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제주행 급증' 예멘인 얘기 들어보니 "불법 취업 꿈도 안꿔...한국정부 도움 절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발 제주행 항공기 에어아시아 D7501편이 9일 오후 1시 48분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예멘 국적의 M(32)씨는 자국 친구들과 함께 한산한 입국장 앞을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그의 고국 친구들이다. 출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온 친구들은 M씨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M씨를 비롯해 4명은 둥글게 모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예멘인들의 제주행이 급증하고 있다. 

올들어 4월말까지 제주를 통해 입국한 예멘인은 168명에 이른다. 지난 2일에는 80여 명의 예멘인이 제주로 입국했다. 제주는 비자(사증) 없이 입국할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제주에 입국한 예멘인의 절반 이상은 난민 신청을 했다. M씨도 그중 한 명이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무리 지어 대화를 나누는 그들에게 왜 왔는지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예멘은 아랍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다행히 M씨와는 서툴지만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은 관광목적으로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M씨는 대뜸 장기간 계속돼온 내전 이야기부터 꺼냈다.

“(전쟁으로)우리는 갈 곳이 없어요. (한국 정부가) 우리를 난민으로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저 기다릴 뿐이죠”

예멘은 사우디아라비아 남쪽에 있는 작은 나라로, 1994년부터 지금까지 내전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수니파인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 동맹국가가 내전에 개입하면서 이제는 주변국들의 대리전 양상으로 번졌다. 2015년 이후 예멘인 사망자는 1만 명이 넘었다. 3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실향민이 되어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생존을 위해 고국을 등지는 이들도 속출하고 있다. 

공항 게이트에서 간단히 나눌 대화는 아니었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M씨가 임시로 거주하는 숙소에서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현장에 있던 지인들은 난민 신청 절차를 밟으러 출입국관리사무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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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기를 채우려는지 예멘인들의 임시 거처에는 과자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숙소는 서귀포항 인근에 있는 작은 호텔이었다. 여기서 예멘인 9명이 방 4개에 나눠 묵고 있었다. M씨가 투숙한 객실에는 허기를 채우려는지 각종 과자와 인스턴트 식품이 널브러져 있었다. M씨에겐 앞으로 10일 정도 생활할 만큼의 돈이 남아있다. 돈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편의점에서 산 것으로만 끼니를 때운다. 돈이 떨어지면 사우디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야할 처지. 때문에 웬만하면 바깥 출입도 자제한다.

사실 M씨는 내전을 피해 2013년부터 올해 4월까지 말레이시아에 살았다. 그곳에서도 난민 생활을 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정부는 난민에게 일할 권리를 주지 않는다. M씨는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아내(말레이시아인)의 차로 몰래 택시 영업을 하다 경찰에 적발돼 돈을 압수당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왜 한국(제주)을 찾게 됐는지 털어놨다. 

그는 “친구들의 조언, 인터넷을 통해 제주의 난민제도에 대해 알게 됐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난민제도가 잘 돼 있어 예멘인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이어 “갈 곳 없는 우리에게 한국 정부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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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2일 제주에 입국한 M(32)씨가 마음이 답답했는지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그의 말만 듣고 진짜 난민 신청자인지, 다른 목적이 있는 이른바 ‘허위 난민’인지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그에게 제주에 입국하는 난민 신청자 중 ‘허위 난민’이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다고 알려줬다. 그러자 M씨는 손사래를 쳤다. “우리(예맨인)는 난민 신청을 위해 제주만 찾지는 않는다. 캐나다, 호주 등 난민제도가 있는 국가라면 어디든지 찾아간다”며 “우리는 그저 난민을 수용하는 국가를 찾는 것이지 이곳에 불법으로 취업을 하러 온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M씨는 개별 입국자로 들어왔기 때문에 불법 취업에 관한 사항, 지인 외에는 예멘 국적 난민 신청자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마음이 답답했는지 연신 창가에서 담배를 피워댔다. 90명의 예멘 난민신청자 모두 마음이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5시간 가까운 만남을 끝내고 자리를 뜨려 하자 M씨는 기자의 팔을 부여잡았다. 그러더니 애원하듯이 말했다. 

“난민 신청을 한 다른 친구가 곧 온다. 그 친구는 영어를 잘하니 그와 얘기했으면 좋겠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30분쯤 흘렀을까. M씨의 친구 3명이 난민 신청을 마치고 돌아왔다. 추가 인터뷰에 응한 예멘인은 A(25)씨. A씨는 M씨처럼 단도직입적으로 이곳에 온 목적이 "난민으로 생활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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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민신청을 마치고 돌아온 예멘인들이 침대에 앉아 있다. (왼쪽 A씨(25))

A씨 역시 M씨와 사정이 비슷했다. 친구의 말, 구글을 통해 제주를 접한 그는 지난 5일 제주에 입국해 9일 난민 신청을 했다. A씨에게 앞서 M씨와 나눴던 대화, 예멘인의 난민 신청에 관한 언론 보도를 설명했더니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다른)예멘인들이 어떤 목적으로 입국했는지 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고)이곳에 불법체류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아무도 예멘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A씨의 부모는 현재 예멘에 있다. 비교적 안전한 곳이지만, 물과 전기가 끊겼다고 했다. 그는 M씨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취업 허가를 받을 때까지는 사우디에 있는 형의 도움을 받아야할 상황이다. 

A씨는 그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연락이 올 때까지 그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숙소에서 편의점 음식으로 버틸 수밖에 없다. A씨는 한국 정부가 취업을 허락한다면 위험한 일, 힘든 일 가리지 않고 달려들 생각이다. 그들에겐 생존이 달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5월8일까지 제주에 난민을 신청한 예멘인은 227명. 지난해 제주에 난민을 신청한 전체 외국인은 312명에 달한다. 하지만 제주에 난민 제도가 시행된 이후 난민으로 인정된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입국관리당국이 예멘인들의 사례를 어떻게 판단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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