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고병원성 AI 검출지 인근 '차단 전쟁'..."청정제주 사수" 주민들도 민간방역요원 참여

야생조류의 배설물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견되면서 제주는 그야말로 초비상이다. 그동안 제주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AI가 없는 '최후의 보루'였다. 문제의 배설물이 발견된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철새도래지 일대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11일 오전 찾은 구좌읍 일대는 방역작업이 한창이었다. 한동리 거점소독장소에서는 차도 위로 소독약이 뿜어져 나왔다. 가금류 농가로 향하는 차량은 이곳을 포함해 4곳에 설치된 거점소독장소를 반드시 거친 뒤 확인증을 받아야만 농가 출입이 가능하다.

▲ 11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의 한 양계장. 인근 하도리 철새도래지에서 고병원성 AI가 확인되자 출입구를 막고 일반인 통제를 제한하고 있다. ⓒ 제주의소리

전날 제주 야생조류에서 발견된 AI가 ‘고병원성’으로 확진되면서 현장의 분위기는 더 심각했다.

하도리 철새도래지와 이곳을 지나는 올레 21코스는 주민과 관광객들의 출입이 통제됐다. AI 검출 분변이 발견된 지점으로부터 반경 10km에서는 닭과 오리의 이동이 금지됐다. 이 곳에서는 22개 농가가 닭과 오리 57만8000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제주시는 이날 오전 9시 철새도래지 인근 3km 내에 위치한 소규모 가금류 농가 2곳에서 닭과 오리 총 43마리를 수매해 도계장으로 보냈다. 농가 내 AI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를 감염에 대비해 예방 차원에서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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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의 거점 소독장. 인근 하도리 철새도래지에서 확인된 AI가 전날 고병원성으로 최종 확진되면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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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의 한 양계장에서 방역작업이 진행중이다. ⓒ 제주의소리

김병수 제주시 축산과장은 “철새의 분변에서 나온 바이러스가 농장에 전파되지 않도록 방역인력을 확대하고 초소 운영을 강화할 예정”이라며 “거점 초소는 물론 이동초소에도 본청 직원들을 배치해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역작업에는 공무원 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도 땀을 흘렸다. 위기감을 느낀 주민들은 민간방역요원으로 적극 참여했다.

한동리 주민인 이원석(78)씨는 “주변 닭과 오리 농가들은 지금 ‘혹시나 전염이라도 되면 어떡하나’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며 “마을 가까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만큼, 청정제주를 지키기 위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말했다.

농가들의 긴장감은 더했다. 이날 기자와 통화를 한 농가 대부분은 농가 밖 제3의 장소에서의 만남을 요청했지만 “혹시 문제가 생길까 걱정된다”, “외부인을 만나면 안될 것 같다”며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지금 소독을 하느라 난리”라며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방역절차를 거치고 만난 구좌읍 종달리의 한 농가에서는 소독 작업이 한창이었다. 제주에서 손꼽히는 대형농장인 이 곳은 총 9개 동에서 12만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다.

이 곳을 관리하는 강경탁(47)씨는 “내륙지방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했을 때부터 1일 1회 소독은 반드시 지키고 있고, 제주 철새에서도 발견된 후에는 수시로 소독을 하는 등 방역을 강화하고 있다”며 “집이 여기서 10분 거리인데 제주 철새에서 AI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가지 않고 농장에서 24시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가금류 사육 농가에 △철새도래지 출입 금지 △사육 가금류의 야생조류 접촉 차단을 위한 축사 그물망 설치 △출입문 단속 등 방역수칙을 철저히 이행해줄 것을 요청하는 동시에 제주에 있는 철새도래지 4곳에 대한 출입통제 감시 강화와 함께 주변도로에 대한 소독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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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의 한 양계장에서 방역작업이 진행 중이다.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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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의 거점 소독장. 인근 하도리 철새도래지에서 확인된 AI가 10일 고병원성으로 최종 확진되면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사진은 직접 차량소독에 나선 원희룡 제주도지사. ⓒ 제주의소리

현재 내려진 이동제한은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로 판정된 야생조류 분변을 채취한 날로부터 7일이 지난 오는 13일 닭 사육농가를 대상으로 정밀 임상관찰을 진행한 뒤 문제가 없으면 해제된다. 오리의 경우 시료를 채취한 날로부터 14일이 지난 오는 20일 분변과 혈청검사 이후에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이동제한이 풀린다.

제주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은 2014년에 1건, 2015년에도 4건이 있었지만, 당시 제주 방역 당국의 방역 강화와 이동통제, 공항과 항만에 대한 집중 방역으로 농가로의 확산을 막은 바 있다.

작년 11월부터 이어져온 이번 AI 사태에서도 제주는 예외였다. 농가 내 감염은 물론 야생조류에서도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5일 채취된 철새 배설물에서 고병원성 AI가 발견되면서 농가 내 전파를 막기 위해 민관이 힘을 합쳐 총력대응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농가 내 감염이 확인되는 순간 살처분으로 업계가 입게 될 피해가 심각한 것은 물론 ‘청정제주’라는 브랜드 가치에도 흠집이 나기 마련이다.

이날 오전 구좌읍 일대 방역현장에서 만난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육지부 고기 반입과 철새의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며 “최종적으로 사육농가에서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는 만큼 이번에도 청정 제주를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제주도는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한경면 용수리, 애월읍 수산리,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등 철새도래지 4곳을 비롯해 제주 곳곳에 통제초소 14곳과 거점소독시설 6곳을 운영 중이다. 

공무원과 민간방역요원을 포함해 1일 평균 120여명이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내륙지방과 연결되는 공항과 항만의 경우 연중 방역을 실시중이나 최근에는 7명을 더 충원해 총 21명을 배치하는 등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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