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1) 개헌보다 선거제도 개혁이 먼저다 / 하승수 변호사(비례민주주의 공동대표) 

1000만 촛불의 함성과 함께 정유년 새해를 열었다. 세계가 대한민국 국민의 위대한 위력을 주목하고 있다. 촛불민심이 원하는 바가 아바타 대통령을 몰아내고 그 부역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전부일까. 촛불민심은 그보다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한 정치개혁, 선거개혁이 우선이라는 것이 중론일 것이다. 또, 국가권력이 아닌 국민권리를 강화하는데 있을 것이다. 30년 만에 가동한 개헌논의가 생산적이어야 하는 이유다. 여기에 대통령 탄핵이 구체화되면서 국가개조의 골든타임을 희석시키기 위한 협잡과 음모로 ‘개헌’을 만지작 하는 세력이 있어선 안된다는 것이 국민의 목소리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개헌은 국민들이 참여하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하승수 변호사의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 어떻게 볼것인가’라는 글을 세차례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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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내각제에 대한 오해와 ‘제왕적 총리’

12월 9일 탄핵소추결의가 국회에서 이뤄진 이후에, 개헌논의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권력구조만 개편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이므로,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를 택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시스템에 대한 오해에 기반한 얘기다. 의원내각제 자체가 대통령제보다 권력을 분산하는 제도인 것은 아니다. 특정한 정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에서의 의원내각제는 대통령제 못지않은 권력집중을 가져올 수 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일본의 아베 총리가 대통령보다 권력이 부족했던가? 오히려 의원내각제에서는 임기제한도 없이 장기집권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권력의 집중현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의원내각제(아래에서는 소위 ‘분권형 대통령제’까지 포함해서 얘기한다)가 갖는 긍정적 기능이 나타나려면, 그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로의 개혁이다. 독일식 의원내각제를 택하겠다면, 그 이전에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택해야 한다. 그것이 순서이다.

개혁을 외치면서, 정작 개헌 없이도 할 수 있는 정치개혁을 사장시키고 있는 일부 정치권의 태도는 한심하다. 선거관리를 맡고 있는 중립적 국가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미 여러 선거제도 개혁안을 제안한 바 있다. 2015년 2월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방안을 제시했고, 2016년 8월에는 만18세로의 선거권 연령 인하, 선거운동의 자유확대를 제안했다. 이런 중앙선관위의 제안부터 입법을 해야, 정치개혁에 대한 진정성을 신뢰할 수 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정치개혁’을 외치는 것은 전혀 신뢰할 수 없는 행태이다.

한편 최근 대통령 결선투표제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는 이상 대통령 결선투표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의원내각제를 하고 있으면서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택하고 있는 국가들(핀란드, 오스트리아 등. 이 국가들은 대통령중심제가 아니어서 대통령 권한이 크지 않다)은 모두 그 전제로 국회를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의해 구성한다.

비례성이 보장되고 소수정당의 정치참여를 보장하는 기본제도는 바로 국회의원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그런데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얘기하면서, 국회의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얘기하지 않는 것도 모순이고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원내·외의 소수정당들이 거의 한목소리로 외쳐온 것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대통령 결선투표제는 그와 함께 논의해야 할 주제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 논의를 원점에서부터 제대로 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선거제도 개혁 없는 권력구조 개편은 전혀 ‘개혁’이 아니라는 것을 영국, 캐나다, 일본의 사례를 통해 짚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문제에 대해 살펴보고, 그 이후에 대통령 결선투표제, 만18세 선거권연령, 선거운동의 자유 확대문제 등도 살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개헌과 관련해서는, 더 이상 국회내부에서의 개헌논의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들이 참여할 수있는 개헌논의가 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제시하고자 한다. 

# 영국, 일본의 사례로 본 권력구조 개편론의 허구성

영국을 보면, 의원내각제 자체가 권력분산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잘 드러난다. 영국은 의원내각제 국가이고, 선거제도는 지역구에서 1위를 하면 당선되는 단순다수 소선거구제(지역구 1위대표제)를 택하고 있다.

