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주도 창작뮤지컬 ‘호오이 스토리’

근래 제주에서는 관(官) 주도 창작 공연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서귀포시는 이중섭 탄생 100주기를 기념해 오페레타 <이중섭>을 무대에 올렸고, 제주시는 올해 중요 문화 예술 분야 사업으로 제주 문화를 담은 창작 뮤지컬 제작을 공언했다. 지난 2002년 창작 오페라 <백록담>, 2013년 창작 오페라 <라(拏)> 이후 잠잠했던 창작 열기가 다시금 올라온 것 같아 반갑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창작, 그리고 종합 예술 성격의 오페라, 뮤지컬 같은 공연 장르가 더해진 창작 공연은 투입되는 예산부터 적지 않고 여러 수고가 든다. 더욱이 제주에서는 앞서 두 번의 오페라가 큰 호응을 받지 못하고 논란에 휘말리는 등 부침을 겪었고, 창작 과정을 뒷받침할 만한 여러 예술적인 기반이 지역에 부족한 상황에서, 창작 공연은 자칫 1회성으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높은 것도 현실이다. 

서귀포시, 제주시에 이어 제주도 역시 창작 공연을 선보였다. 제주해녀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해 만든 창작뮤지컬 <호오이 스토리>다. 6일 오후 8시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호오이 스토리> 초연은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예매가 매진되는 성황을 이뤘다. 취지에서도 알 수 있듯, 이 공연은 제주해녀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다. 특히 제주 바다를 지키는 여신으로 알려진 ‘영등할망’ 설화를 제주해녀와 접목시키면서 주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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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오이 스토리> 출연진들이 6일 첫 공연을 마치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호오이 스토리>는 인간과 해신 사이에서 태어난 18세 소녀 ‘아라’를 주인공으로 한다. 먼 옛날 제주 바다에는 바다의 모든 일을 주관하는 해신이 있었고, 해신은 인간과 짝을 맺고 아이를 출산하면 ‘해녀’가 돼서 살아간다는 가상의 배경이다.

2시간 가량 이어지는 공연은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뮤지컬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해신들의 흥겨운 춤사위, 빼어난 가창력을 뽐내는 주연 배우들, 용왕밴드를 제주 대표 밴드로 손꼽히는 사우스카니발로 등장시키는 독특한 아이디어. <호오이 스토리>는 뮤지컬로서 적절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화려한 색이 입혀진 천으로 해신 세계와 심해를 표현하는 연출이나 주인공의 지난 이야기를 미디어아트로 표현하는 장면은 깊은 인상을 준다. 젊은 배우들이 주축이 된 만큼, 이들이 공연 내내 뿜어내는 열정은 <호오이 스토리>가 가진 최대의 장점 가운데 하나로 꼽겠다. 관객들도 큰 박수와 함성으로 배우들의 열연에 화답했다.

사우스카니발의 신나는 노래와 출연진들이 다함께 부르는 웅장한 합창이 흡사 파도처럼 몰아치면서 공연은 막이 내리지만, 이 공연이 과연 제주해녀 뮤지컬이었나 하는 의구심은 숨길 수가 없었다. ‘뮤지컬’에 방점을 찍으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제주해녀’에 집중할 경우 과연 해녀를 얼마나 보여줬는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물론 나름대로 해녀의 삶과 가치를 표현하고자 했다. 고무 작업복 이전의 해녀 복장을 입은 배우들이 불턱에 모여 고된 인생 이야기를 주고받고, 공연 말미,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해녀로서의 삶이 고귀한 해신보다 더 가치 있다는 주인공의 독백이 있다. 하지만 그 장면으로 그칠 뿐, 해녀라는 요소가 공연 전반에 녹아있다고 느끼기는 힘들었다. 그것을 후반부에 몰아 담는 구성은 더욱 아쉽기만 하다. 익숙한 뮤지컬 구성에 해녀라는 요소만 집어넣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인상은 여러 장면에서 느껴진다. 아라가 해신이 아닌 해녀를 선택하게 되는 이유가 남자주인공 '마루'라는 점에서 두 인물의 관계를 관객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럼에도 극 초반, 아라와 마루가 처음으로 만나 곧바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흡사 대학로 연애 뮤지컬 속 장면과 별반 다르지 않는 상투적인 구성으로 상당히 긴 분량을 할애하는 것은 ‘꼭 이렇게 해야 했나’하는 깊은 아쉬움을 준다. 

