다.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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