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제주에도 회랑식 인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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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의 회랑식 인도.

무덥다. 아열대 기후로 가고 있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더운 게 제주만이 아닌 듯하지만, 어떻게 하면 일상에서 더위를 조금이나 덜 수 있을까. 청주에는 22년만의 홍수로 고생인데 한가하게 더위 타령이나 하자니 마음이 조금은 불편하다.

언제부터인가 걷는 게 좋다. 웬만하면 걷는 걸 좋아하게 된 건 단순히 건강을 의식해서만이 아니다. 걷는다는 건 그만큼 차량 이용을 안 한다는 것이기에, 주위 환경 개선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공익적 동참의 논리도 있다. 그래서 그냥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애매한 곳이면 ‘자전거로 쉽고 편하게 갈 수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여러 사람의 꿈이 모이면 이뤄진다고 하니, 우리 모두 자주 자전거 길을 꿈꿔 보기로 하자. 특히 내년 지방선거 때는 당당히 자전거를 통한 보행권 권리를 요구도 해 보고.

점점 더 여름이 길어지고 있어서, 햇빛 가리개가 절심함에도 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대응은 변함이 없다. 고지식이 상상을 넘는다. 그나마 여성들은 오래전부터 양산으로 햇빛을 가리고 있지만, 남성들은 예나 제나 그대로이다. 남성에게도 햇빛 가리개가 필요한데도, 마냥 양산은 여성 거라며 터부시 하는 것도 참 옹고집이다. 여성 전용의 치마는 사양한다고 하더라도, 양산만큼 여름 햇빛 가리개로 그 이상 좋은 게 없는 데도 그냥 쳐다보기만 하고 있으니, 그 바보스러움도 알아주어야 하겠다. 올 여름 남성들도 양산 패션에 동참하면 어떨는지?  

7월 15일 토요일자 <한겨레신문> 2면에 ‘배려의 그늘막’이라는 제목으로 한 장의 사진 다큐가 실려 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사람을 먼저 생각한 작은 배려가 우릴 기분 좋게 한다”면서. 건널목 신호등을 기다리는 것에 천막을 새로 구입하든 재활용하든지 하여 그늘막을 설치함으로써 조금이나마 길 오가는 사람들에게 휴식과 햇빛 가리개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건, 이미 며칠 전부터 전해 준 기사였다. 그런데도 오늘은 더욱더 천막 그늘막이 인상적으로 다가온 건, 진짜 요즘 덥기 때문이다. 건널목에서 길 건너려 기다릴 때의 더위는 생각만 해도 걷고 싶지 않을 만큼 덥다.   

늦었다 할 때가 빠른 때이다. 제주도도 제주 지역 건널목에 한겨레신문의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천막 그늘막을 설치해 보는 건 어떤지? 각 읍면동 사무소별로 긴급 점검하여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서부터 하나씩 설치했으면 좋겠다. 사실 이러한 그늘막은 도나 시가 아니라 제주 시민사회에서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설치하고 관리하면 더욱 빛날 것이었다. 각종 시민단체, 종교단체, 향우회, 종친회, 동창회가 자기들 단체의 이름으로 하나씩만 설치해도 제주 전역이 천막 그늘막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안 되더라도 내년에는 제주 전역에서 각종 단체가 나름 예쁘게 설치한 그늘막으로 한 여름의 햇빛 가림 세상이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지난 7월 14일 제주국제협의회(회장 강태선) 주최로 열린 사회적 자본 세 번째 시민강좌에서 노희섭 정보융합담당관이 역설한 부분도 바로 이것일 것이다. ‘자발적인 연결’을 통해 협업(collaboration)이라는 사회적자본이 용틀임을 할 때, 제주 지역의 숱한 사회적 문제들이 하나씩 해소되어 가면서, 살기 좋은 제주가 될 것이라는. 내년에는 딱히 그늘막이 아니더라도 제주도 내 시민사회 각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자발적인 행동이 하나의 공동 가치로 수렴되는 협업으로 이어져 제주형 해법 찾기와 비전 추구가 하나씩 꽃피우길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햇빛 가리기 얘기라면, 타이뻬이 도심 거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대만의 농촌은 필자가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타이뻬이 도심에는 거의 모든 길마다 햇빛 가리기를 위해서만은 아니겠지만, 1층에는 바로 인접 인도만큼의 회랑식 인도 길이 마련되어 있다. 아열대의 타이뻬이에서 더위를 참으면서 걸을 수 있었던 건, 바로 건물마다 1층에 회랑식으로 쭉 연결하여 마련된 또 하나의 인도 길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더위만이 아니라 갑작스런 소나기를 피하는 데도 제격이라, 점점 더 아열대로 가고 있는 제주도의 100년 이상을 내다보면서 점진적으로 도입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도심 건물을 지을 때 1층에 회랑식 인도를 내 주는 만큼이나 그에 상응하여 보조금 지원과 세제 혜택을 주면 사유재산 침해라는 비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타이뻬이 도심 거리를 거닐면서 이러한 회랑식 인도는 건물주와 입주한 가게 그리고 주민들간의 상생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보였다. 무엇보다도 인도가 2배가 되어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가 넉넉해 보여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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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길현 제주대 교수.
회랑식 인도를 따라 걸으면서 바로 옆에 보이는 가게를 힐끗 쳐다보는 것도 관광의 한 즐거움이었고. 그러나 뭐니 해도 한 여름 대낮의 따끔한 햇빛을 가려주어서 좋았다. 제주도도 앞으로 신축하는 건물부터 하나씩 이런 회랑식 인도를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것은 어떤지. 이런 생각만으로도 더위가 조금은 물러나는 듯 싶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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