사우스카니발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제주 토박이 밴드로서 대형 음악 축제인 펜타포트까지 선 사우스카니발의 역량을 의심하진 않는다. 그들을 용궁밴드로 등장시키는 발상 역시 인상적이다. 하지만, 공연 중간 사우스카니발이 왜 세 곡이나 연달아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는 극의 맥락을 감안해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세 곡이나 이어지면서 용왕 역할을 맡은 배우가 관객들에게 더 큰 박수를 계속 유도하는 모습에서는 실소와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기발한 아이디어는 빛나는 순간에만 기발하지 타이밍이 늘어지면 어색해진다. 

밴드 뒤편 화면을 일반 공연장에서나 보는 형이상학적 모형으로 비춘 것이나, 밴드가 평소 복장 그대로 등장한 것도 아쉽기만 하다. 차라리 바다 속이라는 점을 강조할 미디어 아트를 넣거나 사우스카니발 멤버 복장에 변화를 줬다면 그나마 낫지 않았을까. 

공연 전반에 걸쳐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느낌도 빼놓을 수 없다. 그 불편함은 진행의 단절과 이해의 부족이다. 

어린 시절 졸지에 부모와 헤어진 아라가 18세가 되자 왜 용궁으로 갔는지,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용궁으로 이동하면서 사랑하는 마루와 졸지에 헤어졌지만 왜 다음 장면에서는 기쁘게 웃고 있는지, 맥락이 매끄럽지 못하고 장면에만 집중한다는 인상을 준다. 더욱이 주인공의 지난 배경이 극 말미 한 순간에 모두 설명되고 순식간에 해적 침입이라는 최고조의 갈등으로 이동하는 전개는 객석에게 부담을 안겨준다.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것인지 화려한 음악과 춤사위, 그리고 웅장한 주제곡이 부각됐다. 흡사 정리되지 않은 집안을 근사한 이불로 덮어버리고 청소를 마무리 짓는 느낌이다.

더불어 해신들의 공연이 보다 아크로바틱(Acrobatic)하면 용궁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표현하는데 적절하지 않았을까, 해신들이 사용하는 테왁망사리 소품 이외에 보다 다양한 소품과 장치가 있으면 어땠을까 하는 작은 바람도 더해본다.

<호오이 스토리>는 제주도가 추진한 '해녀문화 국제화 컨텐츠개발(다원예술 제작-공연)'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예산은 2억원. 7월 18일에 사업 공고가 나왔고 한 달 뒤 8월 12일에야 선정 결과가 나왔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공연 준비 기간은 5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서 제주도 관계자는 "공연 직전까지 연습에 매진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다음 창작 공연을 선보일 제주시는 충분한 고민이 완성도를 높인다는 점을 명심하고 진행해야 할 것이다.

<호오이 스토리>는 제주해녀와 영등할망이라는 제주만의 고유한 콘텐츠를 다뤘다. 제주 것을 색다르게 해석했다는 점에서 그 노력은 높게 평가한다. 후세에게 남기는 전승 측면에서도 볼 때 이런 시도는 분명히 필요하다. 특히 <호오이 스토리>는 연출진부터 배우까지 모두 젊은 인원들로 채워졌다. 젊은 피가 만들어내는 외형적인 열정은 객석을 순간 뜨겁게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뜨거움이 과연 얼마나 지속되느냐다. 지속 여부는 주제를 심도있게 이해하는 각본, 연출의 힘이다. 앞서 <러브 액츄얼리>, <추억으로 가는 자전거>, <용감한 친구들> 같은 감각적인 현대 뮤지컬을 주로 다룬 연출자는 <호오이 스토리>에서도 자신의 경험을 충분히 활용했지만, 제주해녀의 본질에 더 다가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이 남는다.

이번 공연이 제주해녀의 가치와 자존감을 제주 설화(영등할망)를 통해 보여줬다면, 혹시나 제주해녀를 다루게 될 다른 공연에서는 보다 차분하지만 깊게 그녀들의 삶과 가치를 조명했으면 한다. 뮤지컬, 오페라가 아니어도 좋다. 오히려 1인극이 어울릴 수 있다. 고요한 울림이 때로는 더욱 가슴 깊숙이 파고들기 마련이다.

<호오이 스토리>는 8일 오후 2시와 6시에 마지막으로 공연한다. 

ps. 해녀를 연기한 여배우들에게 제주어는 무척 낯설 것이다. 제주어를 사용하는 공연은 국내에 사실상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객석을 채운 도민들은 애초부터 배우들에게 완벽한 제주어를 기대하진 않을터. 그러나 적어도 일상 속 제주어스러운 느낌이 어떤지는 인지했으면 싶다. 공연 속 배우들의 정체 불명 사투리 억양과 실제 중년 이상 제주해녀들이 사용하는 제주어 억양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차라리 쏘아붙이듯이 빠르게 대화하는 것이 이질감을 덜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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