1980년대 영국에서는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 정권이 집권했었다. 마거릿 대처는 1979년부터 1990년까지 12년 동안 집권하며 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민영화를 추진하고 복지를 후퇴시키는 정책을 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12년간 집권하고 나서 퇴임한 1990년 영국의 아동 중 28%가 빈곤선 아래에 있었다. 대처의 집권시기동안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1979년 0.25에서 1990년 0.34로 악화됐다.

집권시기동안 마거릿 대처는 ‘철의 여인’으로 불리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영국 국회의 과반수 이상 의석은 늘 마거릿 대처의 정당인 보수당 의원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렇다면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은 영국 국민들 절반이상으로부터 지지를 받았을까?

놀랍게도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은 1979년부터 1990년까지 단 한번도 50% 이상의 지지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역구에서 1등을 한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는 영국의 지역구 1위대표제(단순다수 소선거구제) 선거제도 덕분에 보수당은 40%대만 득표하고도 늘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획득했고, 이것은 영국의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재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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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정당이 얻은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였다면, 보수당의 단독집권은 불가능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영국 국민들의 삶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재도 영국은 보수당이 집권하고 있는데,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얻었던 득표율은 36.8%에 불과했다. 그런데 보수당은 지역구 소선거구제 선거제도 덕분에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여 집권을 연장할 수 있었다.

이처럼 지역구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이상, 의원내각제를 하더라도 권력의 집중현상을 완화되지 않을 수 있다. 특정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면 100%의 권력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도 그런 사례 중에 하나이다. 캐나다도 의원내각제 국가이지만, 단순다수 소선거구제를 택하고 있다. 그래서 캐나다의 총선에서도 여러 차례 40% 남짓한 득표율로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는 사례들이 나타났다. 2011년 총선에서는 캐나다 보수당이 39.62%의 득표율로 전체 하원 의석 308석 중에 166석을 차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야당들은 합쳐서 60% 이상을 득표했지만, 찬밥 신세가 됐다. 정당득표율과 의석은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그리고 보수당 정권은 여러 정책에서 무리수를 두었다. 기후변화 대응에 부정적이던 캐나다 보수당은 2011년 12월 12일 교토의정서 탈퇴를 선언했다. 보수당의 스티브 하퍼총리는 석유회사 출신의 정치인이었다. 복지도 후퇴했고, 교도소를 짓는 예산은 늘어났다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지적이었다.

2015년 캐나다 총선에서 집권한 트뤼도 현 총리는 이런 식의 선거제도를 개혁하겠다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래서 캐나다에서는 단순다수 소선거구제를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로 개혁하기위한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의원내각제를 택하고 있는 또 다른 국가인 일본의 경우에는 한국처럼, 지역구 소선거구제에 일정 의석의 비례대표 의원을 덧붙이는 방식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다. 중의원의 경우 475석 중에 295석이 지역구이고, 180석이 비례대표이다. 대한민국의 253(지역구) : 47(비례대표)보다는 비례대표 숫자가 훨씬 많다. 그러나 일본의 선거결과를 보면,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사이비 비례대표제’라고 볼 수 있다.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목적 자체가, 정당득표율과 국회의석비율을 일치시키기 위한 것인데, 전혀 그런 효과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4년 일본 중의원 선거결과는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사이비 비례대표제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2014년 중의원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소속된 연립여당은 불과 46.82%의 득표를 했을 뿐인데, 전체 의석의 68% 이상을 차지했다. 그 이유는 지역구 선거를 거의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베총리가 지금처럼 독단적인 정책을 펴는 것이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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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캐나다,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의원내각제 자체가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정 정당이 장기적으로 과반수를 차지하면, 대통령제보다 더 위험한 권력을 낳을 수도 있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구성하는 의원내각제의 원리상, 입법부와 행정부가 통째로 특정 정당에 의해 장악되고 좌지우지 될 수 있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보다 임기도 없는 ‘제왕적 총리’는 더 위험할 수 있다.

따라서 권력구조 개편을 얘기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선거제도 개혁이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뀌어야, 다당제-연립정부 구조가 되면서 의원내각제의 장점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변호사

 하승수 변호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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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였지만, 10년째 휴업중입니다. 국립제주대학교 교수를 지냈습니다. 참여연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같은 단체에서 활동했고, 2011년 가을부터 5년간 녹색당 사무처장,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지금은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전면개혁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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